언론의 윤리원칙이 무참히 깨진 사례로 기억될까 우려
  • ⓒ한겨레신문 온라인판 캡처
    ▲ ⓒ한겨레신문 온라인판 캡처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영방송 대표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물러나라”고 도배한 칼럼이다. 1,600자 의견기사에서 “물러나라”만 120번이나 등장한다. 온라인판도 아닌 전국에 24만부가 뿌려지는 지면신문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28일 칼럼이 공개된 후 SNS상에서는 김세은 교수의 주장을 두고 찬반이 엇갈렸지만, 상당수는 칼럼 형식과는 전혀 다른 ‘도배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교수는 지난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와 사람 이름만 있으면 글 한 편이 나오는 거냐”라며 “도깨비 방망이가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또 “현직 교수가 특히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걸 글이라고 쓰고 신문사가 기사로 채택해 지면에 어떻게 실을 수가 있나”라며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평론(칼럼)이란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 또는 그런 글’이라고 정의돼 있다. 논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한다는 뜻이다. 조리 있게 말하려면 근거에서 주장을 도출해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또 각 근거들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논리학에서 이를 ‘타당성’과 건정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기고글에는 “물러나라”라는 주장만 있지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 한 줄이 전부다. 이성이 아닌 감정을 자극하는 글이다. 논(論)하는 글에서 논리가 빠진 셈이다.

    삼성언론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박종인 작가의 저서 ‘기자의 글쓰기’라는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철칙이 소개돼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실을 중심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의 특징은 구체적인 팩트가 적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굉장히 아름답다’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굉장히 아름다운 이유를 밝혀야 한다. 그대로 김 교수의 글에 적용하면 “물러나라”라고 반복할 게 아니라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서술해야 한다.

    신문윤리강령 제4조(보도와 평론)는 사실을 전달할 때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다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객관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방송도 방송법 제6조를 통해 객관 보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방송심의규정이나 선거방송 규정 등에서도 객관적으로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김세은 교수의 ‘물러나라’는 객관 보도를 달성하기 위한 언론의 본령과는 분명 동떨어져 있었다.

    물론 김세은 교수의 칼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원병묵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학과 교수는 “이런 칼럼, 멋지다”라고 평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사장은 “독특한 칼럼”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껴갈 수는 없다. 신문 기사는 예비 언론인이 밑줄 긋고 곱씹어 읽는 교과서와 같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런 믿음이 차츰 깨지기 시작했다. 흥미 본위의 제목, 클릭해보면 제목과 다른 본문, 재난 현장에서 유가족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클로즈업으로 찍은 사진 등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부추겼다. 막상 현장에서는 책에서 본 원칙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찢겨져 오염된 종잇장이 돼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사계절 ‘한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가 저 멀리서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