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라는 수식어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명예를 주는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것과 같다.

    "나이 제한이 있어 마지막 콩쿠르이기도 했고 제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동안 감사하게도 좋은 상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인 나태함, 소홀함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이번에는 예전 콩쿠르와 비교했을 때 5~6배 이상 준비했던 것 같다."

    이미 7번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콩쿠르 부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진행된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앨범 기자간담회에서 또 다시 경연에 도전한 이유를 이같이 말했다.

    선우예권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끝난 '제 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에는 손열음이 2위를 수상한 바 있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유명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해 만든 대회로 1962년부터 그의 고향인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열린다. 우승자는 상금 5만달러와 3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연주와 음반 녹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 이번 대회는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5월 25일부터 대륙별 예선을 거쳐 선발된 15개국의 30세 이하 피아니스트 30명이 기량을 겨뤘다. 선우예권은 2주가 넘는 콩쿠르 기간 신중히 고른 12곡을 연주했는데, 주변에서 지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세미 파이널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잠시 휘청 거려 의자에 이마를 부딪히기도 했다.

    "다른 대회들과 달리 우승 발표 직후 일정이 많았다. 뭘 생각할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호스트 패밀리랑 같이 지냈는데 2~3시간 후 숙소로 돌아와서 든 생각은 '그래도 잘 끝났구나'였다. 정말 헌신적이고 따뜻한 식구들을 만나 실제로 집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제가 좋아하는 강아지도 있어 더 좋았다."

    선우예권은 2012년 윌리엄 카펠 콩쿠르와 2013년 센다이 콩쿠르 우승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어 2014년 스위스 베르비에서 열린 방돔 프라이즈 한국인 첫 우승을 비롯해 2015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저명한 해외 콩쿠르에서 다수의 우승 기록을 세우며 클래식계 스타로 떠올랐다.

    "비교적 늦은 9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10대 때부터 매해 2~4번씩 국제 콩쿠르에 참가했다. 당시에는 커리어를 쌓기 보다는 금전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아 절실하고 없으면 안 됐기 때문에 선택권 없이 나갔던 이유도 크다. 이번 우승 직후 정신적, 체력적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제가 간절히 원했던 기회들을 얻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 선우예권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세계적 연주자인 리처드 구드와 세이무어 립킨을 사사하고 라흐마니노프상을 수상하며 졸업했다. 줄리어드 대학원, 뉴욕 매네스 음대를 거쳐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연주자 과정에서 베른트 괴츠케를 사사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더 많은 연주 기회를 얻게 된 그는 "대중성이 많은 연주자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진실이 담겨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음악을 통해 스스로 치유와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제 감정들을 공유하고 들려줄 수 있는, 대중의 가슴에 와 닿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선우예권은 오는 12월 두 차례의 독주회로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12월 20일 예정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리사이틀은 우승 소식이 전해진 당일 매진을 기록했다. 이에 12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 차례 더 독주회를 여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편, '제 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자 앨범'이 유니버설 뮤직 산하의 데카 골드 레이블을 통해 오는 8월 발매된다. 이번 앨범은 선우예권의 콩쿠르 실황을 고스란히 담았으며, 디지털 음원은 지난 23일 전 세계 동시 공개된 바 있다.

  • [사진=목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