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갑근 고검장, 정점식 지검장 등 4명 좌천 직후 사의...‘검찰 장악 시나리오’ 비판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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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결정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의 두 주역이 약 2년6개월이 지난 뒤, 사로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당시 심판을 청구한 정부를 대리해 법무부TF팀을 이끌면서, 해외의 정당해산 심판 사례를 연구, 이른바 ‘방어적 민주주의’이론으로 헌법재판관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정점식 검사장(연수원 20기, 당시 법무원수원 기획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8일, ‘고강도 검찰 개혁’이란 미사여구를 앞세운 새 정부에 의해 보직도 없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은 뒤, 곧바로 사의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날 오전, 지난 정부가 임명한 검사장(지검장) 이상 검찰 고위인사 가운데 정 검사장을 비롯한 4명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찰 간부를 보직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내는 건, ‘옷을 벗으라’는 의미나 다름이 없다. 민간 기업으로 치면 이른바 ‘권고사직’을 당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 의해 ‘퇴출 통보’를 받은 검사장급 이상 간부는, 윤갑근 대구고검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 대구지검장 등 4명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날 사표를 던졌다.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떨치던 윤갑근 고검장은 사표를 내면서, 문재인 정부에 뼈있는 조언을 남겼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이 진정으로 검찰개혁을 위한 것이기를 바라며, 바람직한 검찰을 만드는 길이기를 바랍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직후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렬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대전고검 검사·연수원 23기)을 발탁·임명하면서, 사실상 ‘검찰 길들이기’에 나섰다. 이어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 실무를 총괄한 정 지검장을 비롯한 고위간부 4명의 옷을 벗기면서, 새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검찰 개혁의 1단계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 발표 직후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인사 만행’이란 말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정치 검찰을 지양하고, 검찰의 독립을 지켜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 갔느냐”는 날 선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적폐 청산을 외치더니 오히려 더 한다”는 냉소적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해명은 옹색하기 그지 얺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에 있어 부적정한 처리 등으로 문제가 제기된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지휘 보직에서 연구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그 해명 자체가 지극히 모호하다. 좌천 인사들이 과연 어떤 사건에서 무슨 비위를 범했는지조차 정부는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날 인사에 그나마 그럴듯한 논리를 제공한 것은, 정부를 대신해 나선 진보성향 매체다. 이들 매체는 좌천당한 검사장들에게 ‘우병우 라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날 옷을 벗은 4명 중 3명은 우병우 前 민정수석(연수원 19기)과 대학(서울대) 혹은 연수원 동기이거나, 우 전 수석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우병우 전 수석 사람들’로 엮는다면, 서울대 법대 출신, 연수원 19기 검사는 모두 ‘우병우 라인’이다. 우 전 수석 사건의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다.

    특정인과의 ‘인연’을 이유로, 검사장급 고위 간부를 한꺼번에 ‘정리해고’한 사례는 지금까지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공석 중인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지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먼저 검사장급에 대한 좌천 인사를 단행한 사실만 놓고 봐도, 이번 인사는 정상범위를 넘어섰다.

    이날 인사에 대해, 정부가 개혁을 명분 삼아 검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정 지검장에 대한 좌천은, 명분을 찾기 어렵다. 그가 통진당 해산 심판 당시 법무부 TF팀장을 맡은 공안통 검사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야권 일각에서는 ‘예견된 인사’ 혹은 ‘보복성 인사’라는 촌평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김이수(연수원 9기) 現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지명한 사실과 맞물려, 정 지검장에 대한 좌천 인사는 뒷맛이 더욱 개운치 않다.

    공교롭게도 김이수 후보자는 통진당 해산심판 당시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반면 당시 해산심판을 이끌어낸 숨은 주역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정 지검장은 이날 좌천 인사를 당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사건에서 각각 정부와 야당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던 두 사람의 상황이, 정권 교체와 함께 극명하게 엇걸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사가 검찰 중립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첫 걸음이라면, 적어도 개혁의 당사자인 검찰내부의 저항을 잠재울만한 명분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날 인사는 ‘문재인식 검찰 장악 플랜’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