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여전히 충격적인가" 질문에 靑 불편한 기색 역력
  • ▲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5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논의된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5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논의된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 대통령의 "매우 충격적"이라는 말과 함께 개봉했던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극(劇)이 황급히 막을 내렸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5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날 오후 열렸던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 보고누락' 관련 진상조사 결과를 전달한 사실을 설명했다.

    윤영찬 소통수석은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이런 (사드 발사대 배치) 관련 문구를 삭제토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누락 책임이 확인된 위승호 실장은 해당 직무에서 배제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당초 예상됐던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 한민구 국방부장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책임소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추가적인 조사 예정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민구 장관이) 지시를 했다든지 현재로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며 "민정(수석실)에서는 오늘 보고를 끝으로 더 이상의 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정의용 안보실장과 한민구 장관 사이의 오찬 과정에서 "그런 게 있느냐" 발언으로 '진실 게임' 양상으로 번졌던 일도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용두사미가 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두 분의 대화에는 사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공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추가적으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렇게 되면 국방부의 실장 한 명이 임의로 모 미군기지에 보관 중인 사드 발사대 4기의 존재를 보고서에서 지우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사드는 중국 측에서도 문제삼고 있듯이 발사대보다는 레이더가 핵심 설비다. 발사대는 그야말로 순수한 방어용 무기이기 때문에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는 2기가 실전 배치되든 6기가 전부 실전 배치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다가 사드 1개 포대가 레이더와 발사대 6기의 세트로 이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에게는 더욱 상식이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숨길 수 없는 내용을 숨기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요약하자면 숨길 수 없는 내용을,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구태여 숨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진상 조사'로 진상이 백일하에 규명되기는 커녕 오히려 없던 미스테리가 생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자신들이 내놓은 '진상 조사 결과'를 가리켜 "사실 우리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왜 그걸 구태여 누락하려고 했는지, 아직까지도 그 의도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청와대를 찾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날 정의용 실장은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 결과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사진DB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5일 청와대를 찾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날 정의용 실장은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 결과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사진DB

    바른정당도 이날 조영희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성급하게 제기한 문제를 위승호 정책실장의 잘못으로 수습하느라 애쓰는 모습"이라며 "위승호 실장이 사드 발사대 관련 사실을 의도적으로 누락할 이유가 있었는지 정말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부터 문제가 될 수 없는 사안을 놓고 국내정치 용도로 칼을 빼들었다가, 미국과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자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하기에는 너무 민감했던 국제정치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도로 칼집에 꽂는 과정에서 애먼 피가 흘렀다. 죽은 사람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의구심이 남는 것도 당연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여전히 충격적인가"라는 질문에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습의 모양새야 어찌됐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억울한 희생자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 '사드 보고누락 사태'는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한미 관계는 본격적으로 이달말에 열릴 정상회의 준비 국면으로 진입하게 됐다.

    정상회의를 불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라는 쓸데없는 볼거리를 개봉했다가, 미국 조야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해지고 딕 더빈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가 불만의 뜻을 전달하는 등 공기가 흉흉해지자, 서둘러 막을 내린 것이다.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이날 이를 가리켜 "(실장 하나 직무배제하는) 이 정도 결과라면 조용히 조사하고 소상히 발표하면 될 일이었다"며 "대통령의 격노로 지난 일주일간 국민을 불안하게 했으면서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까지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가 서둘러 막을 내린 것은 이날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측 인사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이날 청와대를 찾아온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제임스 시링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장을 상대로 "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를 위한 미 정부의 노력에 사의를 표한다"며 "사드 배치 관련 검토 과정은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브룩스 사령관과 시링 국장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신뢰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달말 열릴 예정인 한미정상회의가 끝난 뒤, 국면이 전환되거나 정치적으로 다시금 문제삼아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 '시즌 2'가 개봉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취재진에 "민정수석실에서는 더 이상 조사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해당 부처가 보다 시간을 가지고 조사를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객관적인 감사원을 통해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직무감찰을 의뢰해야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