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 인사' 의구심… "인사제청권·해임건의권 소신 행사 가능하겠나"
  • ▲ 총리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전 의원이 지난해 4·13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유세를 받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을 물려받아 출마한 배재정 전 의원은 장제원 의원에게 패배하며 낙선했다. ⓒ뉴시스 사진DB
    ▲ 총리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전 의원이 지난해 4·13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유세를 받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을 물려받아 출마한 배재정 전 의원은 장제원 의원에게 패배하며 낙선했다. ⓒ뉴시스 사진DB

    이낙연 국무총리가 총리비서실장에 친문(친문재인) 배재정 전 의원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실장에 자신과 접점 없는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비서실장조차 '하명 인사'를 하는 이낙연 총리가 책임총리로서 헌법에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총리비서실장에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전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배재정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뒤, 지난해 4·13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구(부산 사상)를 물려받아 출마했다가 낙선한 친문계 전직 의원이다.

    총리비서실장은 차관급으로, 국무조정실장(장관급)과 함께 총리실의 양대 보직으로 불린다. 정무적 기능이 강해 주로 정치인이 보직되는 국무조정실장과는 달리, 총리비서실장은 오랫동안 총리실에서 근무해온 공무원이 주로 맡아왔다.

    직전의 심오택 총리비서실장은 행시 27회 출신으로 계속해서 총리실과 국무조정실에서 근무해온 직업공무원이다. 그 전의 최민호 전 실장이나 이호영 전 실장도 각각 행시 24회와 29회 출신이다.

    간혹 총리가 정무적 역량이나 언론 대응에서 부족한 면모를 보이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언론인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는 있었다. 이석우 전 실장이 그런 경우로, 연합통신과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총리비서실 공보실장을 한 뒤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는 그 자신이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데다가 전직 4선 의원이다. 새삼 배재정 전 의원의 정무·공보 분야에서의 보좌가 필요할 '스펙'이 아니다.

  • ▲ 총리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배재정 전 의원이 은수미 전 의원, 진선미 의원과 함께 지난해 5월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 세 명의 전현직 의원은 모두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공천권을 쥐고 있던 한명숙 전 총리가 공천했다. ⓒ뉴시스 사진DB
    ▲ 총리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배재정 전 의원이 은수미 전 의원, 진선미 의원과 함께 지난해 5월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 세 명의 전현직 의원은 모두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공천권을 쥐고 있던 한명숙 전 총리가 공천했다. ⓒ뉴시스 사진DB

    그렇다면 결국 이 인사는 친문계의 입김이 서린 인사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전에도 친문계가 이런 식의 인사를 곧잘 해왔다"며 "뭔가를 밀어준 뒤 그 밑의 비서실장이나 사무총장 등에 자신들이 배려해야 할 친문계를 꽂아넣는 형식이 잦았다"고 귀띔했다.

    배재정 전 의원은 이른바 PK(부산·경남)친문 핵심 인사다. 계파색이 비교적 옅다는 관측도 있지만, 결코 옅지 않고 오히려 매우 짙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금의 친문계를 만들어낸 '원로' 격인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 비례대표 공천권 행사를 통해 낙점한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 중 한 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치러진 4·13 총선에 일찌감치 불출마할 뜻을 내비치자, 그 지역구를 물려받아 관리했다.

    최측근인 비서실장마저 혹시 청와대 하명으로 결정한 게 사실이라면, 이러한 총리가 헌법에 주어진 권한을 강단 있게 행사하는 '책임총리'가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헌법 제87조 1항은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인사제청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3항은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본인의 비서실장마저 친문을 임명해야 하는 국무총리가 과연 헌법에 규정된 인사제청권이나 해임건의권을 활용할 수 있겠느냐"며 "PK친문 비서실장 내정으로 '호남 총리' 기용의 탕평 인사 의미는 많이 퇴색됐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