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정치를 바꿉니다”“입신양명 좇지 않는 진짜 일군들이 정치인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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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최민식은 “참된 정치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퍼스트 룩]
    ▲ 배우 최민식은 “참된 정치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퍼스트 룩]


    사상 초유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조기 대선이 열린 5월 9일, 극장에선 ‘특별시민’이란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특별시민’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정치인들의 ‘선거전’을 스크린에 담아낸 블랙코미디 영화. 정치와 선거에 대한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이때 선거를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한 건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영화는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의 치열한 ‘선거 운동기’를 그려냈지만, 권력 지향적인 정치인이 등장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각 캠프의 치열한 유세전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5월 둘째 주에 치러질 ‘장미대선’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자칫 선거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도 있었기에 개봉 전 이뤄진 프로모션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에 응하는 배우들도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픽션일 뿐 실제 정치와는 무관함을 누차 강조했다.

    서울시장 변종구 역을 맡은 최민식 역시 “뉴스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파악한 다양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변종구’란 인물에 녹여낸 것”이라며 “특정인을 모델삼아 연기한 건 절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뉴스나 자료 등을 통해 접한 정치의 다양한 면모들을 참고했지만 특별히 매치한 인물이나 정당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따오는 식으로 인물을 구체화시켰기 때문에, 캐릭터를 연구할 땐 오히려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최민식은 “연기를 위해 사전 취재를 하면서 복잡한 역학 관계로 얽히고설킨 정치군상들을 많이 만나보게 됐다”며 “덕분에 이 세계에선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설정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있던 사람이 이번 대선엔 안철수 캠프로 오고, 반대로 그때 안철수 캠프에 있던 사람이 문재인 캠프로 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치인들이 성향이나 당적을 바꾸는 계기가 무엇일까 되게 궁금했어요. 그런 걸 유추해서 만든 신이 바로 고깃집 신이에요.


    변종구 시장은 자신의 가족마저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비정한 면모를 보인다. 아내와 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내뱉고 그가 한달음에 달려온 곳은 자신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 자주 찾던 단골 고깃집.

    하루 노동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오면, 어머니뻘 되는 여주인이 팔다 남은 밑고기를 슬쩍 싸주는 인심 좋은 식당이었다. 지금은 뼛속까지 나쁜 놈처럼 보이는 변종구도 한때는 소박한 꿈을 꾸던 보통 청년이었다는 얘기.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볼 때 헛헛한 마음이 들면 찾아가는, 바로 그런 곳이죠. 잘나가는 정치인 변종구도 한때는 배고픈 노동자 시절을 겪었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잖아요? 항상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전부는 아닐 거예요.


  • 최민식은 “변종구가 지자체 단체장이고 모든 걸 갖춘 인물이지만 내면엔 누적된 피로감이 상당할 것”이라며 “그런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성할 줄 모르는 ‘냉혈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도 싶었다”고 밝혔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어느 순간 자기를 반성하고 돌아보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변종구도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그는 돌이키질 못했어요. 그 추억이 어린 식당에서 (자신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는)길수의 입을 상추쌈으로 틀어막죠. 노동자를 위해서, 내가 이 세상을 바꿔보겠노라 외치던 그 식당에서 권력자가 된 변종구가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권력욕에 매몰된 정치인, 아군과 적군이 모호한 정치권,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운동꾼들의 세계를 그리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한없이 절망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절망이나 좌절은 아니다. 겁 없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상처만 입고 그 세계를 나온 박경(심은경 분)은 변종구 시장의 치부가 담긴 USB를 한 손에 쥔 채 ‘유권자’로서 정치인들을 심판하겠다고 다짐한다. 어찌 보면 맥 빠진 결론일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혐오스러워하는 작금의 정치인들도 사실은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영화지만, 좋은 사람을 뽑아야 정치가 바로 선다는 건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변종구란 인물에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부여하지 않았어요. 저럴 수도 있겠다는 면죄부는 주기 싫었거든요.


    영화만큼이나 치열했던 ‘장미대선’은 정권 교체라는 결실을 맺었다. 최민식의 바람대로 유권자들이 부패한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올바른 선택을 했을까? 그는 대선 직전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뱃지 하나를 달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외국의 경우엔 정치인들은 그냥 봉사직이에요.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우리나라와는 다르죠. 우리도 이렇게 시스템을 바꾼다면 너도나도 뱃지를 달겠다고 다들 혈안이 되진 않을 거예요. 진짜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을 뽑고 싶은데, 이게 가능한 얘긴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 최민식 "제 영화를 보면 매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고 나면 항상 아쉬움 남아"
    "관객들도 마찬가지..신랄한 비평 두려워해선 안돼"


    '올드보이'의 복수남 오대수,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 장경철,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비리세관원 최익현, '신세계'의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과장, '명량'의 이순신 장군까지. 최민식은 언제나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는 철저한 몰입으로 영화 속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었다.

    차기 대권을 노리고 헌정 사상 최초로 3선에 도전하는 현 서울시장이자, 탁월한 정치 감각과 철저한 이미지 관리로 선거전을 선도하는 서울시장 후보 변종구 역을 위해 최민식은 표정 하나, 대사 한 마디에도 섬세함과 정확성을 기했다.

    "표현의 밀도나 정확성이 중요했고, 디테일한 면에 있어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고 밝힌 최민식은 카메라의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표정의 변화, 캐릭터의 감정을 분명하게 짚어주는 대사의 뉘앙스와 톤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보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아요. 작게는 디테일한 부분에서 영화 전반적인 부분까지…. 우리가 더 힘을 줬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고민들. 감독은 감독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아쉬움이 남죠. 아쉬움이 남는 게 어떤 면에선 다음 작품을 위해선 도움이 돼요.


    현장에서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난 최민식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알파고가 아닌 이상, 당시엔 베스트라고 생각해서 OK 테이크가 나온 장면임에도 불구, 나중에 완제품을 보면 '아, 저게 아니었구나'라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이렇게 되풀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뭔가 영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자신이 매번 촬영 분에 대해 다른 느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도 동일한 심정일 것"이라며 "배우나 제작진의 의도와는 달리 그걸 소비하는 분들은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하나의 창작물을 갖고 천편일률적인 호평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에요. 그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또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좋게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은 숨길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돼요. 아, 이런 지점에서 이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 다른 의외성도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니터링, 리뷰가 굉장히 중요해요. 단순히 관객의 머릿수로만 판단하면 안되죠.


    최민식은 "한 작품을 통해 곱씹어봤던 내용들, 자신이 다른 캐릭터와 어떻게 어우러졌고, 전반적인 밸런스는 어땠는지를 되짚어보는 작업은 다른 작품을 찍을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장르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를 뿐이지, 작업하는 과정이나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법은 공통 분모가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민식은 "영화라는 것은 배우와 제작진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 속에 탄생하는 종합예술품"이라며 "각자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작품을 위해 의견을 절충해 나가는 모습은 어찌보면 정치와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저희가 촬영한 모든 분량을 바구니에 듬뿍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항상 적절한 접점을 찾아야해요. 이 이상은 안된다. 여기에서 더 자를 순 없다고 합의를 보는 거죠. 그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당장은 스트레스인데, 좀 떨어져 보면, 정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보람이 있어요.


    최민식의 다음 작품은 '남산'으로 결정됐다. '신세계'에서 악연으로 만났던 이정재와 또 다시 찰진 연기 호흡을 맞출 예정. 이정재가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남산'은 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를 주무대로 펼쳐지는 첩보액션물이다.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제공 = 퍼스트 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