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입장을 직접 물어본 것이 뭐가 문제냐."

    진성준 문재인 TV토론 단장의 이 말을 듣고 한참을 귀를 의심했다. 노무현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여부를 직접 북한에게 물어본 것이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라는 말에 너무도 큰 괴리감을 느꼈다.

    당황스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날 대선 티비토론에서 비슷한 말을 다시 들어야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왜 그런 결정을 했고, 그런 절차가 왜 필요했었는지를 분명하고 단호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요한 것은 당시 정부 결정이 잘된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이지 진실공방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북한인권'에 대한 이슈를 당사자인 우리나라가 '북한'에 물어본(혹은 통지한) 것 자체에 대해 크게 꺼리낄 것 없다는 인식은 진성준 전 의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말이지만, 반대편에 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말도 대단했다.

    홍 후보는 "(내가)경남지사 때 좌파·친북단체에 대해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보수 정부가 반대 진영에 있는 분들에게는 지원을 안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를 지지했던 코미디언들을 배제했다"며 "그 것을 그대로 두고 지금 와 죄를 묻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 놀라운 것은 이런 극단적인 정치인의 발언을 바라보는 여론의 호응이다. 심상정 후보나 홍준표 후보의 말을 '소신', '사이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옹호하는 반응이 많았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를 살펴봐도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상 중에 '안보', '경제' 등 전통적 가치 외에도 '솔직한 대통령'을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겉과 속이 다른'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것 같다"며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극단적 화법에 속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무리 '맞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가 시대정신이라 하지만, 정치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우려스럽다. 적어도 국가안위와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는 안보 문제나 평등·공정성에 대한 헌법적 가치에서만큼은 '다르다'가 아닌 '옳다 그르다'가 나뉘어야 한다는 얘기다.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소통하는 것을 '생각이 다른 것'이라는 사람과, '좌파 단체와는 소통 안해'라는 것을 속시원하게 생각하는 여론이 계속 된다면 통일과 국민통합은 영원히 묘연해질 수 밖에 없다.

    가장 각성해야 할 집단이 정치권이다. 그리고 또 언론 미디어다. 인기영합을 위해 청량감 가득한 자극적인 언행과 사건만 쫓아다니고 있다. 입으로만 통합을 외치면서 실상은 '제 편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다간 대한민국은 천갈래 만갈래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귀족노조를 만들고,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 시키고, 부자들을 옭아매 세금복지를 펑펑 하고 싶다면 그 또한 민주적 절차를 거치면 된다.

    하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존립에 직결된 안보 문제가 그렇다.

    핵무기를 들고 협상을 시도하는 북한과 '소통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너무도 위험하다. 설령 그런 인식은 국민 99%가 찬성한다 할지라도, 단 한 사람은 '옳지 않다' 해야 겠지만, 지금의 정치권과 언론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두말한 것도 없이 한반도는 전례없는 위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