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지가 돼 버린 언론과 ‘두 개 잣대’


    역사적인 탄핵 결정 선고일 아침,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정미 재판관은 잊고 미처 빼지 못한 헤어롤(헤어롤러)을 뒷머리에 매단 채 출근했다. SNS는 순식간에 “일하는 여성의 참모습”이니 “감동적”이니 하는 찬사로 도배됐고, 언론은 이런 반응들을 여과 없이, 아니, 앞장서 더 부풀리기까지 해 가며 보도에 열을 올렸다. 반면, 3년 전 세월호 침몰 이후 내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는 “공무(公務)보다 치장에 공 들이는 여성”의 표상으로 비난받았다(제1장 ‘이정미의 헤어롤’).

    돌이켜 생각해 보자. 국가 대사를 앞둔 공직자라면 의관(衣冠)부터 가다듬고 집을 나서는 것이 상식 아닌가? 헤어롤조차 빼지 못한 채 허둥지둥 출근하는 재판장의 모습은 감동적이기는커녕 허둥지둥하는 모습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사려 깊지 못한 처신 아닌가? 똑같은 여성 고위공직자인데 한쪽의 허술함은 박수받고 다른 쪽의 단정함은 오히려 비난받아야 하는가?

    특별검사팀의 활동기간 동안 ‘특검의 입’을 맡은 이규철 특검보는 매일매일 바뀌는 고가의 패션으로 ‘코트왕’ ‘패션왕’ 등의 별명을 얻었다. 반면, 최순실 씨가 피의자로 검찰에 처음 출석한 날 소동 중에 벗겨진 신발이 프라다 상표임이 알려지자 최 씨는 그날로 “프라다를 신은 악마”로 지탄받았다(제5장 ‘코트왕과 프라다를 신은 악마’).

    고가의 코트와 수트, 소품을 날마다 바꿔 가며 출근하는 것은, 변호사 출신 특검보의 개인적 취향일 수 있다 하자. 국민의 이목이 쏠린 매일의 특검팀 공보활동에서, 공보의 내용보다 담당자의 패션이 더 중요한가?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알았다면 이 특검보 자신부터 스스로 돌이켜 보며 의관을 가다듬었어야 하지 않은가? 사치에 가까운 ‘공작새’ 특검보는 패션왕으로 찬탄받고, 몇십만 원짜리 구두 한 짝으로 피의자는 악마가 돼 버리는 기현상을 우리 언론은 냉정하게 지적하기는커녕 부화뇌동하는 추태를 보였다.

    막장의 끝은, 독일에 은신한 정유라 씨를 취재하러 간 기자가, 취재가 여의치 않자 정 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고 검거 과정을 ‘특종’ 보도한 사건이다. 전쟁 취재 나간 종군기자가, 아군 측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취재의 본분을 저버리고 손수 총을 들고 전투에 나간 격이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를 법규로 명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거나, 심지어 위험에 빠진 사람을 신고하지 않은 구경꾼을 처벌하는 법규(‘착한 사마리아인 법’)가 있는 나라에서조차, 기자는 신고의무에서 열외라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불의의 감시자로서 기자의 역할은 ‘기관을 상대로’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상대로’ 고발하는 것임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제9장 ‘정유라 신고하고 특종 한 기자’)



  • 촛불과 공권력의 ‘바람’ 앞에 언론은 알아서 먼저 누웠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얼떨결에’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1월부터, 파면당한 대통령이 사저(私邸)로 돌아간 2017년 2월까지 약 100일간, 대한민국의 최고권력은 ‘촛불’과 ‘특검’이었다. 이 100일간 우리 언론은 민심으로 포장된 촛불, 정의의 탈을 쓴 권력의 광풍 앞에서 ‘바람보다 먼저 눕는’ 행태를 보여 주었다.

    알다시피, 책 제목 『바람보다 먼저 누운 언론』은 민중문학의 아이콘이었던 김수영의 시 「풀」을 인용한 것이다. “바람보다도 빨리 눕고 (중략…)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시 구절에서 '풀'은 민중을, 바람은 부당하게 탄압하는 권력을 상징한다. 비슷하게, 한 대권 주자도 “검찰은 딱 한 명의 눈치를 보고 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눕지만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 미리 눕는다”고 말한 바 있다.

    탄핵 보도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언론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보통 일이 아니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언론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은 탄핵을 둘러싼 사상과 이념의 차이 때문에 그러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탄핵 전후 과정에서 언론이 보인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왜곡과 선동, 천박하고 유치한 선정주의에 혀를 내둘렀다. 왜 그리 기자들은 오만방자한지, 젊은 그들이 벌써 권위주의에 절어 있다고 혀를 찼다.

    언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공정성과 객관성에 있다. 기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편파성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의 편파성보다 언론이 더해서야 되겠는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부터 탄핵심판이 끝나기까지 언론의 보도는 웬만한 단어로는 표현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언론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보도가 수두룩했다.

    언론은 한국 현대사의 일대 사건인 탄핵 사태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데 실패했다. 탄핵 법정, 탄핵심판을 여론법정, 여론재판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 책은 언론이 본래의 기능과 역할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보도를 했는지를 조목조목 따지기 위해 펴낸 것이다.

    아무리 언론을 증오하는 사람들이라도, 언론의 잘잘못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그 증오에 명분과 정당성이 생긴다. 혹 분별 없는 언론 보도에 부화뇌동하거나 과장·왜곡·선동 보도에 현혹 또는 오도된 사람들도 언론의 잘잘못을 올바르게 알아야 미몽과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이 발간되고 읽혀져야 하는 이유들이다.

    <목차>

    1. 이정미의 헤어롤

    스타 재판관의 권위주의적 행태 / 해프닝 이상이 된 헤어롤러 / 공직자는 의관부터 정제해야 / 헤어롤은 소박, 올림머리는 사치? / 계속된 언론의 ‘맹목적 띄우기’

    2. 국정 농단

    ‘농단’ 표현부터가 편파적 / 법 위에 여론법정ㆍ언론재판

    3. 박영수 특검의 가벼운 입

    무능, 오만, 탈법의 밥다리 / 기자들과의 회식은 위법 / 날조된 기립박수와 눈물

    4. ‘법꾸라지’

    비속어 남발은 언론 품격 문제 / 짓밟힌 피의자의 자기방어권

    5. ‘코트왕’과 ‘프라다를 신은 악마’

    패션쇼가 돼 버린 특검 브리핑 / ‘공작새’ 특검보가 더 문제 / 구두 한 짝으로 마녀가 된 피의자 / 특검보의 사치는 무죄?

    6. 차병원그룹의 피해

    “복마전 차병원… 아니면 말고” / 억측 경쟁에 사설까지 가세 / 개인 병력 공개는 사생활 침해 / 무혐의…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7. ‘탄핵 악인’ 돼 버린 변호사

    도 넘은 언론의 ‘김평우 죽이기’ / 스스로 쓰레기가 된 언론

    8. 묻혀 버린 “삼족을 멸한다”의 진실

    시시비비보다 침입자 행패에 초점 / 사실확인 회피한 미꾸라지 특검보

    9. 정유라 신고하고 특종 한 기자

    “편들었으면 보도하지 말라” / 세상을 상대로 신고하라 / 전무후무한 ‘기자의 취재원 신고’ / 실종된 ‘기자 근성’

    10. 왜 두들겨 맞았을까?

    폭력은 폭력일 뿐 / 조폭보다 무서운 ‘펜폭’ / “왜 기자를 째려봐?” / 오만과 무례를 열정과 혼동 / 겸손 없는 특권은 갑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