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뉴데일리DB
    ▲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뉴데일리DB

    요즘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오는 문자를 보기가 두렵다. 온갖 페이크(fake·가짜, 허위) 뉴스를 삭제하면서 이런 것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때는 받은 문자의 90% 이상이 페이크 뉴스인 날도 있었다. 한국의 좌파권은 원래부터 이런 허위 정보 제조창이었다.

    선동에 취약한 한국 사회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드는 기술은 입신의 경지였다. 들고 싶은 예들이 너무 많지만 최근 뜨거운 이슈였던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허위 뉴스와 정보는 하도 방대해 간추리기도 벅차다.

    누구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 누구의 전처와 굿판을 벌였다, 성형수술을 했다, 프로포폴을 맞고 잠을 잤다 등 서로 모순되는 얘기가 줄줄이 사실처럼 유포됐다. 압권은 용왕님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일부러 승객들을 구조 안했다는 주장이다.

    나쁜 것은 빨리 배운다고, 요즘은 우파권의 페이크 뉴스도 비록 양과 악질적인 면에서 크게 뒤지지만 만만치 않은 수준에 올라왔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대통령 탄핵 소추가 절차상 하자이기에 위헌"이라고 발언했다는 가짜 '녹취록' 뉴스 문자를 본 게 열 번이 넘는다. 이런 허위 정보는 소셜미디어와 오프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진짜처럼 유통된다.

    탄핵 정국에서 이런 쓰레기 정보를 기사화하는 얼빠진 언론 매체도 많았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특히나 흥분 상태에서 허위·추측·선정적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몇 달간 지속됐다.

    상당수 언론 기관이 옐로 저널리즘(시선을 끌고자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를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경향)의 극치를 보였고, 나라 자체가 저질 옐로페이퍼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어떤 방송은 구치소에 수감되면 항문 검사를 한다는 것을 무슨 큰 뉴스라도 되는 양 되풀이해 얘기하고 자막에 넣었다. 체육특기자의 학점을 올려준 교수에겐 연쇄살인마들에게도 주어지는 얼굴 노출을 피하는 등의 프라이버시의 보호가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SBS같은 지상파 방송도 3월24일 저녁 뉴스에서 박근혜 정부가 고의로 세월호 인양을 6개월간 지연시켰다는 터무니없는 '의혹'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보도했다. 이 방송사는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프로포폴 투약이라는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한 허지웅씨를 '대선 주자 국민 면접' 프로의 면접관으로 기용했다.

    수면 유도제인 프로포폴은 한번 주사의 효과는 길어야 10분이고, 많이 오래 맞으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내시경이나 미용 시술 등 1시간 이내 시술에 주로 쓴다. 7시간 용도라면 수면 유도제가 아닌 마취제로 전신 마취를 한다.

    과거 이런 페이크 뉴스의 소셜 미디어 전파자로 이름을 날린 원조는 소설가 공지영과 코미디언 김미화였다. 이런 행태로 비난을 받자 공씨가 한 변명은 꽤 유명하다. "제가 알아볼 의무는 없습니다. 제가 신문사입니까? 방송국 보도본부장입니까?"

    그런데 이 말은 본의 아니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임 있는 언론 매체 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 철저한 사실 검증을 해야 하고, 데스크와 보도본부장이나 편집국장 같은 최고 책임자들이 취재된 기사를 꼼꼼히 체크하고 취사선택해야 하는 게이트 키핑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언론과 사이비 언론의 차이이다.

    과거 기사쓰기가 힘들 때의 권위 있는 언론 기자들은 이런 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방송을 포함해 '언론 기관'이 엄청나게 많이 생기고 나서는 이런 기본의무가 헌신짝처럼 내버려졌다.

    발로 열심히 뛰어서 얻은 진짜 정보를 가지고 손으로 (정성스레) 쓰는 것이 진짜 기사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저질 정보를 뒤지며) 손으로 찾은 '정보'를 발로 (괴발개발) 쓰는 게 소위 기사가 돼버렸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저질 기자와 언론의 창궐은 페스트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됐다.

    나는 사회의 암적 존재인 최순실 일가의 얼굴과 기사를 보면 구토를 느낄 정도로 혐오감이 든다.

    그들의 행각은 국민의 공분을 살 만큼 저질적이었다. 철저히 취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추측과 선정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문제였다. 더구나 여러 번 얘기가 바뀐 '태블릿PC 취득 경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취재한 언론도 거의 없었다.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증거효력이 없기에 이 문제는 확실히 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또한 최씨 일가만큼이나 혐오스럽고 암적 존재인 고영태 일당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 녹음·녹취록이 나왔는데도 침묵하는 다수 매체를 진정한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고영태를 '의인(義人)'으로 치켜세운 것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법정에서 최순실이 "고영태가 마약 전과자"라는 증언을 하면서 고씨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고씨는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둘 중 하나가 위증죄를 저지른 것이다. 누가 위증했는지는 맥락을 살펴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수사기관이건 언론이건 쉽게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다. 최씨건 고씨건 법정에서 위증을 버젓이 한 것에 대해 검찰이건 언론이건 침묵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저질 페이크 뉴스를 제조하고 유포하는 사람들, 본분을 망각하고 편파적이고 선정적인 엉터리 기사를 쏟아낸 일부 언론, 그런 기사를 주로 대문에 올려놓는 거대 포털들의 무책임함 등도 최씨와 고씨 못지않은 사회의 암 덩어리는 아닐지.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본 기사는 조선일보 2017년 4월 5일자에 실린 칼럼을 필자가 개정·증보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