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러시아 오페라가 온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은 오는 20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러시아의 대작 '보리스 고두노프'를 선보인다. 국내 단체가 직접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지난해 초연으로 드보르작의 '루살카'를 선보인데 이어 동구권 오페라 시리즈의 일환이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은 1989년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내한 이후 28년만이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4일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러시아 오페라 중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민족주의 오페라의 바이블이다. 러시아 오페라의 정수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무소륵스키는 뼛속 깊이 러시아인으로 본토 유럽의 음악를 변화시킨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곡가이다. 반면 차이콥스키는 민족주의보다는 서양에 동화된 작곡가다. 한국 관객들에게 러시아 오페라를 처음 보여주기 때문에 핵심인 '보리스 고두노프'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무소륵스키(1839~1881)가 완성한 유일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푸시킨의 동명희곡이 원작으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러시아를 지배했던 실존인물 보리스 고두노프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그린다. 그는 황권 찬탈의 야심을 품고 황태자를 살해하고 그 망령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무소륵스키는 러시아 역사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 곳곳에 화려한 기교의 아리아 보다는 러시아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선율의 장엄하고도 숙연한 합창과 중창을 배치했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공연에서는 1908년 림스키-코르사코프 제2개정판의 '보리스 고두노프'가 무대에 올려진다.

  • 2015년 '안드레아 셰니에'에 이어 국립오페라단과 다시 조우한 스테파노 포다 연출가는 "이 작품은 인간사와 거대한 역사를 담아낸 벽화이며,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러시아 민족의 한(恨)이다. 그 중심에는 '햄릿'이나 '맥베드'보다 더 복잡한 인물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유려한 테크닉, 소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스타니슬라브 코차놉스키가 지휘를 맡으며, 베이스 6명과 메조소프라노 5명이 합류한다. 주인공 '보리스 고두노프' 역의 동구권의 국보급 베이스 오를린 아나스타소프와 미하일 카자코프의 활약이 기대된다.

    러시아의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와 한국의 메조소프라노 양송미는 '마리나' 역에 더블 캐스팅됐으며, 테너 신상근은 '그리고리' 역을 맡는다. 베이스 이준석·박준혁·김대영·이진수와 메조소프라노 양계화·홍유리·최혜영, 테너 서필·이석늑·민경환, 바리톤 손동철, 소프라노 구은경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총출동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의 성악가들은 러시아 오페라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언어를 꼽았다. 양송미는 "독일,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3배 정도 더 힘든 것 같다. 지난 1월부터 러시아어 수업을 받고 있다"며 "처음에는 끝까지 남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음악 안에서 재미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광활한 러시아 대륙의 대서사적 역사, 차르의 지배를 받던 러시아 민중의 구슬픈 정서가 응집된 작품이다. 러시아 민족 특유의 장대하면서도 음울한 단조풍의 선율, 웅장하면서도 숙연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이 어우러져 이탈리아 작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김학민 예술감독은 "핍박 받았던 민중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인 작품인 만큼 군중 장면, 즉 작품 내에서 합창단의 역할에 특별한 의미와 해석을 부여할 것"이라며 "국립오페라단은 판에 박힌 레퍼토리만 보여줘선 안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다양한 나라의 오페라를 계속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 [사진=국립오페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