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노점상·상가 찾아다니며 설득...‘노점 잠정 허용구역’ 제도 정착
  • [편집자 주]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이해 당사자들이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해소한 사례를 수집·연구하고 있다.

    위원회가 취합한 갈등 해결 사례들은, 이해당사자들이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게도 유익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는 위원회의 협조를 얻어, 갈등 조정 우수 사례 15편을 연재한다.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회 현안 가운데 하나지만,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힘든 난제 중 하나가 바로 '노점 갈등' 이다. 

    생계를 위해 노점을 선택해야 하는 노점 상인과, 불법 노점 때문에 장사가 힘들다는 상가 상인, 통행에 지장을 받는다는 일반 시민들의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각자 처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해법은커녕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경기도 부천시 역시 노점 갈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부천시 홈페이지 '시장에게 바란다'를 통해 접수된 민원 10건 가운데 1건이 노점과 관계된 내용일 정도로, 이 문제는 해묵은 과제 중 하나였다.

    시민들은 "노점이 너무 많아 통행이 어렵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주변 상가 상인들은 "불법 노점이 너무 많아 장사가 안 된다"며 부천시에 단속 강화를 요구했다. 생계를 길거리 장사에 의존해야 하는 노점 상인들은 ""우리도 부천시민인데, 어디 가서 무얼 먹고 살란 말이냐"고 핏대를 세우며, 단속이 아닌 대안 마련을 호소했다. 

    부천시가 갈등 해결을 위해 처음 선택한 방식은 '단속' 이었다. 시는 이를 위해 2000~2012년까지 47억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단속 기간에는 노점 상인이 잠시 줄어드는 '반짝 효과'가 있었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 ▲ 2012년 부천시는 '노점 장점 허용구역제' 실시 계획을 밝혔지만 노점 상인들은 "노점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료 제공
    ▲ 2012년 부천시는 '노점 장점 허용구역제' 실시 계획을 밝혔지만 노점 상인들은 "노점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료 제공


    ‘단속’ 위주의 정책은, 상가 상인과 노점 상인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 생계를 위협받은 노점상들이 전국 단위 연대단체에 가입하면서, 이들의 집회 및 시위가 과격해지는 역기능도 발생했다.

    이때 부천시가 내놓은 대안이 바로 ‘대화’였다. 

    시는 상가 상인, 노점상, 시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안을 고심한 끝에, 노점 정책의 방향을 단속에서 ‘관리’로 전환했다. 

    부천시는 2012년 9월, ‘노점 잠정 허용구역제’를 시행하면서 근본적 해법을 찾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지만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기업형 노점을 퇴출시키고 생계형 노점을 중심으로 허가제를 시행해, 노점을 양성화하겠다는 시의 계획은 처음부터 노점 상인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노점상들은 "허가제는 노점 양성정책이 아니라 말살정책"이라며, 제도의 철회를 요구했다. 노점상들의 거리행진과 대규모 시위, 반대집회, 단식 농성 등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험악해졌다.

    단속과 대화라는 갈래길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던 부천시는 마지막 순간 대화를 선택했다. 시는 노점 상인들과 200회가 넘는 실무협의, 간담회, 개별면담 등을 통해 결국 노점 상인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부천시에서는 우선 노점상들과의 신뢰 회복과 그분들의 오해를 푸는 데 주력했습니다. 노점 상인들과 함께 노점실무협의회를 구성해 대화를 시도했고,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 당시 노점 담당팀장이었던 박동정 사무관.

    시 공무원들은 노점 상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노점상 허가제는 말살 정책이 아니라, 생계형 노점을 양성화하기 위한 정책임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시는 허가제를 통해 기업형 노점을 가려내고, 생계형 노점을 집중 양성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가끔씩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는 노점 상인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허가제 정책의 '시행기준 및 자격기준'을 만들어냈다.
     

  • ▲ 부천시는 각고의 노력의 끝에 시의 노점 상인들과 '공동협약식'을 맺을 수 있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제공
    ▲ 부천시는 각고의 노력의 끝에 시의 노점 상인들과 '공동협약식'을 맺을 수 있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제공


    3년 간의 노력 끝에 부천시는 지난해 10월20일, 전국 최초로 노점 상인들과 함께 '지자체 노점상 공동 협약식'을 체결했다. 노점과 상가 상인 사이의 마찰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판매 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품목 및 시간 제한제' 등의 새로운 기준도 만들었다. 

    협약 체결의 결과, 부천 지역 노점상은 2011년 505개에서 지난해 305개까지 줄어들었다. 

    노점상들은 "예전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할 때는 마음이 참 불안했지만 지금은 부천시에서 허가를 받아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어 좋다"며, 제도 시행을 반겼다. 

    노점이 정리되면서 시민들의 보행 여건도 좋아졌다. 인근 상가 상인들도 더 이상 노점 영업에 불만을 갖지 않고 있다. 

    부천시의 노점 갈등해결 및 사회 통합 사례는, 전국의 30여개의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을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다.

    "부천시 노점 정책의 성공 요인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은 것입니다. 상생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접점을 찾은 것이죠. 노점 제로화는 현실적 대안이 아닙니다. 부천시 노점 정책의 목표는 '노점 제로화'가 아닌, 적정수 유지 관리입니다."

    "아직 단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지만, '노점 잠정 허용구역'이라는 범위 안에서 문제를 바로 잡고 있고, 모든 문제를 대화와 설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부천시 김영진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