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들, 신뢰 배신당했다 느껴… 올바른 통치구조 결핍에 좌절"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박근혜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귀국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내 정치권 입문을 앞두고 친박계와 선을 긋는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오는 21일(한국시각) 뉴욕에서 미국에 주재하는 국내 매체 특파원들과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인 반기문 총장이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 내의 계파 갈등과 내홍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느냐가 분당(分黨)을 중단시킬 수도, 탄력을 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기문 총장은 18일 미국 뉴욕의 외교협회(CFR)가 주최한 초청 간담회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초래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라며 "6·25 전쟁 이후 최대의 정치 혼란"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기와 같은 시대가 아닌)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은 사회인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70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왔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에 또 한 번 놀라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내 정치 정세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수위 또한 어느 때보다 높다는 지적이다. 이날 반기문 총장은 이 사태에 대해 '신뢰의 배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가치 판단을 하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은 "국민은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다"며 "올바른 통치구조(Good Governance)가 완전히 결핍된 것에 좌절하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국 혼란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거버넌스', 즉 통치구조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귀국 이후 정치권 일각의 개헌(改憲) 운동에 합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박계의 정신적 구심점인 박근혜 대통령을 높은 수위로 비판한 것이나, 새누리당 비박계가 주도하고 있는 개헌 운동에 대한 호의를 표명한 것 모두 친박계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정치적 언사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오는 21일 열릴 국내 매체 주미특파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이보다 더 진전되고 구체적인 입장을 나올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귀국 이후 정치권 입문이 확실시되는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친박계와 함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면 비박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그에 관해 명료한 언급이 없다면 새누리당의 내홍 사태는 해를 넘기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반기문 총장은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일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반기문 총장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며 "회복력이 있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곧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앞서 반기문 총장을 겨냥해 "오랜 해외 생활로 국내 정치에 빈약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국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말로 응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이번 일이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며 "개인이나 조직의 이익에 앞서 공공선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당리당략에 매몰되고 비선에 의존하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등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들에게 우회적으로 일침을 가한 것이라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