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생중 50년은 투쟁의 역사...자유민주에 목숨 바치겠다"
  • [연재] 이승만史 (1) 부산정치파동⓲ 서울 중앙청서 제2대 대통령 취임식

    최초의 직선 대통령 탄생..."자기가 독재하려고 개헌했나?"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오메나, 우리가 나가서 대통령두 뽑는대유? 그래두 되는 거래유?”
    석유 등잔불을 켜 놓고 다듬이질 하는 부엌 아줌마가 바느질하는 어머니에게 묻는다.
    “그럼, 좋은 세상이지. 지난번 우리 양반 선거 때두 안 찍었지? 이번엔 꼭 찍어.”
    우리 양반이란 나의 아버지를 말한다. 동네 이장(里長)을 오래 하던 39세 아버지는
    그해 4월 면의원(面議員) 선거에 등 떠밀려 출마하였는데 제꺽 당선되었다.
    국민 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생 나는 면의원 아들로 출세(?)하여 으쓱거리던 그때,
    이번엔 대통령 선거 투표날이 다가온다.
    “손가락으루 찍는대유? 뻘건 인주 묻혀서...” 아줌마는 신기하다는 듯 자꾸 웃는다.
    “아녀, 붓두껑으루 찍는 겨. 걱정 마러, 내가 가르쳐 줄텡께. 잘못 찍으면 헛수고여.”

    충청남도 당진(唐津) 바닷가 소나무 마을에 삼복더위 여름 밤이 깊어간다.
    사랑방으로 달려간 나는 장기판을 기웃거리며 빨리 어른 되어 투표란 걸 해 보고 싶었다.
    제헌국회 선거 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는데 한해에 연거푸 선거를 세 차례나 하다보니
    아버지 사랑방에 밤마다 모이는 마을사람들 화제도 자연 시국 이야기가 많았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란 이름을 나는 처음 들어봤다. 학교에서도 못 들었던 그 이름.
    “이승만 찍어야지?” 한 사람이 말하면 “아암, 그래야지.” 여기저기서 맞장구쳤다.
    “전쟁 중인디 무슨 선거를 이렇게 자주 헌다나? 면의원, 도의원, 대통령에 부통령...” 
    “이게 민주주의란 거여. 미국처럼 되는 거라구. 북한 빨갱이 놈들은 어림두 없잖응감.” 
    미군과 세계각국 군대들을 끌어다가 전쟁하는 미국 박사 이승만은 하늘 같은 어른,
    그분 덕분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들이 이어진다.
    장기(將棋) 두며 저마다 피우는 독한 담배 연기로 사랑방은 코가 매워 숨막힐 지경이다.
    그날 밤에도 나는 건너 마을 반장님을 두판 내리 이겨버렸다.
  • ▲ 정부통령 후보 등록 마감상황. 52.7.28일자 동아일보ⓒ동아DB
    ▲ 정부통령 후보 등록 마감상황. 52.7.28일자 동아일보ⓒ동아DB
    최초의 직선제 선거전...부통령 9명 난립...저마다 '이승만 짝' 경쟁

    건국 4년만에 역사상 최초로 시행하는 대통령 직접선거는 26일이 후보등록 마감.
이날 선포 두달 넘긴 비상계엄령이 선거분위기를 위해 28일0시를 기해 해제령이 내렸다.
다음은 동아일보 1면 머리 기사:
 [대통령 부통령 선거 입후보등록은 지난 19일 개시하여 26일 하오12시 마감하였다.
이날 등록은 마감시간 몇분 전에 부통령으로 조병옥씨가 최후로 등록을 한 것으로 끝마쳤는데
이로써 대통령에는 이승만, 이시영, 조봉암, 신흥우 4씨가 입후보등록을 완료하였고, 
부통령에는 이윤영, 조병옥, 함태영, 임영신, 전진한, 이범석, 백성욱, 이갑성, 정기원 등
9씨가 출마케 된 것이다. 한편 중앙선선거위원회에서는 27일 상오10시부터 국무회의실에서
정부통령 입후보자의 기호 추첨을 하였는 바, 대통령 입후보자의 기호순위는
1호 조봉암, 2호 이승만, 3호 이시영, 4호가 신흥우씨로 정해졌다. 그리고 부통령 순위는......]
동아일보는 앞으로 1주일간 전개될 선거전이 백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면서,
신익희 국회의장이 ‘정치적 불이익 우려’를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1단 기사를 실었다.
장면 역시 “출마하고 싶지만 나의 지지자들이 피해를 볼 것 같아 포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직선제 헌법 확정후 ‘이승만 천하’를 실감한 정치판은 이처럼 출마를 주저하는 형편이었다.
투표를 해보나마나 대통령은 ‘이승만 당선‘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국당이 내각제 개헌안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도 이승만과 감히 맛설 만한
대통령 감이 없었던 탓이요, 이승만을 제거하고 싶었던 미국조차 ‘대체 인물’이 없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진작 비밀작전을 포기하고 이승만과 타협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등록 마감이 임박해서야 민국당은 부통령을 사임한 이시영과 조병옥을
정부통령 후보로 등록했다. 조병옥은 마감시간 5분전에야 허겁지겁 서류를 냈다.
무소속 조봉암은 공산당시절 이래로 자기만의 목표가 있었으므로 유일한 좌파후보였고,
부통령에 출마한 무소속 노동운동가 전진한은 이도저도 아닌 중간파로 분류되었다.

개헌과 함께 전국민이 ‘국부(國父) 이승만’을 추앙하는 일방적인 열기에 들뜬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은 맥이 빠졌으나, 난립한 부통령 후보들의 경쟁은 이상한 열기를 뿜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친(親)이승만’ 점수를 내세우는 이승만 덕보기 싸움이 벌어진 것.
“위대하신 민족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서 밀어주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아니다, 내가 진짜 이승만 박사의 충성스러운 일꾼이다” “아니다, 나도 친히 점찍어 주셨다”
끼리끼리 치고받는 모습은 오랜 뒷날 ‘친DJ’ ‘친노’ ‘친박’ 현상의 원조라고나 해야 할까.
전쟁 중에 휴전협상과 남북통일등 국가적 과제가 발등의 불인데도 국정공약이나 정책경쟁은
찾아볼 수 없이 이승만의 선택받은 부통령이 누구냐에만 쟁점이 집중된 판이었다.
  • ▲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운동 보도. 52.7.31일자 동아일보ⓒ동아DB
    ▲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운동 보도. 52.7.31일자 동아일보ⓒ동아DB
    개헌 공신들 세력화...새로운 당쟁 조짐에 이승만 '쐐기'

    집권 2기를 앞둔 이승만은 새로운 정국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문제점에 직면하였다.
    이승만은 “나는 어느 누구도 부통령으로 지명한 일이 없다”는 담화부터 발표해야 했다. 
    “여러 분이 부통령후보에 입후보하고 나서 대통령이 지명한 것처럼 자기편에 유리하게
    선전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특별히 누구를 지명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 말은 이승만-이범석을 추대한 자유당에 직격탄이었다. 이승만이 이범석을 친 것이다.
    왜 그랬을까...옛날 왕권을 둘러싸고 죽자사자 덤비던 당쟁이 이승만을 둘러싸고 또 생겨나
    개헌공신 다툼을 벌이는 신판 당쟁, 못 말리는 한국인의 당파 근성에 머리를 내두른 이승만은
    원내외 자유당 파벌과 원외자유당내 세력다툼을 보다 못해 폭탄선언을 던졌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원외자유당내 민족청년단(족청)의 지도자 이범석은 끝내 재기할 수 없게 된다.
  • ▲ 함태영 부통령.(자료사진)
    ▲ 함태영 부통령.(자료사진)
    한발 더 나아가 이승만은 정쟁의 화근이 될 부통령 쟁탈전에 아예 쐐기를 박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