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타블로이드 ‘더 선’, 北외무성 공개한 9쪽짜리 비망록 보고한 것이 ‘편지’로 오역돼
  • 英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이 보도한 '김정은이 트럼프에 보낸 편지' 기사. 실은 '편지'가 아니라 北외무성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비망록'이다. ⓒ英'더 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 英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이 보도한 '김정은이 트럼프에 보낸 편지' 기사. 실은 '편지'가 아니라 北외무성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비망록'이다. ⓒ英'더 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지난 23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9쪽 짜리 편지를 보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은 영어로 된 해외 매체의 사이트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사실은 지난 21일 北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北외무성의 ‘비망록’ 내용이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관련 내용을 소개한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편지’라고 부른 것이 다시 국내에 곡해돼 전달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美대선 당선 이후 쥐 죽은 듯 조용하던 북한 측은 지난 21일 외무성 명의로 ‘비망록’을 공개했다. 내용의 핵심은 예전과 똑같이 “미국의 전례 없는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때문에 우리도 핵무장을 하고 있으니, 미국이 먼저 평화적으로 나오라”는 주장이었다.

    지난 22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北외무성이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9쪽 분량의 ‘비망록’에 대해 소개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하나마나한 북한의 주장을 빼고, 그 핵심을 “(北외무성의) 비망록은 김정일 사망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책동과 핵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전면 대결전에 나선 때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주장하며, 2012년 이후 감행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제재 행위들을 상세히 나열했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소리’는 또한 “北외무성은 비망록을 통해 미국을 향해 ‘북한의 달라진 전략적 지위를 똑바로 보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을 철회할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즉 북한은 트럼프 당선자를 향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美-北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화해 제스처를 보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화해 제스처’에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의 해체, 사드 배치 철회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22일 ‘뉴시스’ 등 국내 언론들이 보도한 北외무성 비망록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국내 언론들에 따르면, 北외무성은 비망록을 통해 “미국은 민족의 대국상(大國喪) 직후인 2012년부터 우리의 제도를 붕괴시키려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추구했다”거나 “오바마가 직접 세계의 면전에 나서 공화국에 대해 악랄한 비방 중상을 일삼았다. 오바마 정부가 비방중상을 일삼다 못해 최고존엄을 걸고 든 것은 천추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등의 황당한 주장으로 채워져 있다.

    北외무성은 또한 비망록을 통해 “미국이 공화국에 대한 침략야욕에 첨단무장장비와 전략자산들을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끌어들여 핵으로 위협 공갈했다”면서 “남조선에 대한 고고도 미사일 방위체계 ‘사드’ 배비 책동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고 비난하며, 북한이 2016년 들어 자행한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의 원인이 모두 미국 측에 있다는 억지를 부렸다.

    ‘미국의 소리’와 함께 한국 언론들도 보도한, 北외무성의 ‘비망록’은 지난 23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소문의 출처’인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의 설명과도 동일하다.

    ‘더 선’의 보도를 살펴보면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매체를 통해 이 같은 ‘메모’를 공개했다” 사실 한국 언론과 ‘미국의 소리’ 등에서 보도한 내용과 거의 같다. 하지만 국내 네티즌들은 한국 언론의 보도는 찾아보거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영국 등 외신들의 보도가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관련 내용을 퍼뜨리면서 ‘비망록’을 ‘직접 보낸 편지’라고 착각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 당선자와 차기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 중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신없던 부시 정부나 ‘전략적 인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준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트럼프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명확한 결과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자와 그 측근들이 모두 철저히 ‘효율성’과 ‘실현 가능성’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뤄왔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내세운다면, 어느 정도의 ‘부수적 피해’를 감소하고라도 김정은 체제 자체를 소멸시키려 할 수도 있다.

    이런 트럼프 정부에게 ‘개뿔도 없는 미치광이’로 평가받는 김정은 집단이 아무로 ‘협상’이나 ‘대화’를 제안한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 입장에서는 어떤 대응책이나 전략을 세우기가 매우 어려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