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상의 맹활약 '발췌개헌안' 탄생...야당은 국제구락부 대회 박살...
  • [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⑮ 무초와 클라크...무초와 김성수...미국 어디로?

    "한국 야당은 못믿어"...반정부 시위 좌절에 허탈한 미국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무초가 돌아왔다. 계엄령 선포전날 미국에 갔던 미국대사 무초가
    2주일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6월6일 오후,
    오랜만의 대화는 2시간 가까이 길어졌다..
    모교인 브라운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귀국했던 무초는 난데없는 비상계엄령과
    라이트너 대리대사의 긴급 보고를 처리하며 본국 상부와 사태를 논의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돌아온 것이다.
    부산 거리에는 ‘내정간섭 말라’는 새로운 벽보들이 부쩍 늘어났다.
  • 부산 임시 대통령관저로 이승만을 방문한 무초와 밴플리트 장군. 이승만 대통령.(왼쪽부터. 1951.7.3)(자료사진)
    ▲ 부산 임시 대통령관저로 이승만을 방문한 무초와 밴플리트 장군. 이승만 대통령.(왼쪽부터. 1951.7.3)(자료사진)
<조속히 계엄 해제, 국회의 대통령 선거, 이승만이 당선되면 지지, 낙선후 반항하면
유엔군이 계엄선포 이승만 구금, 미군정 실시>--이런 복안을 가져 온 무초가
이승만에게 어디까지 이야기 하였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다만 이승만의 주장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대사, 미국이 나의 고귀한 목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강경책을 쓰고 있다.
 언커크 등이 내정간섭을 노골적으로 하고 각국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세계가 나에게 대항하는
꼴이 되어 있으니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졌소.”
이렇게 말하는 이승만은 눈에 띠게 기력이 쇠잔해 보이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무초는 보고서에 썼다.
  •  
  • 영국 공사 애덤스(Alec Adams)도 이승만을 찾아와 한시간 넘게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이 연합하여 압력을 가하였으며, 영국 국방상과 외무상이 곧 방한 할 것이라고 전해왔다
    프랑스도 주한 대리공사를 시켜 정부각서를 이승만에게 전달하였고,
    유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igve Lie)는 언커크 입장을 지지, 국회를 해산 말고
    계엄령을 해산하라고 독촉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유엔 총장 멧시지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타임, 뉴스위크등 미국 주간지들은 이승만의 얼굴을 희화화하여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는 물론, 영국의 더 타임스 등등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입을 모은 듯이 이승만을 비난하고 “국회를 해산한다면 쿠데타적 수법”이라거나 “이승만을 보다 강력하게 압박하라”는 사설들을 줄줄이 써내고 있었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 특파원들은 미국대사관이나 언커크등의 이승만 압박 내정간섭 활동에 앞장 선 대변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재주꾼 정치인 장택상, 이승만과 '절충안'을 만들다

    장택상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 좋고 수완 좋고 돈 많은 마당발 정치인 국무총리,
    이승만이 총리로 임명하던 날부터 ‘묘책’을 찾아 특유의 정치활동에 들어간 그였다.
    직선제와 내각제의 개헌안 정면 대립 국면을 돌파해야할 임무,
    그것이 바로 이승만이 자신에게 부과한 숙제임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절충안을 만들자’ 이승만도 국회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절충안의 골자가
    ‘대통령 직선제’임은 물론이다.
  • 미군정시절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하지 사령관의 연설을 통역하던 모습.(자료사진)
    ▲ 미군정시절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하지 사령관의 연설을 통역하던 모습.(자료사진)
    그는 그날 이승만 대통령 앞에 그 절충안을 내밀었다.
  • 그날은 트루먼 각서가 전달되던 날, 이승만이 보여주지 않던 트루먼 각서를
    장택상은 미대사관 요원을 불러내 읽어 보았다.
    그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협박' 각서에서 어딘지 ‘타협’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장택상으로부터 절충안을 받아 본 이승만은 창밖을 바라보며 10분 넘게 말이 없었다.
    “자네는 이걸로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단 말이지?”
    “예, 각하!” 재빨리 답하는 장택상은 자신감이 솟는다.
    옛날 ‘선생님’은 이제 ‘각하’로 변하였다.
    경상북도 칠곡의 명문가 대지주 셋째아들로 태어난 장택상은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 유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허정, 조병옥 등과 함께 이승만의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할 때부터 이승만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 대쪽같은 ‘선생님 대통령’의 얼굴에서도 타협의 희망을 본 장택상은
    이미 국회 안에 직선제 개헌 지지세력을 상당수 확보해 놓은 터,
    원내 이승만지지 국회의원 모임 ‘삼우장(三友莊)파’ 52명과
    장택상의 친목모임인 영남출신 ‘신라회(新羅會)’ 40여명이 그들이다.
    (삼우장파는 삼우장 음식점을 근거지로 활동하여 생긴 이름.) 
    옛날부터 지역파벌은 피할 수 없는 한국정치 고질병,
    그때나 지금이나 영남출신은 여당이고, 호남출신은 야당인 모양이다.
    삼우장파와 신라회를 독려하여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두 세력 합해도 개헌선에는 30여표나 모자란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지침에 따라 장택상이 마무리한 절충안의 골자는 이렇다.
    ①대통령 직선제.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 뒤 국회 인준을 받는다.
    국회가 3분의 2이상으로 불신임을 내면 총리는 사임.
    ③대통령은 총리의 제정으로 각료를 임명하며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발췌개헌안’- 총리 불신임과 함께 총리에게 각료 추천권을 주고
    각료는 국회동의를 받게 하는 조항이 내각책임제 개헌안의 요소를 가미한 것,
    직선제를 관철하려는 이승만이 꺼내 든 타협의 카드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트루먼의 고압적인 항의 각서에 실질적인 응답 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 국회 해산을 며칠간 보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 성명. 52.6.6일자 조선일보ⓒ조선DB
    ▲ 국회 해산을 며칠간 보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 성명. 52.6.6일자 조선일보ⓒ조선DB

    ▶이승만 '국회 해산 연기' 성명...국내외 '타협' 신호탄 올리다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들끓는 부산거리 시민들은 계엄이든 아니든 정치에 무관심이었으나
    난데없는 소문들이 쏟아져나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일본으로 도망쳤다느니 어느 유명인사들이 미국 망명신청을 했다느니, 국회가 곧 해산되면 선거는 언제하느냐는 둥,
    종잡을 수 없는 루머에 특히 국회의원들이 전전긍긍 국회는 날마다 성원미달이다. 
    끼리끼리 모여 ‘미국이 이승만에게 무슨 통고를 했다’는데 또 무슨 조치가 나올까,
    설마 국회를 해산까지야 하겠느냐는둥 우왕좌왕하는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장택상 세력은 절충안 각파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알게 모르게 펴나가고 있었다.

    이때 이승만이 또 하나의 ‘충격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회 해산을 연기하고 순리로 해결하겠다”는 성명은 조선일보가 톱기사로 보도한다.
    [이대통령은 4일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국회를 민의에 따라 즉시 해산하기로 하였으나
    민의를 차차 준행하는 국회의원이 생긴다하여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국회해산을 며칠 지연시키는 터이나 소기대로 안되면 부득이 민들대로 국회해산을
    공포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7도에서 들어온 공문이 일치하게 국회를 해산시키라는 결의안으로
    도의원 대표들이 와서 대통령에게 진정하며 결의를 표시하게 된 것이니
    본대통령은 이 민의를 준행하기 위하여 즉시 국회를 해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으로는 민국의 초대대통령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다는
    전례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 동시에 국회의원 50여명이 공개로 연명선언하고
    민의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을 공개 성토하였으며 다른 국회의원들도 민의를 준행해야 한다는
    분들이 여럿 있다 하므로 아직 해산령은 중지하고 국회에서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며칠 지연하는 것이다....(중략)....내가 민중에게 설명코자 하는 바는
    우리가 더욱 인내하는 마음으로 수일만 참아서 순조로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요. 이대로 못되면 부득이 합헌대로 공포할 것 뿐이다. 국회를 해산시키지 않고라도
    그 결과는 민중이 요구하는 대지(大旨=직선제)를 실시함으로 결정될 것이니
    며칠만 기다려주기 바란다.”
    이 성명이 나가자 정국에 아연 ‘서광이 비친다’는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는
    장택상의 개헌 절충안 내용을 소개하며 민국당의 움직임 분석등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음날 국회는 오랜만에 성원이 되었다.
    국회해산을 보류한다는 성명을 듣자 숨었던 의원들이 모처럼 나타난 덕분이다. 
  • 북한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들도 직선제 지지대회를 열었다.(자료사진)
    ▲ 북한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들도 직선제 지지대회를 열었다.(자료사진)
    이승만이 ‘국회해산 보류’로 카드 하나를 버리는 체 ‘수일간 보류’ 단서를 붙이자
    직선제를 요구하는 세력에 불을 댕긴 폭발력은 예상대로 더 크게 일어났다.
    지난 지방의회선거로 국민의 정치력을 조직화한 이승만은 그 국민의 힘을 믿고 활용하여
     ‘국민이 주인되는 직선제 헌법’을 반드시 관철하려는 목표는 더욱 굳어졌고,
    무초가 집요하게 촉구하는 미국 정부의 계엄령해제 요구엔 갈수록 요지부동이었다.
    각도 의희 대표들은 날마다 대통령관저에 몰려들어 국회해산을 소리쳤다.
    동아극장에서는 1천5백여명의 인파가 모여 전국지방의회대표자회를 개최,
    이승만 지지를 결의하고 국회로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다.
    ‘민의 배반 국회는 즉시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라' 똑같은 합창 반복이다.
    정부는 200개가 넘는 지방의회가 직선제지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고 발표했다.

    무초, 클라크에 SOS...'한국 야당은 뭐하느냐' 배후공작

    무초를 다그치는 미국무성은 무초의 비관적인 보고서를 접하면서 강공책을 다시 마련한다.
    “국회 해산 보류? 이것 말고 이승만이 달라진 게 없단 말이냐?”
    국무성 차관보 히커슨(John Hickerson)은 유엔군의 적극 개입책을 재확인하였다.
    *이승만이 계엄령을 즉시 해제하도록 독촉할 것.
    *국회를 열어 언커크와 협력, 유엔이 바라는 타협을 이룰 것.
    *이승만이 요구를 거부하거나 국회를 해산하면 유엔군이 계엄령 선포.
    국무성 실무진이 작성한 이 ‘정세보고서’에는 몇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승만은 정신적 파산자. *이승만을 대신할 ‘국민적 대표인물(national brand)’이 없다면
    빨리 대안 찾아야. *한국 육군총장의 주도로 군부와 지식층, 언론을 단결시켜 대처할 방안 등.
    곁들여 ‘국회’ 항목에서는 “한국정치가 복원되려면 국회의 신뢰가 중요한데
    일부 의원들은 무능, 부패, 파괴분자들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한다”고 지적하였다.

    바위에 계란 치듯 이승만과의 메아리 없는 대면에 지친 무초는 결국 강공책에 기대었다.
    유엔군의 직접개입을 다시 촉구하는 무초의 보고서는 ‘만약의 경우’를 열거한다.
    *이승만의 국회해산 *이승만의 육체적 정신적 장애 발생 *이범석의 경찰 쿠데타
    *부산 폭동 등의 상황에 대비하여 이승만이 반항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결행하라는 것.
    무초는 어느 경우라도 어디까지나 미국이 아닌 유엔의 이름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 
    이승만이란 철벽앞에 외교적 압력은 약효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하면, 무초로서 할 일은 다 했으니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가 행동에 나설 때라는 것,
    그는 일본 대사를 통하여 클라크를 급히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클라크 사령관은 무초 대사를 만나지 않았다.
    무초의 편지를 받은 동경주재 미국대사 머피(Robert Murphy)가 편지를 보냈다.
    “...한국의 미국 대사관은 처음부터 국회 편만을 들었을 뿐, 이승만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고 클라크가 생각한다오. 클라크 사령관 대리인 히키 장군은 ‘한국 국회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이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할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있소. 미국으로서는 공정하고 현실적인 절충안을 목표로 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오.”
    클라크는 북해도에 출장중이므로 대신 편지를 보낸다는 머피의 말을 믿어야 할까.

    무초는 답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한국의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클라크에게 서운하고 실망했다는 투의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클라크 사령관이 미국 군부와 국무성의 역할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거듭 만나자고 호소하듯 재촉하였다. 
    “이승만은 절대로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알고 있소.
    그럴 경우 미국은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며,
    나는 유엔군 사령관에게 기대는 길 밖에 없소. 당신을 믿을 뿐이오.”
    사실이었다. 무초는 더 이상 이승만에게 매달려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벌써 깨달았다.
  • 무초 대사와 밴플리트 장군의 요담을 머리기사로 올린 동아일보 52.6.7일자. 유엔 사무총장의 서한과 프랑스 공사의 이대통령 방문등 각국의 이승만 압박에 관심을 집중한 보도.ⓒ동아DB
    ▲ 무초 대사와 밴플리트 장군의 요담을 머리기사로 올린 동아일보 52.6.7일자. 유엔 사무총장의 서한과 프랑스 공사의 이대통령 방문등 각국의 이승만 압박에 관심을 집중한 보도.ⓒ동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