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⑬ 비상계엄령...김성수 사표...국회해산 경고

    비상계엄 선포!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 해체해야” 선언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 ▲ 피난수도 부산의 임시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대, 기마 경찰까지 나와 이들을 막고 있다.(자료사진)
    ▲ 피난수도 부산의 임시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대, 기마 경찰까지 나와 이들을 막고 있다.(자료사진)
    정부의 ‘중대발표’설이 떠도는 5월의 피난수도 부산항은 조용할 날이 없다. 
    오늘도 부민동의 임시 국회의사당(경남도청)주변은 아침부터 밀려드는 천여명의 군중들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높이 외치는 구호 소용돌이에 파묻혔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청년대가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반역자”
    “반민족 국회의원을 추방하라” “살인범 서민호 의원의 석방결의를 취소하고 총살하라”는 등
    갈수록 과격한 요구를 연호하며 국회를 포위하고 의사당 안으로 돌입하려 하자
    제지하는 기마경찰대와 충돌,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 ▲ 국회를 포위한 데모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게 청원서와 건의문을 냈다. 52.5.20일자 동아일보ⓒ동아DB
    ▲ 국회를 포위한 데모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게 청원서와 건의문을 냈다. 52.5.20일자 동아일보ⓒ동아DB
    데모대, 국회의장에게 '국회 해산' 요구 청원서

이 데모대는 신익희 국회의장과 장택상 국무총리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신익희 국회의장에게: 국민이 이미 연판장으로 소환한 반민족의원들을 추방하고
살인범 서민호의 석방결의을 취소하는 동시에 석방결의를 모책한 의원을
추방할 것을 청원합니다. 신성한 의정을 오도하는 반민족 국회의원들을
국회에서 제명하여 주실 것을 엄중히 요청하나이다. 만일 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국회전부가 반민족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국회의 즉시 해산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 요청이 다시 무시당할 때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의 국회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국회의원을 선거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것입니다“
(제명 요청 의원 14명 명단 첨부)

“장택상 총리에게 건의문: 국민의 연판으로 소환결의한 국회의원들을 즉시 국회로부터
축출하는 조치를 단행할 것. 애국 군인 살해범 서민호를 총살하고 동범인 석방을 책모한
반민족국회의원을 축출할 것. 만일 정부 및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것을 단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조국의 위급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애국애족의 의검을 높이 뽑아들고
반동국회를 타도하는 일대 혁신을 일으킬 것을 엄숙히 통고하나이다.”
  • ▲ 연일 국회를 포위하고 '반민족 국회의원' 추방을 요구하는 데모대는 경찰과 충돌,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52.5.24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 연일 국회를 포위하고 '반민족 국회의원' 추방을 요구하는 데모대는 경찰과 충돌,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52.5.24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이승만, 무초에게 “직선제 개헌 꼭 이루고 대통령직 떠난다”

  • 23일 임시경무대(도지사 관사)로 향하는 미국대사 무초는 눈을 감았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시위대의 아우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어렵사리 인파를 뚫고 대통령 임시관저에 도착한 무초는
    동반한 라이트너(E. Allan Lightner) 공사를 이승만에게 소개하고
    자신이 10여일간 본국에 가있는 동안 대사대리를 맡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미현안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이 참에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며 뜸을 들인 무초 대사는
    “최근 시중에 나와 대사관 직원들이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하며
    파당적인 행동을 한다는 무책임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본론을 꺼냈다.
    이승만은 짐짓 의아한 얼굴로 “금시초문”이라면서
    “내가 그런 말을 들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응답하였으나 다음 순간,
    눈빛을 가다듬은 대통령은 “말이 나온김에 그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다음과 같이 긴 설명을 격한 어조로 털어놓는 것이었다.
  • ▲ 이승만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전날 한국을 떠난 무초 미국대사.(자료사진)
    ▲ 이승만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전날 한국을 떠난 무초 미국대사.(자료사진)
  • “나는 앞으로 기껏 몇해 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오.
    조국을 위해 하고 싶어도 못한 일들이 많기는 하나
    그 목표를 다 이룰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소.
    하지만 국민의 복리엔 관심이 없이 자기들 욕망을 채우려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분파들의 파쟁을 막기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오.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기 전에는 대통령 자리를 떠날 수가 없을 듯 싶소.
    국민의 뜻을 따르는 단 하나의 길은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바꾸는 것 뿐이며, 이 목표만은 대통령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이와 같은 다짐과 함께 이승만은 내각제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면서
    미화 50달러짜리 신권현찰이 들어있는 몇 개의 트렁크를 무초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북한에서 홍콩을 거쳐 남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낸 것을 압수한 것”이라고 밝히고,
    “공산주의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들을 구속할 생각”임을 분명이 하였다.
    당황한 무초는 “이 돈을 왜 나에게 보입니까. 지금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으며,
    정치적 갈등이 불행을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응수하였다.
    무초는 그러나 말없이 노려보는 이승만의 눈빛이 심상찮음에 찔끔하였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밀송되었다는 돈 가방들을 대통령이 왜 미국대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도 신권 달러로 큰 돈이다. 이 돈뭉치들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공산당일수도 있겠으나,
    미국측 모처에서 한국 국회쪽에 보낸 비밀자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국회 강화”를 추진하며 대통령 교체작업을 은밀히 해온 무초로서는
    대통령 선출을 위한 국회본회의가 비밀리에 곧 열린다는 공작을 알고 있는 터인지라,
    달러뭉치까지 들이대는 이승만이 무슨 '중대발표'를 할는지 사뭇 불안할 수 밖에 없다.

  • ▲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이범석 국무총리(왼쪽)와 회담하는 모습.(1949년 자료사진)
    ▲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이범석 국무총리(왼쪽)와 회담하는 모습.(1949년 자료사진)
    무초를 보낸 이승만은 '간선 봉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다음날 24일 내무장관을 바꾸었다. 초대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을 불러 껴안듯이 팔을 잡았다. 
    “철기, 이번에도 나를 꼭 도와줘야겠소.” 이승만은 이범석의 무인다운 애국심을 믿고 있었다.
    철기(鐵驥)는 이범석의 아호, ‘민족과 국가 제일주의’를 외치는 민족청년단을 이끌며 당수 이승만을 돕는 원외자유당 부당수 이범석은 간곡한 대통령의 설명을 듣자 즉석에서 응락하였다.
    건국정부의 총리 출신이 총리 아래 장관자리를 두말없이 맡는 이범석을 보자
    측근들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이범석은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야. 지금은 이박사를 도와야 해. 공산당과 전쟁하는 이때 말을 갈아타자고 주장해선 안되지. 이박사를 도와 전쟁에서 이기고 봐야 한다.” 그는 ‘거사(擧事)’의 선봉장을 자임하였다.
    무초가 처음부터 ‘극우분자’라며 싫어하던 이범석이 전국 경찰권의 총수가 된 것이다.
    이승만은 드디어 정국돌파의 히든카드를 뽑아들 준비가 다 된 셈이다. 
    5월25일부터 월말 사이에 국회본회의를 열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국회 정보는
    벌써부터 알고 있던 터, 하루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닥쳐왔다.
    "‘미국이 조종하는 대통령 선거’는 막아야만 한다."
  • ▲ 비상계엄령 선포 보도. 52.5.26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 비상계엄령 선포 보도. 52.5.26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비상계엄령 선포...버스에 탄채 끌려간 국회의원 47명

    그날따라 때아닌 장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초여름 밤,
    잠자던 국회의원들이 첫새벽부터 정체모를 요원들에게 연행되기 시작하였다.
    특무대에 끌려가는 그들은 데모대가 추방을 요구한 명단의 ‘반민족 의원’들이었다.
    마침내 D-데일 25일, 전남북-경남-부산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얼마전 헌병 사령관으로 전격 발탁 된 원용덕이 부산-영남지역만 맡는 별도 계엄사령관,
    호남은 육군참모총장 담당, 2명의 계엄사령관을 둔 것 역시 이승만의 전술이다.
    계엄군 원용덕과 경찰 이범석, 직선제 개헌작전을 밀어붙이는 총사령관 이승만의 좌우에
    그가 신임하는 명장들을 배치한 것이었다. 
  • ▲ 국회에 등원하는 국회의원들을 태운 국회버스가 임시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헌병들이 검문, 공병대 견인차가 헌병대로 끌고갔다.(자료자신)
    ▲ 국회에 등원하는 국회의원들을 태운 국회버스가 임시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헌병들이 검문, 공병대 견인차가 헌병대로 끌고갔다.(자료자신)
    날이 밝아도 비상계엄령 선포를 모르는 시민들은 출근을 서둘렀고
    국회의원들도 국회 통근버스에 올라 부민동 임시의사당으로 향하였다.
    동래(東萊)에서부터 도중에 모두 47명을 태운 국회버스는
    계엄령 충격에 착 갈아앉은 의원들을 싣고 오전 10반쯤 경남도청(임시 정부청사) 정문을 지나
    의사당으로 사용하는 무덕전(武德殿:일제때 지은 별관) 앞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갑자기 헌병 10여명이 총을 들고 버스를 가로 막았다.
    “검문을 하겠으니 모두 내리시지요. 상관의 지시입니다.”
    “누구 맘대로 감히 우리를 검문한다는 게냐” 호통을 치는 의원들에게 헌병이 말했다.
    “이 버스에는 국제공산당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야? 빨갱이? 못 내린다, 내려라, 승강이가 벌어지고 구경하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덜커덩...버스 뒤 범퍼에 쇠고리와 쇠사슬이 걸렸다. 공병대에서 나온 군용 견인차다.
    의원들의 항거로 임의연행이 여의치 않자 계엄사령관 원용덕이 견인차를 부른 것이다.
    뒤꽁무니가 번쩍 치켜 들린채 덜컹 덜컹 끌려가는 버스에는 공교롭게도 야당의원들뿐.
    도착한 곳은 동래에 있는 제70헌병대, 이 건물은 영남지구 계엄사령부가 설치된 곳.
  • ▲ 일제시대 경남도청 구내에 별관으로 지은 무덕관. 피난시절 임시 의사당으로 사용했다.(자료사진)
    ▲ 일제시대 경남도청 구내에 별관으로 지은 무덕관. 피난시절 임시 의사당으로 사용했다.(자료사진)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 이승만, 국회의장단에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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