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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⑬ 비상계엄령...김성수 사표...국회해산 경고
비상계엄 선포!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 해체해야” 선언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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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수도 부산의 임시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대, 기마 경찰까지 나와 이들을 막고 있다.(자료사진)
정부의 ‘중대발표’설이 떠도는 5월의 피난수도 부산항은 조용할 날이 없다.
오늘도 부민동의 임시 국회의사당(경남도청)주변은 아침부터 밀려드는 천여명의 군중들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높이 외치는 구호 소용돌이에 파묻혔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청년대가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반역자”
“반민족 국회의원을 추방하라” “살인범 서민호 의원의 석방결의를 취소하고 총살하라”는 등
갈수록 과격한 요구를 연호하며 국회를 포위하고 의사당 안으로 돌입하려 하자
제지하는 기마경찰대와 충돌,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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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를 포위한 데모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게 청원서와 건의문을 냈다. 52.5.20일자 동아일보ⓒ동아DB
▶데모대, 국회의장에게 '국회 해산' 요구 청원서
이 데모대는 신익희 국회의장과 장택상 국무총리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신익희 국회의장에게: 국민이 이미 연판장으로 소환한 반민족의원들을 추방하고
살인범 서민호의 석방결의을 취소하는 동시에 석방결의를 모책한 의원을
추방할 것을 청원합니다. 신성한 의정을 오도하는 반민족 국회의원들을
국회에서 제명하여 주실 것을 엄중히 요청하나이다. 만일 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국회전부가 반민족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국회의 즉시 해산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 요청이 다시 무시당할 때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의 국회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국회의원을 선거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것입니다“
(제명 요청 의원 14명 명단 첨부)
“장택상 총리에게 건의문: 국민의 연판으로 소환결의한 국회의원들을 즉시 국회로부터
축출하는 조치를 단행할 것. 애국 군인 살해범 서민호를 총살하고 동범인 석방을 책모한
반민족국회의원을 축출할 것. 만일 정부 및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것을 단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조국의 위급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애국애족의 의검을 높이 뽑아들고
반동국회를 타도하는 일대 혁신을 일으킬 것을 엄숙히 통고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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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국회를 포위하고 '반민족 국회의원' 추방을 요구하는 데모대는 경찰과 충돌,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52.5.24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이승만, 무초에게 “직선제 개헌 꼭 이루고 대통령직 떠난다”
23일 임시경무대(도지사 관사)로 향하는 미국대사 무초는 눈을 감았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시위대의 아우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어렵사리 인파를 뚫고 대통령 임시관저에 도착한 무초는
동반한 라이트너(E. Allan Lightner) 공사를 이승만에게 소개하고
자신이 10여일간 본국에 가있는 동안 대사대리를 맡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미현안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이 참에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며 뜸을 들인 무초 대사는
“최근 시중에 나와 대사관 직원들이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하며
파당적인 행동을 한다는 무책임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본론을 꺼냈다.
이승만은 짐짓 의아한 얼굴로 “금시초문”이라면서
“내가 그런 말을 들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응답하였으나 다음 순간,
눈빛을 가다듬은 대통령은 “말이 나온김에 그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다음과 같이 긴 설명을 격한 어조로 털어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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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전날 한국을 떠난 무초 미국대사.(자료사진)
“나는 앞으로 기껏 몇해 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오.
조국을 위해 하고 싶어도 못한 일들이 많기는 하나
그 목표를 다 이룰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소.
하지만 국민의 복리엔 관심이 없이 자기들 욕망을 채우려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분파들의 파쟁을 막기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오.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기 전에는 대통령 자리를 떠날 수가 없을 듯 싶소.
국민의 뜻을 따르는 단 하나의 길은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바꾸는 것 뿐이며, 이 목표만은 대통령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이와 같은 다짐과 함께 이승만은 내각제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면서
미화 50달러짜리 신권현찰이 들어있는 몇 개의 트렁크를 무초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북한에서 홍콩을 거쳐 남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낸 것을 압수한 것”이라고 밝히고,
“공산주의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들을 구속할 생각”임을 분명이 하였다.
당황한 무초는 “이 돈을 왜 나에게 보입니까. 지금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으며,
정치적 갈등이 불행을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응수하였다.
무초는 그러나 말없이 노려보는 이승만의 눈빛이 심상찮음에 찔끔하였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밀송되었다는 돈 가방들을 대통령이 왜 미국대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도 신권 달러로 큰 돈이다. 이 돈뭉치들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공산당일수도 있겠으나,
미국측 모처에서 한국 국회쪽에 보낸 비밀자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국회 강화”를 추진하며 대통령 교체작업을 은밀히 해온 무초로서는
대통령 선출을 위한 국회본회의가 비밀리에 곧 열린다는 공작을 알고 있는 터인지라,
달러뭉치까지 들이대는 이승만이 무슨 '중대발표'를 할는지 사뭇 불안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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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이범석 국무총리(왼쪽)와 회담하는 모습.(1949년 자료사진)
★무초를 보낸 이승만은 '간선 봉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다음날 24일 내무장관을 바꾸었다. 초대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을 불러 껴안듯이 팔을 잡았다.
“철기, 이번에도 나를 꼭 도와줘야겠소.” 이승만은 이범석의 무인다운 애국심을 믿고 있었다.
철기(鐵驥)는 이범석의 아호, ‘민족과 국가 제일주의’를 외치는 민족청년단을 이끌며 당수 이승만을 돕는 원외자유당 부당수 이범석은 간곡한 대통령의 설명을 듣자 즉석에서 응락하였다.
건국정부의 총리 출신이 총리 아래 장관자리를 두말없이 맡는 이범석을 보자
측근들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이범석은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야. 지금은 이박사를 도와야 해. 공산당과 전쟁하는 이때 말을 갈아타자고 주장해선 안되지. 이박사를 도와 전쟁에서 이기고 봐야 한다.” 그는 ‘거사(擧事)’의 선봉장을 자임하였다.
무초가 처음부터 ‘극우분자’라며 싫어하던 이범석이 전국 경찰권의 총수가 된 것이다.
이승만은 드디어 정국돌파의 히든카드를 뽑아들 준비가 다 된 셈이다.
5월25일부터 월말 사이에 국회본회의를 열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국회 정보는
벌써부터 알고 있던 터, 하루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닥쳐왔다.
"‘미국이 조종하는 대통령 선거’는 막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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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계엄령 선포 보도. 52.5.26일자 동아일보 2면ⓒ동아DB
▶비상계엄령 선포...버스에 탄채 끌려간 국회의원 47명
그날따라 때아닌 장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초여름 밤,
잠자던 국회의원들이 첫새벽부터 정체모를 요원들에게 연행되기 시작하였다.
특무대에 끌려가는 그들은 데모대가 추방을 요구한 명단의 ‘반민족 의원’들이었다.
마침내 D-데일 25일, 전남북-경남-부산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얼마전 헌병 사령관으로 전격 발탁 된 원용덕이 부산-영남지역만 맡는 별도 계엄사령관,
호남은 육군참모총장 담당, 2명의 계엄사령관을 둔 것 역시 이승만의 전술이다.
계엄군 원용덕과 경찰 이범석, 직선제 개헌작전을 밀어붙이는 총사령관 이승만의 좌우에
그가 신임하는 명장들을 배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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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 등원하는 국회의원들을 태운 국회버스가 임시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헌병들이 검문, 공병대 견인차가 헌병대로 끌고갔다.(자료자신)
날이 밝아도 비상계엄령 선포를 모르는 시민들은 출근을 서둘렀고
국회의원들도 국회 통근버스에 올라 부민동 임시의사당으로 향하였다.
동래(東萊)에서부터 도중에 모두 47명을 태운 국회버스는
계엄령 충격에 착 갈아앉은 의원들을 싣고 오전 10반쯤 경남도청(임시 정부청사) 정문을 지나
의사당으로 사용하는 무덕전(武德殿:일제때 지은 별관) 앞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갑자기 헌병 10여명이 총을 들고 버스를 가로 막았다.
“검문을 하겠으니 모두 내리시지요. 상관의 지시입니다.”
“누구 맘대로 감히 우리를 검문한다는 게냐” 호통을 치는 의원들에게 헌병이 말했다.
“이 버스에는 국제공산당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야? 빨갱이? 못 내린다, 내려라, 승강이가 벌어지고 구경하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덜커덩...버스 뒤 범퍼에 쇠고리와 쇠사슬이 걸렸다. 공병대에서 나온 군용 견인차다.
의원들의 항거로 임의연행이 여의치 않자 계엄사령관 원용덕이 견인차를 부른 것이다.
뒤꽁무니가 번쩍 치켜 들린채 덜컹 덜컹 끌려가는 버스에는 공교롭게도 야당의원들뿐.
도착한 곳은 동래에 있는 제70헌병대, 이 건물은 영남지구 계엄사령부가 설치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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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경남도청 구내에 별관으로 지은 무덕관. 피난시절 임시 의사당으로 사용했다.(자료사진)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 이승만, 국회의장단에 설교
. 의사당 2층 의장실에서 이 광경을 내려댜보던 신익희는 조봉암과 김동성 두 부의장을 불러내
대책을 의논하다가 "대통령과 담판을 해보자"며 임시 경무대로 이승만을 찾아갔다.
“의원들이 혐의내용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이 끌려갔으니 일단 석방해주십시오.”
국회의장단의 요청을 받은 이승만은 작심한 듯 세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하였다.
“나도 할 말이 있소. 그동안 국회는 국민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많이 해왔소.
국회의원은 살인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오? 살인한 의원을 석방하라고 결의했는데,
이건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요. 내가 결정하겠으니 내게 맡기고 돌아가시오.”
언성을 높인 이승만은 의원들의 일탈행위들에 대해 일장설교를 퍼붓는 것이었다.
'담판' 하러 갔던 의장단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쫓기듯 국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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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이 계엄선포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성명을 발표. 52.5.29일자. 조선일보 1면ⓒ조선DB
▶"유언비어로 국가 분열 선동"...국회의원 석방 결의 무시
다음날 27일, 이승만은 비상게엄령을 선포한 이유등에 대하여 성명을 발표하였다.
“현 정치정세에 관하여서 공평한 이야기는 없고 근거없는 풍설이 유포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및 유엔 우방간의 기본적인 단결을
분열시키려는데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국내정세는 일부인사들이 말하는 바처럼
혼란하거나 위험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행정부가 취한 제반조치는 필요한 것이었고
또 오랫동안 밀려 내려온 것이다. 즉 5개지구에 대한 계엄령 선포는 증가된 게릴라 활동으로
말미암아 필요하며 일반 국민의 시위운동이 폭동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도 필요하였다. 각지구의 국민의 평화와 안전보장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부산의 바로 인근에서도 미군장병들이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살인은 처벌없이
행하여졌으며, 민의에 반항적이고 무책임한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공론은 비등하고 있다.
또 공산주의자들과 관계가 맺어진 것이 발각되어 당국에서는 동사건의 완전한 조사를 행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조사가 완료되면 그 전모는 일반에 공개될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무법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헌법에 의한 정부형태는
보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안된다.“
빨치산의 준동과 치안 불안, 그리고 공산당 관련 음모와 국회의원들의 민의 배반이
계엄령선포의 주요 이유라는 설명이다.
28일 국회는 가까스로 성원을 시켜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연행된 의원들은 12시간만에 30여명이 석방되고 9명이 구속되었다.
신익희는 30일에서야 ‘구속의원 석방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연행이 두려워 시내 곳곳으로 피신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관방으로 판잣촌으로 국제시장 골목 뒷방으로 숨어다니는 국회의원들은 연락할 방법도 없다.
더구나 ‘공산당 자금 수령’이란 가장 무서운 혐의인지라 석방 결의에 반대도 적지 않았다.
이 결의안은 그러나 이승만이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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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안과 구속의원 석방 동의안. 52.529일자 동아일보 ⓒ동아DB
▶국민의 '국회해산 요구' 청원서가 수천통 들어왔다
29일 이승만은 기자단과 만나 계엄사태에 관하여 장시간 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조선일보가 1면 톱기사로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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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민은 국회태도에 염증 / 국회는 그 자격을 거의 상실/ 이대통령 국회해산 언급
[부산29일=AP=합동, 스텐 카터 記] 이대통령은 29일 국회가 “그 자격을 거의 상실하였다”고
말하고 만약 그가 국회를 해체(해산)하면 한국국민들은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동 대통령은 기자단회견석상에서 “국회가 국민의 의견에 반한 대통령을 선거할수 없도록
국회를 해체할 것을 국민은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현행법에 의하면 국회는 오는 6월23일 이내로 신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현국회로 선거하면 이대통령이나 그가 지명하는 후보에도 반대할 것이다.
이대통령은 그 자신으로서는 차기에도 대통령에 취임할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다시 강조하였다. 대통령은 “나는 차기대통령에 입후보하지 않겠다고 전에 발표한 결정을 변경시키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이어 “나는 피로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더 젊고 활발한 인사가 이 직을 맡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언하였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만약 국민이 재출마를 요구할 때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는 특히 지적해 말하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을 매수할 목적으로 방대한 적색자금이 침투하여 온데 관하여서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말하였다. 동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금주 한국헌병에 의하여 체포된
국회의원 9명의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조사가 종결되려면
다른 자들도 체포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였다.
한편 이 대통령은 계엄령의 해제 일자 결정은 오로지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자기에게는 국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지방의회 및 개인으로부터의 청원서가 수천통이나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대통령은 한국헌법에는 국회 해체에 관한 조항이 없으므로
“이 헌법은 국민의 의사를 침범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동 대통령은 이어 국회를 해체할 한가지 길은 지방의회내의 국민대표들이 그들의 국회의원들을 불신임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하고 “국민은 그들의 신대표를 선출한 군리를 보유한다”고
부언하였다.
이 대통령은 “국민은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선거를 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라고 강조하고 “국민의 의사는 그 정신에 있어서 존중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였다.
동대통령은 이어 “국회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하여 방대한 적색자금이 침투한데 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는 정부로 하여금 즉시 조사를 하지않을 수 없게 하여 놓았다. 이 공산당음모에 관한
진상 공포는 불원 행하여 질 것이다“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부는 유명한 공산주의지도자 2명을 체포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2,3일내로 발표될 것이다.
계엄사태는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해제할는지 최종적인 결정은 국회의 어떤 결정과도 상관없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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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 대통령선거를 반대하고 국회 해산문제를 제기한 이승만의 기자회견 기사. 52.5.31일자 조선일보ⓒ조선DB
이날 오후 전국의 각도의회대표 14명이 이승만을 찾아와 ‘국회해산 요청’ 결의안을 전달하였다.
그동안 시위대의 구호와는 별도로 공식문서로 제출된 국회해산안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승만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중대결의를 표명하였다고 조선일보만 보도하고 있다.
“국가의 주인 민중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하고 상하양원을 설치할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현 국회의원 다수가 헌법을 개정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어 이를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까지 전개되고 있는 터이니 국민의 기본권리인 평등선거권을 국민에게 줌으로써
일부 소수자들의 행동을 봉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떠한 장난을
꾸밀지 모르나 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과감이 싸울 작정이다.
나는 내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며 소수 정상배들은 법에 의하여 단호처단할
것이다. 여러분은 함부로 망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정권을 도둑질 하려는 반대 분자들...거짓 선동 엄벌하겠다"
같은 날 이승만은 국민에게 경고하는 “허설(虛說) 단속처벌” 담화도 발표한다.
“근일에 파당들이 국회의원 몇 분자들을 연결하여가지고 헌법조건이라는 것만 내걸고
민의를 거부하고 정권을 도둑질하려는 음모로 허무한 거짓선전을 내외국에 전파하고 있으나
이 사람들이 여러해동안 이런 선전을 해오는 중에서 국내외의 중요한 언론기관에서는 이들의
허위 정보를 아는고로 신뢰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이 실정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모든 낭설을 이용하여
정부에 방해될만한 언론을 조작, 인심을 선동하는 중에 아래와 같은 말이 있는 줄 안다.
즉 어떤 장관은 사직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불합의하다는 것이고 혹은 대통령이 빌면서
사퇴하지 마라달라고 했다 하며, 또 한편으로는 유엔본부에서와 미국무성에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선전이 나온다느니, 이런 비루한 언동을 지금까지는 정부에서 방임해왔으나
지금같이 인민의 공의와 국회 사이에 의견충돌로 다소간 분란이 있는 경우를 당하여
이 이상 더 방임할 수 없으므로 이런 허설을 내는 사람은 신문상으로나 개인적으로나를 막론하고 이를 단속하고 검토해서 어디서 나온 근원을 알아 법으로 처벌할 것이다.....“
▶김성수 부통령 사임, 미군 병원선에 입원...장면도 미군 병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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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부통령 사임. 52.5.30일자 동아일보 ⓒ동아DB
같은 날 29일, 부통령 김성수가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였다.
지난해 5월 이시영이 사임한뒤 부통령에 선출된 김성수는
취임직후 각의에서 이승만이 신성모를 주일대사에 임명하는데
반대하다가 좌절되자 출근을 하지 않고 1년이나 칩거하던 중이었다. 사퇴결심을 알리자 신익희, 조병옥, 백남훈등 당 수뇌들이
“좀더 두고 보자”며 반대하였으나 김성수는 이승만과 정면대결을 택하였다. 대통령 임기와 선거가 임박하였고 내각제 개헌안이 통과될 희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시표를 내려면 나한테 내야지 왜 국회에 내나?
부통령도 결국 야당편이구먼.”
김성수가 구술하고 비서 신도성이 작성한 사임서를 전해받아 본
이승만은 역정을 냈다.
사임서에는 이승만이 “과도한 언사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한 대로 극렬한 문귀들이 많았다.
“직선제와 양원제 개헌은 사직(社稷)을 파멸하려는 반역행동”이라는 표현과 함께,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구속한 처사는 ”국헌(國憲)를 전복하고 주권(主權)을 찬탈하는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이승만을 맹공했던 것이다.
장택상 국무총리등 각료들도 이승만처럼 ‘시대착오적인 극언들'이라며 반발하여
반박문을 작성, 김성수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승만의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부통령은 나의 의견도 묻지 않고 사임했는데 정부에 대해 퍼부은 일방적 공격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메모를 국회에 보냈다. 국회는 사표 수리를 미루었다.
당시 ‘야당의 정치선언’으로 평가되었다는 인촌의 사임서는 그러나
초점이 내각제 개헌안에 대한 절대 지지론과 이승만에 대한 민국당의 반대노선에 집중되어
공감대가 좁아짐으로써 "국정 전반에 걸친 부통령 다운 폭넓은 식견은 부족하다"는 지적들이
야당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사임한 부통령 김성수는 입원하였다.
부산 앞바다에 오랜동안 정박해 있는 미군 병원선 헤이븐(Haven)호,
그 병실을 미국 측에 미리 부탁해둔 것이었다고 그가 후에 밝혔다.
비상계엄하에서 신변안전을 위해 잠시 ‘미국 땅’으로 피신한 셈인데,
지난 달 사임한 총리 장면도 역시 초량국민학교에 주둔한 미군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김성수의 경우, 미국병원의 의사는 ‘통원 치료하라’고 권고했는데도
미국 대사관이 굳이 입원시켜 ‘미국의 보호’를 받게 하였다는 주장들이 전해진다.
이런 상황은 장면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입원경위를 적어놓고 있다.
“총리를 사퇴한 뒤 어느 날, 미국 대령 한사람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리지웨이 장군 명령으로 왔는데 박사님을 병원으로 모시라는 특명'이라는 것,
측근이 지프차를 대기시키자 측근이 병원에 따라가는 것도 극구 만류하는 것이었다.”
무초 대사가 진두지휘하는 '국회 보호'에 따라 지도자들은 이렇게 미국의 품에 안긴다.
▶원용덕, 정치권 정면 비난..."자녀 병역기피, 국방비 횡령"에 분노
영남지구 계엄사령관 원용덕은 계엄의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면서
특히 직선제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겨냥하여 군부의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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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용덕 영남 계엄사령관(자료사진)
“국가존망의 위기에 있어서 그네들은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비국민적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애국애족을 부르짖는 그네들은 아들, 처자를 호위경찰 기타 교묘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시켜 상이군인 원호비나 유가족 원호비까지 쓰는 것은
실로 싸우는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기관인 그네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유리한 것을
주장하면서 싸우는 일선장병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것을 고치지 못하면 남한은 이슬과 같이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뇌리에는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기피 등 비리와 함께
미군 장성 자녀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는 장면이 교차하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지난 달 4월2일 밴플리트 사령관 아들이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다가 전사한 까닭이다.
“미군들 보기에 얼굴이 뜨겁다”며 그가 공개적으로 흥분하는 것은
장면 총리 두 아들이 당시 불가능한 유학비자로 미국에 머무는 것을 비롯하여
국방예산을 깎는 정치인들이 국방예산을 빼내 나눠먹는 기막힌 사례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군 장성들의 아들들 참전...워커 부자, 밴플리트 부자, 클라크 부자, 아이크 부자
원용덕 장군만이 아니라 당시 국군이 부럽고도 부끄럽고 그래서 더 용기를 솟아나게 하였던 일, 미군 장성들이 아들과 함께 참전하여 ‘듣도 보도 못한 나라’를 위해 부자가 목숨을 바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식 사고방식으론 상상도 못할 충격, 이를 알게된 한국군은 그래서 고위정치인들의
추태가 더더욱 경멸과 분노의 대상이 되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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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을 시찰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워커 대장(오른쪽)(자료사진)
6.25때 미군 장성들의 아들들이 전사한 것은 한두명이 아니다.
한국전쟁의 미군 전사자는 총 5만4천명, 부상자 10만여명,
이 중에 장성들의 아들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전사하였다.
작년(51년) 크리스마스 직전 8군사령관 워커 대장이 한국군 트럭과 충돌로 전사하였을 때
전선에서 달려와 아버지 시신을 거둔 것도 아들 샘 워커 대위였다.
밴 플리트 8군사령관 아들 지미 밴플리트 공군 중위가 압록강 남쪽 순천지역에 폭격 나갔다가
실종된 것이 4월2일 새벽3시, 이틀 후 ‘실종-수색’ 보고를 받은 밴플리트는
“수색 중단. 적지에서 수색작전은 무모하다”고 공군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린다.
아들을 잃은 밴플리트는 4월 부활절을 맞아 미군 전사자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우리 아들들은 국가의무와 봉사에 충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벗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고 썼다. 난생처음 보는 후진국 한국이 그들의 벗이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아들도 금화지구 저격능선에서 중공군과 싸우다가 세 차례나 부상당하여 후송 치료를 계속하였지만 그 후유증으로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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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플리트 8군사령관과 이승만 대통령.(자료사진)
이해 52년 11월 미국의 새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12월 방한하였을 때
그가 남긴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미국의 국가정신을 보여주는 감동으로 전해진다.
12월4일 전선을 시찰한 아이크(애칭)가 밴플리트 사령관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아버지가 전선의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말 같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최전방 미3사단 대대장입니다.” 아들을 잃은 밴플리트가 대답하였다.
담담한 밴플리트의 표정을 바라보는 세계2차대전의 영웅 아이크가 그 슬픔을 모를 리 없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배치시켜 주시오.” 아이크는 서슴없이 주문하였다.
모두 놀라고 당황하였다. 대통령 당선자가 자기 아들이 밴플리트 아들처럼 전사하는 것이 싫어서 공개적으로 후방배치를 요청하다니, 미국의 군사전통과 국가문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새 대통령의 명령이다. 술렁이는 좌중을 둘러본 아이크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도 아들이 전사한다면 슬프지만 나는 그것을 가문의 명예로 받아들이겠소.
그러나 만약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전투 중에 적군에 잡혀 포로가 된다면
적국은 분명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인질로 가지고 미국과 흥정하려 들 것이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불응할 것이오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다면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며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대통령인 나와 미국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 뻔하오.
이런 상황을 결코 원치 않으니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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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왼쪽)과 아들 존 아이젠하워.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는 이승만보다 15살 아래,
텍사스 출생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전쟁 조기 휴전” 공약을 내걸어 당선되었다.
당선되자마자 한국 전선부터 찾은 것도 그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휴전을 빨리 성립시키려면 ‘통일 없는 휴전 결사반대’를 외치는 고집쟁이 노인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방한기간 그는 이승만을 무시하는 제스처도 취한다.
몇 달 전 부산정치파동에서 이승만을 제거하려다가 포기한 트루먼정부의 고민을 알면서도
아이크는 ‘이승만과의 협상’이 휴전의 선결조건임을 깨닫기까지 또 여러 달의 세월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이크 방한 6개월전, 한국은 이제 막 ‘부산정치파동'의 열전을 시작하였다.
겉으론 내각제냐? 직선제냐? 헌법개정 국내당쟁 같지만 유례없는 약소국의 국제정치 전쟁,
이승만에게는 통일을 외면하는 미국과 정면대결 ’한-미전쟁‘의 승리가 목표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