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야와 물리적 헌정중단 '강제' 기도엔 찬성할 수 없다"
  • 사드 반대 김병준이 '거국내각'?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고문ⓒ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고문ⓒ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야당의 인정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국무총리 서리란 타이틀로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야당은 "왜 전화 한 마디 없이?" 그리고 "불통 통치의 연장 아닌가?'란 이유로 이번 총리 내정을 맹공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 누구와도 사전 상의를 하지 않은 것은 그의 강성(强性)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금의 그의 약세(弱勢) 때문일 것이라고 필자는 유추한다.
전 국민에게 최순실 커넥션을 들켜버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일생일대의 수치심과 명예실추와 소외감과 슬픔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김재원 전 정무수석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한 말 즉 "외롭고 슬픈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십시요"라고 한 말이 그 점을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레저 광선을 쏘는 강한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외롭고 슬픈 한 인간일 뿐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누굴 만나거나 대면하거나 눈을 마주칠 수 있는 형편이 아닐 수 있다.

지난 일요일(10월 30일) 오후, 11명의 다른 분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본 필자가 그 날 받은 인상도 '강한 표정'이라기보다는 '처연한 표정'이었다.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조차 어딘가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필자가 그럴 것이다 하고 봐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런 형편일 경우 야당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말 없는 김병준 내정 발표를 일종의 공격적인 스턴스로 알고서 "하야하라" "중대결심 할 터" "물러나라"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다" "국민과 더불어 정의의 투쟁을" 어쩌고 하며 난리를 치는 건, 어쩐지 과잉 행동이자 정략적 행동처럼 보인다.
이제는 최순실이 문제인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진영의 곤경을 대선 때까지 계속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식이다.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는 '진보'나 야권이나 운동권 못지않게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있다.
최태민-최순실 모녀의 사이비종교 집단이 박근혜 영애와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탄식하고 있다.
그들이 안하무인으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인사에 개입하고 각종 이권에 손을 댄 것에 대해서도 한심함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와 성역 없는 수사, 그리고 책임총리제 실시를 촉구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는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헌정중단을 물리적으로 '강제' 하려는 기도엔 찬성할 수 없다.

온 국제사회는 지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맞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실행하고 있다.
우리의 외교 국방 대북정책도 이 국제행동에 발을 맞춰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 만약 우리 내부 정정(政情)이 그런 국제공조에서 이탈하는 듯한 기미를 보일 경우 국제사회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건 한반도의 급박한 위기를 앞에 두고 우리의 국제적인 위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이래서 다른 것이야 여하튼, 외교 국방 대북 정책에서만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 동안 대표해 온 국제 공조와 한-미 공조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 당까지도 이런 견해엔 반대할 것이다.
반대는 물론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그 반대를 '대통령 하야'로 달성하려는 방식엔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로 반대다.
문명국이라면 시대적 변화를 연착륙(soft landing) 방식으로 해야지, 경착륙(crash landing) 방식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와 사드 배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거국내각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좌파 내각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가 합리적 진보 인사라면 그는 거국내각이란 것을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로 이해해야 한다.
'경제도 진보, 안보도 진보'는 너무 이른 발상이다.
그건 내년 대선에서 그들이 이길 경우 하면 될 일이다.

그 때까지는 '거국'을 위해서라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란 선에서 피차 양보하고 합의해야 한다.
 
김병준 총리 내자가 이를 마다하고 계속 '경제도 진보, 안보도 진보'로 나가겠다면, 자유민주주주의 시민사회는 불가불 '거국' 아닌 '좌파 일변도' 내각에 반대해 김병준 내각에 노(no)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김병준 내정자는 사태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