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사익과 사회적 공익 비교, 보전 필요성 있어”
  • ▲ 9월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남기씨 빈소. ⓒ 사진 뉴시스
    ▲ 9월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남기씨 빈소. ⓒ 사진 뉴시스


    故 백남기씨의 시신 및 의료기록 일체에 대한 증거보전을 청구하는 서면이, 법원에 접수됐다.

    차기환 변호사는 31일, 백남기씨의 시신 및 의료기록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30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카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을 지낸 고인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 백씨는 집회 직후 이어진 시위에 가담했다가,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해 발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백씨는 같은 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올해 9월25일 숨을 거뒀다.

    백씨의 사인(死因)과 관련해, 담당 주치의와 병원은 ‘병사’라는 판단을 내렸으나, 유족과 진보성향 시민단체 및 야당은 ‘외인사’를 주장했다.

    서울종로경찰서는 백씨가 숨진 직후, 그의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신청을 한 차례 기각했으나, 9월28일 ‘부검장소와 참관인, 촬영 등의 사안에 대해 유족과 협의하라‘는 조건을 달아,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영장집행 만료일인 이달 25일까지 집행을 시도했으나, 유족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는 경찰의 병원 내 진입을 원천 봉쇄하면서 대치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백씨 유족 측은 “부검은 정부가 책임을 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부검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 ▲ 경찰이 고 백남기 씨의 시신 부검영장 집행에 나선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와 경찰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경찰이 고 백남기 씨의 시신 부검영장 집행에 나선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와 경찰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기한 내 영장 집행에 실패한 서울종로서는 28일 “유족이 앞으로도 부검을 지속적으로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영장 집행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가 우려된다”며, 영장 재신청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이 부검을 포기했지만, 백씨의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유족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는 ‘경찰의 물대포’가 사인의 결정적 원인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이견도 적지 않다.

    백씨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은 물대포만으로는 백씨가 입은 안와골절상을 설명할 수 없다며, ‘제3의 타격’이 있었을 것이란 추론을 내놓고 있다. 즉, 물대포를 맞았다고 해서 얼굴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 고 백남기 씨 치료를 맡은 백선하 서울대의대 교수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백씨의 사망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DB
    ▲ 고 백남기 씨 치료를 맡은 백선하 서울대의대 교수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백씨의 사망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DB

    백씨의 사망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물대포 실험’도 이뤄졌다. SBS와 일부시민단체 관계자가 각각 별도로 진행한 실험 결과는 대조적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진행한 실험에서는, 경찰 살수차의 물살에 수박과 강화유리가 산산이 부서졌으나,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주도한 실험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장기정 자유민주연합 대표와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은 물대포를 직접 맞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아무런 외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백씨의 사인을 물대포에서 찾는 유족 측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비인후·두경부외과 전문의인 이용식 건국대병원 교수도, “물대포로 안와골절이 생길 수는 없다”며, 부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를 비롯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23일 오후 인천 중구 인근 도로에서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에서 일어났던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씨가 맞았다는 물대포와 유사한 조건에서 물줄기를 직접 맞는 실험을 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를 비롯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23일 오후 인천 중구 인근 도로에서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에서 일어났던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씨가 맞았다는 물대포와 유사한 조건에서 물줄기를 직접 맞는 실험을 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백씨의 사인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법정으로 번지고 있다. 장기정 대표는 이달 초, 백씨의 세 자녀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자녀들이 백씨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백씨의 자녀들도 장기정 대표를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백씨 자녀들에 대한 변론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장 대표에 대한 변론은 차기환 변호사가 각각 맡고 있다.

    차기환 변호사는 30일 제출한 증거보전신청서에서, “청구인(장기정 대표)이 무고죄로 고소당한 피의사실의 핵심은 ‘망(亡) 백남기의 사망 원인 및 과정’에 대해, 허위내용을 주장했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청구인의 범죄 유무를 가를 결정적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기환 변호사는 백씨의 시신 및 의료기록에 대한 보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차 변호사는 “시신은 ‘망 백남기의 사망 원인 및 과정’ 규명을 위한 검증 및 감정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증거”라고 평가했다.

    차 변호사는 부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부연했다.

    그는 “부검은 의학전문가와 법원, 수사기관 및 법률전문가, 관련당사자들이 함께 참여 또는 참관해, 객관적으로 사망원인 및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방책이며, 이를 위한 기초 전제는 시신의 보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망 백남기의 의료기록’ 또한 백씨의 사망원인 및 과정을 규명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증거”라고 밝혔다.

    차 변호사는 백씨에 대한 병원 측의 의료기록 가운데, 응급실기록지(Emergency Room Record)와 의사처치지시서(Doctor's Orders), 수술기록지(Operation Record), 중환자기록지(I.C.U Record) 등 19종의 진료기록은 반드시 보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차 변호사는 “백씨의 시신 및 의료기록은 검증 및 압수, 보관처분의 방법으로 증거보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차 변호사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법관에 의한 공식적인 검증이 병행돼야 압수 및 보관처분이 실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 변호사는, 백씨 유족이 지속적으로 부검에 반대해 왔고, 경찰의 영장 포기로 언제든 백씨의 시신을 화장 혹은 매장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서, ‘긴급한 보전의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차 변호사는 “유족의 사익과 청구인의 사익, 사회적 공익을 법익형량해 보더라도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백씨의 사망원인과 사망과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증거보전은 필수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