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분산 주장하던 야권 정치인들, 朴대통령 개헌 주장엔 일제히 '반대'
  •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 문제를 전격 제안하자, 이를 예상치 못했던 야권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민생경제의 어려움' 등을 거론하며 개헌에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혀온 박 대통령이 이날 전격적으로 '임기 내 개헌 완수' 등의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을 1년 여 앞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개헌 화두를 던짐에 따라 정치권은 급속도로 개헌 정국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최근 정치권의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개헌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개헌 거대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국정 주도력을 유지하며 레임덕을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야당이 대통령의 임기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개헌 카드를 꺼내들며 정부·여당을 흔드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음과 동시에 정국 주도권을 끝까지 쥐고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주도적인 개헌 제안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뒤쳐지며 이끌려 가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상당수 야권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개헌을 주장했던 터라 야당이 무작정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야권이 박 대통령이 제안한 초대형 개헌 담론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지지해왔다는 점에서 정부의 개헌안은 '대통령 5년 단임' 체제를 '중임' 체제로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안팎에서는 현행 직선제 대통령제를 보완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혹은 독일식 형태의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범야권의 개헌론자들은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하며 연정과 협지 등을 앞세워 의원내각제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 식 다두지배체제(폴리아키·polyarchy)와 러시아식 과두정치 체제(올리가르히·oligarchi)를 표방해 '여의도 권력'을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제기하기도 했다.

    권력 나눠먹기식 개헌론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헌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날 더민주의 대선 주자들은 일제히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개헌은 필요하지만, 박근혜표 개헌은 안된다"고 들고 일어났다.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뉴데일리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뉴데일리

    더민주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참 느닷없다"며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박근혜표 개헌,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이라도 만들자는 것이냐"며 "개헌은 국민들 삶을 낫게 만드는 민생개헌이어야 한다. 국민들에 의한 국민들을 위한 개헌이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민주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박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제안에 대해 "헌법 개정 논의를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하지 말라.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 협조자의 위치에 서달라"며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대선 출마를 시사한 더민주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 대통령에 대해 "참 나쁜 대통령. 국민이 불행하다"며 "대통령 눈에는 최순실과 정유라 밖에 안 보이는지? 재집권 생각밖에 없는지?"라고 힐난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대항하기 위해 개헌을 매개로 힘을 합치던 비문 세력들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기점으로 문 전 대표와 손을 잡는 등의 대권 구도에 상당한 변화 조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시해온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박 대통령이 개헌 제안에 대해 "시기적으로는 적정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본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는 나아가 개헌론 제기가 국면전환용이라는 야권의 비난에도 "국회 내에서 개헌이라는 게 방향이 뻔한 거 아니냐"며 "그걸 가지고 뭐 이러고 저러고 시비할 게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의 주도로 향후 국회에서 개헌론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국회에 발의할 수 있다. 청와대는 국회가 개헌안을 내지 않을 경우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도 시사한 상태다.

    하지만 청와대 주도로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1년 여 만에 개헌이 실제 이뤄질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개헌안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셈범이 엇갈려 있기 때문에 여의도 국회가 박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 담론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