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사견 전제로 회고록 진실성 인정하면서도…공식적으로는 NCND
  • ▲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사진 왼쪽)과 최윤수 국정원 2차장이 19일 서울 내곡동 모처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장에 굳은 표정으로 출석해 있다. 이날 여야 정보위원들은 송민순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거론된 이른바 쪽지의 유무와 확인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사진 왼쪽)과 최윤수 국정원 2차장이 19일 서울 내곡동 모처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장에 굳은 표정으로 출석해 있다. 이날 여야 정보위원들은 송민순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거론된 이른바 쪽지의 유무와 확인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결재요청 의혹'과 관련해, 송민순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을 통해 이미 알려질 것은 다 알려졌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국가정보원이 공식적인 확인을 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식적인 확인 절차를 밟게 되면 국정원이 정쟁(政爭)에 휩쓸릴 것을 우려한 자세로 보인다. 다만 이병호 원장이 사견(私見)을 전제로 '송민순 회고록'의 사실성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사견은 부적절하다"고 윽박지르며 자료 공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이병호 원장은 19일 서울 내곡동 모처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이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아 진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은 다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이 다시 정치에 휩싸이는 상황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며 "그 부분을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부인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이른바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세) 기조를 견지했다.

    정보위 국민의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이러한 이병호 원장의 답변에 대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장이 두 가지 스탠스를 취하더라"며 "개인적으로는 회고록의 내용이 진실에 가깝다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병호 원장의 공사(公私) 분리 답변 기조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양쪽 극단에서 격렬하게 공세를 가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을 물어보고 답변받았다는 이른바 '쪽지'의 존재 유무 등을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밝혀줄 것을 요구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공개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사실상 자료의 공개를 막기 위해 국정원 압박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정치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는데, (이른바 '쪽지' 관련은) 정쟁이 아니고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당연히 물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른바 '쪽지'가 있다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송민순 회고록'에 나온 김만복 노무현정권 당시 국정원장의 북측의 입장을 알아보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여부를 결정하자는 제안이나, 결정된 사후에 북측에 통보했다는 주장에 대해 현직 국정원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추궁했다.

    이에 대해 이병호 원장은 "과연 이 시점에 '쪽지'에 관한 사실확인을 했을 때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해보면, 말할 시점이 아니라고 본다"며 "김만복 원장 당시에 국정원에 남북 핫라인이 있었는지, 또 대남전통문이 오고갔는지 여부도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비껴갔다.

    다만 '회고록'에 언급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처신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들어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후에 북측에 통보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이병호 원장이 공식적으로는 NCND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사견을 전제로 비판적인 언사를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 국정원장이 '개인적으로' '상식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렇게 답변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국정원장은 공식적인 답변만 하라"고 채근했다.

    이어 "(이른바 '쪽지'를) 공개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공개를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2002년 방북 및 김정일 면담과) 관련된 자료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와 이전 정부에서 오고간 전통문을 비롯한 모든 자료를 조금의 훼손이나 삭제·발췌·변경 없이 원본 그대로 공개하라"고 사실상 자료 공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나아가 "국정원이 지금 ('쪽지'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면, 시류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영원히)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며 "만에 하나라도 국정원발(發) 소문이 유포된다면 국정원은 문닫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최고 수준의 경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