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위 출범 계기 마련해준 공익폭로 당사자를 비판… 底意 있나
  • ▲ 조선일보 17일자 6면 톱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 조선일보 17일자 6면 톱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조선일보〉가 윤리위원회 출범을 독자들에게 알린 날, 하필이면 검찰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차별적 불기소 처분'이라고 비판하는 듯한 기사를 다뤘다.

    앞서 김진태 의원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비윤리적인 해외 전세제트기·호화요트 접대 등을 문제삼았던 것과 관련해, 어떠한 저의(底意)를 품은 보도·논평 행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정치권·언론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17일자 6면에서 김진태 의원의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 무혐의 결정을 다뤘다.

    이날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김진태 의원이 '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이행평가 71.4%로 강원도 3위'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기 전날 춘천시민연대가 '김진태 의원의 공약 이행률이 4%대'라는 기자회견을 가져 이미 논란이 되고 있었다"며 "선거 업무 전문인 선관위가 조사한 뒤 '허위사실공표가 맞다'고 검찰에 고발했는데,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문제삼았다.

    아울러 법조계 관계자를 인용해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후보자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서 공표했는지 여부가 유무죄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이유는 김진태 의원이 당시 허위 사실인지 몰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게다가 같은날 35면 사설에서까지 "검찰은 '내용이 허위인 걸 몰랐다'는 이유로 (김진태 의원을) 기소하지 않았다"며 "과거에도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은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진태 의원실 관계자는 "(발송한 문자메시지가) 허위인데도 불구하고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허위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 ▲ 조선일보 17일자 35면 사설.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 조선일보 17일자 35면 사설.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선관위 고발에 이르게 된 경위에 관해서도 의문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진태 의원의 문자메시지 발송 건이 고발에 이르게 된 계기는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인지해서 조사에 나섰다기보다는,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언급된 춘천시민연대가 수 차례에 걸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이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춘천시민연대는 지난 3월 11일 김진태 의원의 공약 이행률을 4.28%로 자체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는가 하면, 4월 7일에는 이른바 '세월호 참사 막말 정치인 규탄 기자회견'을 세월호진상규명 춘천시민행동과 함께 열었고, 투표일 하루 전인 12일에는 '춘천 김진태 후보 낙선투어 기자회견'을 총선시민네트워크와 함께 갖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만 한 행보를 꾸준히 보여왔다.

    지난해에도 6월 25일 '중도 레고랜드 개발사업 검증을 위한 간담회'을 연데 이어, 11월 5일에는 레고랜드 조성사업 전면 재검토 촉구 기자회견을 여는 등 김진태 의원이 추진해온 춘천 지역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다수의 행보를 이어왔다.

    이 단체는 평소 △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강원도민 선언 기자회견 △백남기 농민 춘천투쟁본부 준비위원회 결성 △백남기 농민 춘천분향소 설치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춘천시민연대의 기자회견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면서 "정가에서 이미 논란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고 기술한 것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춘천시민연대는 김진태 의원을 '매니페스토 공약이행률 관련 문자메시지 발송' 이외에도 △교육 관련 국비 확보 △한강수계법 관련 △법률소비자연맹 공약대상 수상 등 세 가지 건에서도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선관위에 고발했는데, 이 중 2건은 선관위 단계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1건은 검찰 수사의뢰, 나머지 1건만 검찰 고발이 이뤄졌다.

  • ▲ 송희영 전 주필 사임을 계기로 윤리위원회를 출범했다는 사실을 알린 조선일보 17일자 1면 3단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 송희영 전 주필 사임을 계기로 윤리위원회를 출범했다는 사실을 알린 조선일보 17일자 1면 3단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검찰에 고발 및 수사의뢰를 통해 이첩된 사안도 2건 모두 검찰 단계에서 무혐의 결론이 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애초부터 '투망식 고발'이 이뤄진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번에 선관위 재정신청이 들어간 1건만 부각하는 것은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진태 의원실 관계자는 "춘천시민연대를 무고죄로 맞고소를 하자는 건의가 강력하게 올라왔지만, 김진태 의원이 '대승적 차원에서 공과(功過)를 다 안고 가겠다'고 했다"며 "본인이 예전 (검사 시절) 일선에 있을 때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고발을 하고, 다시 그에 대해 무고죄로 맞고소를 하는 걸 많이 봐서 '이런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법원에서 100% 재정신청이 기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지금 현 시점에서 대응을 할 필요가 없고, 법원에서 기각이 나오면 그 때 입장을 표명하면 될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사안의 전후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선일보에서 굳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사례와 비교까지 해가며 김진태 의원의 무혐의 결정을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각한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 8월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및 이들과 유착 관계에 있는 혐의를 받아 구속된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와 이탈리아~그리스 8박 9일 전세제트기 무료 여행에 나선 사실을 최초로 폭로했다.

    이어 29일에도 2차 기자회견을 갖고 송희영 전 주필이 △나폴리에서 호화 요트 유람 △영국에서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사실을 잇달아 폭로했다. 이러한 연이은 폭로에 송희영 전 주필은 결국 조선일보 주필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실천요강 제3조 1항에 따르면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특혜·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무료여행·접대골프도 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 송희영 전 주필 사임을 계기로 출범한 조선일보 윤리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일성(一聲)을 다룬 조선일보 17일자 10면 3단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 송희영 전 주필 사임을 계기로 출범한 조선일보 윤리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일성(一聲)을 다룬 조선일보 17일자 10면 3단 기사. ⓒ조선일보 지면보기 PDF 서비스

    송희영 전 주필의 무료 이탈리아~그리스 여행과 영국 접대골프가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인지 조선일보는 17일자에서 1면 기사와 함께 10면 전체를 털어 윤리위원회 출범 소식을 다뤘다.

    조선일보의 초대 윤리위원장으로 위촉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관련 기사에서 "지금은 신뢰 상실의 시대"라며 "언론이 앞장서 공정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언론의 도덕성이 신뢰받는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선일보가 '신뢰 재회복'을 위한 윤리위 출범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나선 같은 날, 윤리위 출범의 계기를 제공했던 사건을 공익 폭로한 당사자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다룬 것은 공교롭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김진태 의원은 "조선일보가 본 의원의 동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면서도 "지나친 추측이나 과장 보도는 삼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건도 이런 식으로 보도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고 일침을 놓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 관계자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기사를 보면 처음에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일보가) 누워서 침 뱉기를 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실천요강 제2조 2항은 "회원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의 취재 및 보도 활동에 있어서 취재원에 대해 형평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손봉호 조선일보 윤리위원장이 같은 날 10면 기사에서 밝힌 "최근 조선일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면서도 "스스로 쇄신해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으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결부해 진지한 고민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