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한 선거재판 신속처리 규정...공직선거법 취지 무색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대법원이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교육감 사건 선고를 1년 넘게 미루면서, 늑장 판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경쟁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혐의(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상 허위사실유포)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형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선고의 효력을 유예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숨을 돌렸다.

    조희연 교육감은, 검찰이 항소심 선고 직후 “선고유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며 상고의사를 밝히자, 대법관 출신인 법무법인 화우 이홍훈(70·사법연수원 4기)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상고심 심리를 위한 변호인단 구성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조희연 교육감은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이끌어 낸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민병훈 변호사(연수원 16기)를 비롯해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황적하(17기)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추가했다.

    항소심 판결 뒤, 교육계에서는 연말 혹은 늦어도 올해 초에는 상고심 판결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교육계 인사들이 이런 판단을 내린 배경에는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을 신속하게 끝낼 것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진행해야 하며, 해당 사건의 선고는 1심의 경우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전심(前審) 판결이 있는 날로부터 각각 3개월 안에 ‘반드시’ 마무리 하도록 정하고 있다(같은 법 270조).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역시 판결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각 심급별 처리기간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에게 적용된 법률은 지방교육법이지만, 이 법은 공직선거법 처벌 규정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

    조희연 교육감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해 9월4일 이었다. 따라서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이 사건 상고심 선고는, 지난해 12월4일 이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대법관들이 맡고 있는 사건의 수가 너무 많아, 3개월 안에 사건 심리를 끝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대법관 한명이 맡는 사건은 연간 3,100여건에 이를 만큼 많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심 사건 수도 최근 10년 사이 약 2만 건이 늘었다.

    대법관들에게 배당되는 사건 수가 지나치게 많아, 신속한 재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현실론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지연 혹은 늑장 판결을 바라보는 눈길은 곱지 않다.

    무엇보다 정치색이 짙거나, 노동조합 문제 등 등 판결로 인한 파급력이 큰 민감한 사건일수록 상고심 선고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법령해석보다는 정치권과 여론의 풍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대법원의 늑장 판결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8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늑장 판결의 대표적 사례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한명숙 전 총리. ⓒ 사진 연합뉴스
    ▲ 한명숙 전 총리. ⓒ 사진 연합뉴스


    이 사건 상고심 판결은, 검찰이 기소한 날로부터 5년1개월,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23개월이 지난 뒤에야 나왔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한명숙 전 총리는 대법원의 판결 지연 덕에 국회의원 임기의 80%를 채울 수 있었다.

    대법원이 선고를 미루면서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부가 여의도 정치권의 눈치를 살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소속 김진태 의원은 “한명숙 사건은 선고 결과를 떠나서 우리 사법역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며, 대법원의 늑장 판결을 거세게 비판했다.

    당시 대법원은 늑장판결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이례적으로 판결 지연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하기까지 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지연은,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신분이 바뀔 수 있는 선거사범 재판이 2~3년씩 걸리는 관행은, 공직선거법의 입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대목이다.

    조희연 교육감 사건은, 검찰이 기소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21개월이 경과했다. 공직선거법 규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법부가 법령을 위반한 지 9개월이 지난 셈이다.

    이 기간 동안 100만명이 넘는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진 서울교육감 자리는, 위법도 적법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대법원은 조희연 교육감 사건을 3부에 배당했다. 이 사건 주심은 김신(연수원 12기) 대법관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