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부금 지원 불구 기존 입장 고수...말 바꾸기 지적 나와
  • ▲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 5일 교육부가 누리과정 예산 지원을 위해, 1조9,000억원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내면서, 3~5세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던 ‘유아교육-보육 대란’은 가까스로 파국을 면했다.

    교육부의 교부금 지원을 계기로, 전국 14개 시도교육청은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마무리했다. 내년도 교부금을 앞당겨 지원한 것에 불과하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은 “학부모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 각 시도의회에 제출했다.

    앞서 17개 시도교육청 중 대구, 울산, 경북, 충남, 대전, 부산, 충북, 세종교육청은 유치원 및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전액 편성했다. 반면 서울, 경기, 인천, 강원, 광주, 전남, 전북, 경남, 제주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관련 법상 교육기관 중 하나로 분류되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와 감독권한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으므로,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속칭 ‘진보교육감’과 더민주 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은, 누리과정 예산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며, ‘정부 책임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 교육청의 예산 편성 거부로 ‘보육대란’이 현실화되자, 지난 5일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하면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지원 용도로 1조9천억원을 각 시도교육청에 교부했다.

    정부의 교부금 집행 후, 서울과 인천, 광주, 전남, 경남, 제주 등 6개 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다. 교육부는 이들 6개 시도교육청의 결정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누리과정 예산 부담의 주체를 놓고 벌인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은, 14개 시도교육청이 정부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봉합국면에 들어갔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있다.

    현재까지 정부 예산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거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곳은 경기와 강원, 전북교육청이다. 이들 교육청은 정부가 지원한 교부금을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쓰는 대신, 교실 냉난방기 교체·설치 등 학교시설환경 개선에 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지역교육의 수장이 모두 親전교조 성향의 ‘진보교육감’이란 사실이다.

    이들 교육청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교육실정을 강조하면서, “누리과정 예산 논란은 현 정부가 자초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누리과정 예산 부담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을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와 시도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교육청은 정부의 교부금 지원에 대해서도, 내년도 교부금을 앞당겨 지급한 것에 불과할 뿐, 별도의 독립된 중앙정부 예산이라 볼 수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교육청의 반응에 대해서는, “말 바꾸기에 불과하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교부금을 지원하기 전에는, 정부 책임론과 열악한 재정실태를 강조하면서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지원할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정부 교부금을 학교시설환경 개선에 쓰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 교육전문가와 교육시민단체 관계자는, 3명의 ‘진보교육감’이 누리과정 논란을 정치쟁점화해,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재정 경기 교육감, 민병희 강원 교육감, 전북 김승환 교육감은 모두 정부 교육정책에 번번이 대립해 온 경력이 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성공회대 총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장관을 지냈다. 최근에는, 정부의 ‘지방 재정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이재명 성남 시장을 찾아가 격려한 뒤, 정부 방침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시·군 교육청에 떠넘겨 교육자치를 마비시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교육자치와 지방자치를 가로막는 정부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전교조 강원지부장을 3번이나 지낸 뒤, 교육감 재선에 성공한 인물이다.

    전북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재선 고지를 밟는데 성공하면서, 전북교육을 6년간 이끌고 있다.

    이들 3명은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거나, 지방선거에서 전교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속칭 ‘진보교육감’들이 정부와 대립을 이어가면서, 자중(自重)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누구의 책임이냐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예산)편성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경기·강원·전북교육감의 행태를 꼬집었다.

    김동석 대변인은 “다른 14개 지역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정치적 측면을 떠나, 민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먼저 생각해 (예산 편성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선(先)조치를 한 뒤 중앙정부와 해결해도 될 문제라고 본다. 책임과 부작용을 교육 현장에 전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