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죄책감을 키우려는 교묘한 술수에 부화뇌동"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오월 열사에 참배를 한 뒤 민주의문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시스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오월 열사에 참배를 한 뒤 민주의문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김무성이 수염을 기른 난방 차림으로 광주를 방문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러라.
    누가 말리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이 땅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뿐 아니라 <적기가>(
    赤旗歌)—공산주의자들의 노래인 <인터내셔널>(The Communist Internationale)—를 불러도 좋다.
    유튜브에서 제대로 만든 합창 버전으로 <인터내셔널>을 들으면 “웅장하고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 동네 노래 중 제일 좋기로는 1944년에 제정된 <소련국가>(Hymn of USSR)가 있다.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1991년에 소련이 망한 다음에도 가사만 바꾸어서 여전히 러시아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나라는 망해도 애국가는 계속된다”라는 애절한 사연은 그 동네에도 존재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자유다.
    그럼에도 김무성은 마치 ‘노래를 부를 자유가 없는 것’처럼 말한다.
    김무성은 혀짤배기인가?
    김무성은 말 똑바로 해야 한다.
    김무성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제정 기념곡으로 만들어, 행사 때 의무적으로 연주하고 제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더 웃기는 것은 깡통진보의 이중잣대다.
    그들은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맹세 등 보훈처가 정한 국민의례 절차 및 태극기 게양 권고에 대해 [국가주의]니 [파시즘]이니 비판해 왔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5.18 관련 의례 절차에 관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획일적으로 제창하도록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김무성 류야말로 국가주의 아닌가?
    깡통진보가 태극기 게양, [국기에 대한 경례] 때의 충성 서약 등에 어떤 관점인지 살펴 보자.   

    “강남구청의 태극기 게양 권고로 제헌절 아침을 맞은 아내는 [8월 광복절에 또 오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
    국경일과 국가기념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즐거운 일이 어느새 누군가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돼 버렸다.
    국가주의를 극복해야 한국경제도 살아난다.”

    2016년 제헌절에 강남구청 직원들이 태극기 게양을 권고한 행위에 대해 깡통진보 성향의 언론인이 쓴 칼럼이다.
    더 황당한 것은 대한민국의 초특급 학회 중의 하나인 <한국사회학회>가 [우수 논문]이랍시고 선정해서 상을 준 어느 고등학생의 에세이다.
    첫 문장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군사 파시즘]이니 [나치]니 못 박고 시작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 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문장을 아는가?
    이것은 각종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나오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전부터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 논란 이 불거져왔다.
    이 국기에 대한 맹세는 과거의 다른 연구 혹은 자료를 통해서 그것이 국가 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군사-파시즘의 형태를 나타내며 또한 그것의 유래가 나치 같은 파시스트국가일 뿐만 아니라 일제 황국신민서사의 잔재라고 평가되었었다.
    그러나 그런 논란이 있었음에도 국기에 대한 맹세는 없어지지도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 해오고 있으며 맹세 문의 내용이 개정되었기는 하나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한국사회학회>가 2014년에 주최한 <제3회 고등학생 에세이 및 논문대회> 수상작 [국기에 대한 맹세와 민족주의]의 첫 대목이다.
    고등학생이 지었다.
    나 같으면 이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무슨 정치적 의견을 가지든 네 소관이야.
    극단 무슬림 테러범과 같은 생각을 하든, 혹은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생각을 하든, 네 인생이지.
    그런데 의견과 관점은 인생 행로를 결과시켜.
    너의 인생 행로에 대해서 네가 대가를 지불하는 거지.
    네 문제가 뭔지 알아? 
    인생 행로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이, 무시무시한 함의를 가진 정치적 의견 내지 편견을 마구 떠들고 있다는 점이야.
    네 인생에 대해 네가 책임지고 대가를 치를 수 있을 때 선택해야 돼.
    그런데 하나만 묻자.
    [국기에 대한 맹세]가 파시즘 혹은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주장은 네 생각이야, 아니면 배배꼬인 학교선생이 네게 세뇌시킨 관념이야?
    그 학교 선생이란 새끼 혹은 년이 이런 식으로 글 쓰면 대학가는 데에 유리하다고 가르치던?”

  •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학생들이 '이명박 OUT'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학생들이 '이명박 OUT'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고명하신 대학교수님들께서 주도하시는 <한국사회학회>가 청소년에게 세뇌된 배배꼬인 관념을 [우수한 고등학생의 글]이라고 상을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한 이런 고명하신 교수님들을 지배하고 있는 깡통진보 획일주의(conformism)는 태극기와 애국가로 대표되는 국민의례에 대해선 [국가주의]니 [파시즘]이니 사납게 공격하면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일종의 국민의례로 만들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열렬히 찬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지식인은 썩어 문드러졌다.
    조선 후기의 부패한 아전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망조가 확실하게 든 나라에서는 잘 처신해야 한다.
    그래야 망할 때 왕창 뜯어낼 수 있다.
    어차피 세계시장이요 어차피 글로벌 세상이다.
    그까짓 나라 하나 망한다고 인생 망하는 것, 아니다.
    왕창 뜯어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글로벌 자산을 구축하는 것이 [슬기로운 인생 처신]이다.
    가장 화끈한 방법 중의 하나는 깡통진보에 투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조중동 등 메이저 언론의 각광을 받는 강력한 대선후보이셨으며, 한때 “2008년 광우병 시위대를 공권력으로 쓸어버렸어야 한다”라는 극단적 발언을 하셨으며, 한때 “한국현대사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깃발을 흔드시면서 백 수 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긁어 모아 당내 최대의 모임을 만들기도 하셨던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 께서는 드디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지정 제창곡으로 만들자고…, 일종의 국민의례로 만들자고…, 주장하시게 됐다.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께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첫째, 그 노래는 미학적 차원에서 살벌한 노래다.
    그러니 이 같은 살벌한 세계관을 가질 생각이 없으면 웅얼거리지 않는 편이 낫다.
    노래 가사 자체가 [집단적 죄책감에 불질러서 정치행동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을 노리고 있다.

    “너희는 살았고 그들은 죽었다.
    진실은 피에 의해 증명된다.
    그들이 흘린 핏자욱을 따라 나아가자!”

    이것이 그 노래의 핵심 메시지다.
    예전에 마가렛 대처(M. Thatcher) 영국 수상이 이런 말을 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집단적 죄책감을 써먹으려는 수법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풍조가 생기면 현대국가 대부분이 깊은 상처를 받는다.

    The application of collective guilt, running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is a dangerous doctrine which would leave few modern nations unscathed.”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께서도 뒤늦게 나마 [집단적 죄책감의 강화]라는 깡통진보의 사회심리-조작-전략에 본격 투신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도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
    19세기 말의 세기적 문호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나 안톤 체홉(Anton Chekhov) 역시 집단적 죄책감에 불질렀지만, 죄책감에 앞서 [매우 깊고 부드러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전 작업]에 공을 들였다.
    그들의 단편 소설들은,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콧날이 시큰한 연민/동정을 느끼는 과정을 길게 연출하지만, [집단적 죄책감]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야 죄책감이 밀려드는 방식이다. 
    스토리 자체는 연민/동정 과정을 연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책을 덮고 나서 강력한 여진(
    餘震)이 진행되는 구조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스카 와일드안톤 체홉을 [연민 예술의 거장(
    巨匠)]—Masters of the Art of Compass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천박할 뿐 아니라 살벌하다.

    그 노래는 원래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그 시, 살벌하다.
    이런 문구로 되어 있다.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 
    뎅그렁 원한만 남은 해골, 
    주인놈의 모진 매질, 
    천추에 맺힌 원한, 
    군바리를 꺽고(고꾸라지고), 
    양키(코배기)를 박살내고, 
    제국(주의)의 불야성 무너져라, 
    피에 젖은 대지, 
    먼저 산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 
    손톱을 빼고, 
    여자 생식기(그곳)까지 언무를 쑤셔넣고, 
    사람을 산 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가진자들, 
    노동자의 팔뚝에 안기라, 
    온몸을 해방의 강물에 던져라,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벗겨라…

    이런 정서와 멘탈을 국가 기념 제창곡으로 강요하자는 것이 깡통진보의 사회심리-조작-전략이다.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은 이제 이 살벌한 피바다 찬양 시의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만든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을 일종의 국민의례 노래로 팔아보겠다고 뛰어드셨다.

  • 지난 5월 광주 5.18 행사 전야제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을 휘두르며 부르고 있다. ⓒ 뉴데일리 DB
    ▲ 지난 5월 광주 5.18 행사 전야제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을 휘두르며 부르고 있다. ⓒ 뉴데일리 DB


    둘째,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에 존재했던 두 개의 노선 중, [무기-반납-수습] 노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명 없이 [무장-유혈-저항] 노선만을 일방적으로 기리는 노선이기 때문에, 이 노래를 기념곡으로 채택하면 5.18에 관해 묻혀져 있던 진실에 관한 논의가 화산처럼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다.

    - 5월 21, 22일 도청앞 집회 이전에 우세했던 [무기 회수-자진 수습] 노선은 왜 무시하는가?

    - 그 집회에 나와서 “우리 며늘 아가가 새끼를 밴 채 배에 총을 맞고 죽었어라!” 혹은 “우리 딸년이 대검에 유방이 썰려 죽었어라!”라고 울부짖었던 정체 불명의 아주머니들은 과연 누구였나? (지금 5.18 유족 중에 당시 본인이 이런 발언했다고 주장하는 분 없다.)

    - 광주뿐 아니라 전남 각지의 수십개 무기고에 대해 치밀한 동시 습격이 이루어졌는데 이 작전을 수립해서 지휘한 핵심 세력은 누구인가?

    - 왜 국군이 사용하지 않는 카빈 총에 맞아 숨진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며, 그들 중 상당수는 등 뒤에서 총을 맞은 이유는 무엇인가?

    - 장기수, 사상범, 강력범이 디글디글했던 광주교도소(당시 광주시 각하동 소재)를 수 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했던, 으스스한 전략을 수립하고 진행시킨 세력은 누구인가?

    위와 같은 이슈들은 미학(aesthetics, 에스테틱)과 역사(history)의 문제들이다.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의 미학—에스테틱—은 손톱, 발톱을 화려하게 다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인가?
    그가 발톱에 매니큐어 칠하고 펄 박지 않았기만 빈다.
    매니큐어와 펄을 박았더라도 하이힐이나 샌들을 신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또한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의 역사는 [표를 긁어 모으기 위해 그냥 떠드는 소리]일 뿐인가?
    역사교육정상화를 위한 깃발을 흔들다가 하루 아침에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빠꾸-오라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닌 <김()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어 [왕년의 미래권력 김무성]님께 헌정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든다.
    날씨도 더운 데 이열치열(
    以熱治熱)이라고, 열 받으시면 오히려 시원해 지시기만 바랄 뿐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모두가 미래권력 김무성의 것

    철학은 쓸 데 없고 튀기만 하면 돼

    대통령 될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법

    권력의지 다져진 뜨거운 집념

    앞서서 나가니 빳지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빳지여 따르라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공산주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저술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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