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독재체제는 다른 독재자에 영감 준 北김씨 일가…ISIS보다 더 나빠
  • 지난 21일 오후 6시, 美인권재단(HRF)의 토르 할보르센 대표가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지난 21일 오후 6시, 美인권재단(HRF)의 토르 할보르센 대표가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지난 19일 한국에 귀한 손님이 조용히 찾아왔다. 북녘 2,300만 동포들을 김씨 일가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美인권재단(HRF)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한국을 찾아 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는 언론들을 만나는 한편 탈북자 단체,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향후 북한 주민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를 의논했다고 한다.

    <뉴데일리>는 지난 21일 오후 6시 신라호텔에서 美HRF 대표 ‘토르 할보르센’ 대표 일행을 만났다. 올해 마흔 살인 ‘토르 할보르센’은 2015년 초 ‘드론’으로 북한에 외부 정보를 유입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혀, 국내 좌익단체들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날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과 만나 북한인권운동과 ‘드론’을 활용한 외부정보 유입활동,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드론’을 통해 외부 정보를 북한으로 유입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드론’은 크기도 작고 비행시간도 짧아 외부에서 북한으로 들여보내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우리는 이미 드론을 구매해 북한에 USB를 들여보내고 있다”고 답했다. HRF의 드론을 통한 USB 북한 전달은 월 평균 2~3회라고. USB를 북한에 ‘배달’하는 데 필요한 드론 시스템 1대당 가격은 5만 달러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드론으로 보낸 USB가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질문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수신인이 있는데 그가 USB를 받아 다시 주민들에게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보안 문제 때문에 보도하면 안 된다”면서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드론으로 북한 지역을 촬영한 사진, USB를 받았다고 찍은 ‘인증샷’ 등을 볼 수 있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의 설명이다.

  • 美HRF가 북한에 외부정보를 담은 USB를 들여보내는데 사용하는 드론. ⓒ美HRF 제공
    ▲ 美HRF가 북한에 외부정보를 담은 USB를 들여보내는데 사용하는 드론. ⓒ美HRF 제공

    “우리(HRF)가 드론을 이용해 북한에 외부정보를 유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월부터다. 이제 2년이 됐다. 우리가 북한주민들에게 보내는 것은 대북전단이나 책자가 아니라 작은 USB이기 때문에 드론으로 전달이 가능하다.

    HRF는 드론을 사기 위한 자금을 조달해 줄 후원자를 찾았고, 한국의 ○○○라는 기관과 협력해 이 작업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입장, 북한 측의 태도 등을 고려해 한국에서는 북한으로 드론을 날려 보내지 않고 있다. 드론으로 북한에 외부정보를 보내는 것이 상당히 적극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재단의 자금만 풍족하다면 USB를 평양에 있는 김정은에게도 드론으로 보내주고 싶지만 아직 비용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에 따르면, 드론으로 북한에 외부정보를 보내는 데 있어 한국 내 5개 기관과 기술협력, 재원조달, 콘텐츠 제작 협력, 미디어 홍보 등을 나눠서 맡고 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많은 한국 단체와 기관이 HRF와 협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는 드론으로 북한에 외부정보를 유입하면서,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하나는 북한 관련 사업에 있어 한국 정부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보니 북한에 대한 지식이나 인상 등이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북한에 대한, 보다 폭넓고 깊은 지식을 못 얻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국제사회가 북한 내부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주민들을 옥죄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하면서,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인권유린을 가하는지 잘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 美HRF가 펼치고 있는 USB 북한반입 캠페인 선전물. 정은이 입이 USB와 딱 들어맞게 디자인 돼 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美HRF가 펼치고 있는 USB 북한반입 캠페인 선전물. 정은이 입이 USB와 딱 들어맞게 디자인 돼 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를 북한에 유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외부정보를 유입하는 데는 드론뿐만 아니라 라디오방송,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한 USB 전파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증진과 김씨 일가 세습독재 체제 타도 문제를 ‘암 치료’에 비교했다. 암 환자가 치료를 할 때 항암치료든 대체요법이든 뭐든지 다 시도하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의 해방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 탈북자들의 경험담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 내부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리해서 전달하는 외부정보가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북한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여서 설득력이 훨씬 강하다는 지적이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에 따르면, 현재 사용 중인 드론은 5만 달러 정도지만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비유일 뿐이지만) 자금만 넉넉하다면 김정은 생일에 평양에 드론을 보내 USB를 뿌리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의 ‘드론을 이용한 대북정보유입’ 계획은 사실 2015년 초에 국내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국내 좌익진영의 일부 단체들은 토르 할보르센 대표를 비롯한 HRF 재단 관계자들이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등과 함께 대북전단 살포에 참여하자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HRF의 활동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로부터 직접 항의도 받았다고 했다.

  • 과거 美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까지 왔던 한국 시위대가 자신의 얼굴사진을 밟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과거 美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까지 왔던 한국 시위대가 자신의 얼굴사진을 밟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그런 단체가 많은 것은 아니고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다”면서 “그들에게 직접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사실 한국에도 북한 체제를 지지하거나 북한인권운동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 또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숫자로 알고 있다”면서 “그들이 북한 독재정권이나 여타 다른 나라의 독재정권을 절대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도 안다”고 답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런 종류의 단체 회원들이 HRF 사무실이 있는 美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까지 찾아와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이다.

    “이들은 미국에도 동조하는 세력을 확보하고 있더라. 실제로 한국에서 온 시위대와 미국 내에 있는 동조자들이 우리 사무실이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항의시위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뉴욕 한복판에서 시위를 하면서, 한글로 적힌 피켓을 들고 한국말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얘네들 뭐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관심했다. 알아듣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더 웃기는 점은 이들이 시위를 하면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내 사진을 바닥에 깔아놓고 짓밟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시위대 앞에 가서 그 장면을 촬영해도 나를 전혀 못 알아보더라.”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처럼 북한주민들의 인권 증진 단체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까지 가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평가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훼손하는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는 안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지켜주자는 단체 앞에서 시위를 하느냐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것도 놀라웠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분별력이 있고 식견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북한 독재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상식이 있다면 북한 정권이나 그 독재 체제를 지지했다는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2016년 3월 3일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했던 국회의원들을 향해서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북한 인권의 진실을 밝히는데 방해하지 말고, 자신들이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했던 행동을 평생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빈곤’을 불법으로 규정한다고 하루아침에 가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다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단번에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의 북한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그가 이처럼 북한 인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그에게 언제, 어떤 계기로 인권운동을 했는지,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는지 물었다.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왼쪽)와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오른쪽).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왼쪽)와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오른쪽).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가족사 때문”이라고 답했다. 1993년 부친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인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각성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가족사와 고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일어난 일들 때문이었다.

    “제 부친은 1993년 당시 법집행기관에서 일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 마약상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이라는 마약 조직이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제 부친은 당시 베네수엘라 은행들이 ‘메데인 카르텔’이 마약으로 번 돈을 세탁해주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메데인 카르텔’과 결탁한 세력들이 부패한 사법부와 손을 잡고 부친을 ‘정치범’으로 몰아 투옥했다.

    이들은 부친을 감옥에서 자살한 것처럼 꾸며 암살하려 했지만, 우리 가족들을 시작으로 양심적인 사람들이 시위를 벌여 암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참고로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1993년 12월 사살되기 전까지 30조 원의 자산을 자랑하며 남미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이끌던 ‘메데인 카르텔’은 콜롬비아 공산반군 FARC와 연계해 활동하며 베네수엘라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그후 10년 뒤에는 제 모친 또한 암살대상이 됐었다”고 밝혔다.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미지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베네수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점점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우고 차베스는 대통령이 된 뒤 대법원과 의회가 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들고, 헌법을 없애고, 나라 이름까지 마음대로 바꿨다는 설명이었다. 여기다 자신의 ‘포퓰리즘 독재’을 강화하면서 민간 분야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제 모친은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로,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모친은 정부의 권한 축소, 시민들의 권한 강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고 한다.

    2004년 당시 그의 모친은 차베스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한 사람이 튀어나와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그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고 밝혔다. 다행히 모친은 목숨을 건졌고 차베스 독재정권에 계속 반대했다고 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부모님 가운데 한 분만 ‘정치적 테러’ 대상이 됐다면 모르겠지만, 두 분 다 표적이 됐다는 점에 분노했다”고 밝혔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부친이 투옥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의 소위 ‘유명 인권단체’와 대학가의 풍토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경험한 것처럼 베네수엘라가 부정부패와 독재로 망가져 가는데도, 그렇게 유명한 ‘휴먼라이트워치’나 ‘국제 앰네스티’ 같은 단체는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향해 단 한 마디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쿨쿨 잠만 자고 있는 것 같았다.”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그의 고국 베네수엘라에서 겪은 가족사를 휴머니즘의 문제로 승화시켰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그의 고국 베네수엘라에서 겪은 가족사를 휴머니즘의 문제로 승화시켰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학교 내에서 ‘진보적 성향’이 아니거나 ‘진보’를 지향하는 제3세계 국가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면 별로 좋지 않은 반응을 얻게 되는 풍토에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모친 가문은 대대로 베네수엘라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었다.

    그의 외고조부는 1811년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베네수엘라의 재독립을 선언했을 때 독립 선언문을 입안하고 작성했고,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5개국의 독립을 이끌어내는 운동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외가는 계속 정치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처럼 기존의 미국 인권단체들이 美정부나 서방 국가 정부를 비판하는데는 앞장서지만 제3세계 독재정권 비판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을 깨닫고 2005년 HRF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HRF를 처음 만들 때에는 우고 차베스와 그를 따르는 ‘카르텔 선즈’라는 친위대의 독재를 비판하는데 주력하려 했다고 한다. 이때 그의 조부가 “한 나라에 국한된 활동보다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나아가 세계 사람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갖고 활동하라”고 조언해 ‘지구상의 모든 독재정권 비판’이라는 목표를 갖고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2008년부터 북한 독재체제를 비판하고 타도하는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북한 독재체제로부터 생존하고 탈출한 사람들, 탈북자들을 찾아서 만나고, 이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사를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세상의 그 많은 언론들은 왜 독재 정권 문제에 침묵하는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에 항거하지 않는가, 왜 수많은 나라의 정부들이 다른 나라의 독재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가.”


    “HRF가 1976년 제정된 ‘시민과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ICCPR)’을 지켜나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뭐냐”는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의 질문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시민권과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래야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의 기본권,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다. 반면 재산의 분배, 사회질서의 기준, 도덕규범 등은 폭넓은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HRF는 단편적이고 협소한 아젠다를 내세워 적은 지지를 얻기 보다는 좌파부터 우파까지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따라서 ICCPR을 근본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인터뷰의 주제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다. HRF는 현재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 체첸, 파키스탄, 앙골라 정부의 시민권 억압과 독재 등을 비판하고 개선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HRF가 북한주민인권 증진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북한 독재정권이 사상 최악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김씨 왕조가 사상최악의 독재체제라고 지적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김씨 왕조가 사상최악의 독재체제라고 지적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독재 정권의 공통점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 즉 언론인 수감, 신문 등의 폐간, 선거를 없애는 식으로 시민들을 탄압한다. 그런데 만약 세상의 독재정권 가운데 누가 최악이냐고 묻는다면 김정은 정권을 꼽을 것”이라며 “북한은 김정은뿐만 아니라 그 일가가 차우세스쿠 등과 같은 다른 나라 독재정권에 ‘어떻게 하면 더욱 체계적으로 독재를 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예를 들어 알 카에다, ISIS는 테러로 수십 수백 명을 살해한다. 반면 북한 김정은 체제는 2,000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을 매일매일 학대하고 고문하고 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북한 독재 체제는 테러조직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김씨 일가는 체계적인 독재를 통해 북한을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는 거대한 실험실로 만들었다”면서 “양적인 면에서는 몰라도 질적인 면에서는 자국민에 가장 큰 고통을 준 독재정권이 북한 김씨 일가이므로 이들을 무너뜨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지금 한국과 세계가 북한인권을 위해 싸우고, 북한 독재체제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이 후세가 지금 세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 될 것”이라면서 한국 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인권 문제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만약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가 아닌 한국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국내 언론으로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고 ‘발신번호제한’ 표시가 된 협박 전화를 숱하게 받았을 것이다. 그가 현재 활동 중인 미국 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HRF가 현재 뉴욕 엠파이아 스테이트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고, 연간 후원금이 330만 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후원자와 재정 상황, 북한 인권과 관련해 한국의 후원자는 혹시 있는지 물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한국 후원자는 개인, 기업, 재단 등을 비롯해 단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의 기부금이 투명하지 않게 사용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해 기부나 후원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정 부분 이해가 되기도 했다”면서 “북한인권 활동을 하는 HRF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혹시 우리가 한국에서 홍보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가 들고 있는 노트북 겉면에는 "파시스트를 죽이는 기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가 들고 있는 노트북 겉면에는 "파시스트를 죽이는 기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어 미국 내에서의 후원자 상황을 설명했다. 미국 사회는 다양한 단체들이 많은 후원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나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레이건을 지지하는 사람이건, 좌파든 우파든 각자 후원하고 지지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HRF 또한 좌파부터 우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후원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구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사람도 있고, 네델란드 정부로부터도 후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후원자 총 수는 250여 개인 또는 단체. 수는 많지 않지만 액수는 비교적 큰 편이라는 설명이었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 또는 기관으로부터 후원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재정 투명성’과 ‘활동가들의 신념, 열정’이라고 지적했다.

    “저희는 후원자들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해 일할 때마다 투명성을 최대한 고려한다. 자금 사용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집행한다. 자금 사용을 할 때면 비용 대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저희가 서울에 한여름에 오게 된 것도 이때가 서울시내 호텔 비수기라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열정도 중요하다. 우리 동료들은 자신의 임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적은 봉급에도 만족하면서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에게 “기왕 한국에 온 김에 한국 정부와 국민들, 언론에 ‘드론 사업’을 도와달라는 말을 해 달라”고 권했다. 이에 할보르센 대표는 “이왕이면 탈북자 단체를 먼저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답했다.

    “만약 한국 기관 또는 개인께서 우리(HRF)를 도와주시겠다면 정말 감사드릴 것이다. 그런데 저희 보다는 한국에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 단체를 먼저 도와줬으면 더 좋겠다.

    사실 제가 인터뷰에 오기 1시간 전에도 13개 탈북자 단체 대표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과 지난 3월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뒤 어떤 활동을 전개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제가 만난 탈북자 단체 회원들은 매우 똑똑하고,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후원은커녕 자금조달 자체를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고 안타까웠다. 한국 사회가 이들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물론 우리가 한국 사무소를 만든다면 탈북자 단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 탈북자 단체를 위해 USB나 대북전단용 풍선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주민들을 김씨 일가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북한 주민들이 독재 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외부 정보의 유입이 절실한 것이다.

    외부 정보가 꾸준히 유입되고, 북한 주민들에 대한 ‘교육사업’이 지속된다면 2~3년이면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각성을 통해 현재 북한 체제를 지원하는 중국 정부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한국 정부에 대한 충고도 내놨다.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증진을 위한 의지가 있고, 이를 실행하려 한다면 세금으로 주는 정부 지원금을 어떤 기준에 따라 얼마나 배정할 것인지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인권유린 아카이브’에 대한 홍보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증진과 독재체제 타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증진과 독재체제 타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무엇보다 한국 언론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증진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갖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정부는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행동에 제약이 있다.

    반면 언론은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북한인권 문제제기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알릴 수 있고, 한국 사회를 설득하고 움직일 힘이 있다. 언론이 사회를 바꾼다는 게 이걸 의미한다.”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는 한국 정부나 언론, 사회가 북한의 대남 협박에 움츠러드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충고했다. 김정은 체제가 대남 협박과 비방을 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체제가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증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대북확성기나 전단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1시간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던 인터뷰는 예상을 훌쩍 넘겨버렸다. 북한주민들의 해방과 김씨 일가 독재체제의 타도에 대한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의 신념어린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끝으로 토르 할보르센 HRF 대표에게 고국 베네수엘라를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물었다. 그는 “1998년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계속된 베네수엘라 독재 체제에 침묵한 미국 정부와 거대 국제인권단체들 대신 독재 체제를 쓰러뜨리고, 심각한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