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는 '총선 참패는 親朴탓'… 이러다 대선까지 질까 우려도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폭을 넓히고 있다. 비박(非朴) 후보 단일화를 촉구한데 이어 전당대회에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이 과정에서 전직 당대표였던 본인을 스스로 비주류라 칭하기도 했다.

    14일 저녁 서울 당산동에서는 1000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세몰이 행사도 연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역 의원이나 당권 주자의 참석은 정중히 사양했다"는 설명과는 달리, 이 자리에는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당권 주자들도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 의원이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2년 전 서청원 의원을 상대로 '대첩'을 벌였던 7·14 전당대회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갖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나도 (8·9 전당대회에) 투표권이 있는 사람인데 '어떤 후보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나는 비주류이니까 비주류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는 김무성 전 대표. 4·13 총선 참패 이튿날이었던 지난 4월 14일 "선거 참패의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던 태도와는 딴판이다.

    대표직에서 물러난지 불과 세 달만에 기지개를 켜고 나서는 이유가 뭘까.

  •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4·13 총선 당시 진박 마케팅을 펼쳤던 조원진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4·13 총선 당시 진박 마케팅을 펼쳤던 조원진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총선 참패는 친박 때문' 인식 보편적… 자숙, 오래갈 수 없어

    "선거 참패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4·13 총선 참패는 모두 친박(親朴) 때문이라는 게 비박계의 보편적인 정서다. 당연히 김무성 전 대표 주변의 인식 또한 다르지 않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지난 12일 최고위원 출마 기자회견에서 "지난 총선 패배는 새누리당의 모든 구성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은 "표로 심판을 받은 것은 청와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새누리당"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박계의 보편적인 인식은 그렇지 않다. 총선 패배는 공천 과정을 오만과 독선으로 전횡한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진박 마케팅'을 하고 다닌 최경환 의원과 조원진 의원, 최고위에서 잘못된 공천안을 승인하라고 압박한 서청원 의원과 원유철 의원까지 전부 친박이 촉발한 것이라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다.

    심지어 비박 일각에서는 총선 패배를 친박이 야기했다는 것도 모자라, 친박의 배후에 있었던 청와대가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았다는 식으로 4·13 총선 패배의 원인을 재구성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8일 부산시당 강연 직후 "나는 그들(이한구·최경환·윤상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총선 패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며 "누군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총선 패배 책임자로 지칭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보니 총선 참패 직후에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이기만 하면 친박을 성토하며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뭔가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없으니, 자숙(自肅)이 오래 갈 수 없는 이치다.

  • ▲ 지난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서청원 의원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서청원 의원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공정한 대선 후보 경선 기회,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려

    친박계에 당권이 넘어갈 경우 비박계 대권 주자로서 공정한 경선 기회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감도, 김무성 전 대표의 행보를 조급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4·13 총선 '공천 파동'은 새누리당으로서는 벌써 세 번째 겪는 '공천 학살'이다. 2008년 총선에서 친이(親李)계가 먼저 친박계를 상대로 칼을 휘둘렀고, 2012년 총선에서 친박계에 의한 보복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총선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죽고 죽이는' 공천 과정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인사들이 변변한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낙천의 쓴잔을 들이켰다. 스스로를 '비주류'로 자처하는 김무성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친박계 당대표가 들어설 경우 공정한 대선 후보 경선이 치러질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3월 3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향해 "새누리당에 들어오면 얼마든지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환영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권에) 도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비박계로 당권에 도전한 김용태 의원이 "반기문 총장이 (내년 12월 대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면서도 "이런 (유승민·오세훈·김문수·김무성) 분들과 (반기문 총장이) 당당히 겨룬다면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서청원 의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서청원 의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서청원 체제' 성립하면 정권 잃고 분당될까봐?

    8·9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대표 체제'가 성립할 경우,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에서 행동을 서두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새누리당이 정권을 잃고 노무현정권의 폭압과 학정 아래에서 '천막 당사' 시절을 겪던 때에는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 경선을 하면서 계파 갈등이 불붙기 시작해, 2008년 총선에서의 공천 학살 이후로 친박~비박 갈등은 상수(常數)가 됐다.

    집권을 하고 있어야 '여당'이라는 따뜻한 방구석 안에서 아랫목을 다투는 계파 싸움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정권을 잃고 야당으로 전락하면 더 이상 계파 싸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당(分黨)이 된다. 친노~비노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가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딴 살림'을 차린 야권의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일 때는 계파 싸움이 심해도 분당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여당에서 분당을 해서 새로운 '야당'을 만든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따뜻한 온돌방을 박차고 나와 눈보라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야당일 때는 어차피 이 야당이든 저 야당이든 '시베리아 벌판'인 건 매한가지"라며 "계파 갈등이 극에 이른 상황에서 정권을 놓친다면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지고 원심력이 커지면서 분당될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비박계에서 보기에, 서청원 의원은 8선 의원인데다가 나이도 73세에 달하고, 이미 원내대표·당대표·정무장관 등 안 거친 직책이 없다. 너무 '올드한 인물'이라 당이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4·13 총선 참패를 겪은 새누리당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기에는 무리수라는 판단이다.

    여권 관계자는 "단일지도체제가 성립되면서도 모바일투표 도입은 무산되는 등 서청원 의원의 당권 장악을 위한 여건이 차근차근 마련된 것이, 이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던 김무성 전 대표를 움직이게 됐다"며 "'서청원 체제 성립'은 정권 상실과 분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