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조사 방해 요인 정리 않으면 '광주의 치욕적 비난' 반복될 수 있어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이른바 '김수민 게이트'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심중에는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의 원구성 협상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애써 부각시킨 것이 완전히 빛이 바래버렸다. 리베이트 의혹으로 인해 당의 이미지는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애초 4·13 총선 이틀 뒤였던 4월 15일의 의원회관 '안철수~박지원 독대'에서 '2인 3각'의 결의를 했던 것도 함께 빛이 바랬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했는데, 안철수 대표 쪽에서 문제가 터졌다. 정확히는 안철수 대표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무리들이 원흉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검찰의 수사 내용을 보면 야당에게는 잔혹한 잣대를 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당의 운명을 검찰 손에 넘기지는 않겠다"고 단언했다. 당의 원내대표로서 대외적으로 취해야 하는 수사(修辭)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짚이는 바가 없지 않으리라 본다.

    정치권에서 누구보다 은원(恩怨)을 갚는 게 분명한 사람이 박지원 원내대표다. 그 때문에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국회의장으로 장식하는 게 꿈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의 일념이 좌절됐다.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현격히 불공정한 처사를 해 원한을 산 까닭이다.

    반대로 같은 당 주승용 의원에게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섭섭하게 한 일이 있었다. 주승용 의원은 당이 태동하는, 어렵던 시기에 원내대표를 맡았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 원내대표를 연임하는 게 정도였다. 안철수 대표가 권유해서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 과정의 모양새나 그림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 5월초의 '황금 연휴' 중 둘째 날이었던 6일, 박지원 원내대표가 목포 지역구 활동 도중 전남 여수까지 찾아가 주승용 의원을 위로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사무총장 천거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승용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한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내 정당에서는 주로 3선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지만, 최근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4선 의원 중에서 곧잘 배출되듯이 전통적으로 '당3역'이라 불리는 사무총장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4선 의원이 맡는 것도 능히 가능하다.

    천정배 대표와 박주선 최고위원도 '주승용 사무총장'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관철이 안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천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안철수 대표가 신임 사무총장 임명에 대해서는 완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달 10일 야밤에 의원회관에서 최고위원 긴급 간담회까지 연 끝에 주승용 사무총장 카드는 무산됐다.

  •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김영환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박주선 부의장의 오른쪽으로는 안철수 대표와 함께 박지원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김영환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박주선 부의장의 오른쪽으로는 안철수 대표와 함께 박지원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대체 왜 그랬을까.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인데다 정직하고 청렴한 것으로 알려진 주승용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으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었을까. 장부를 인계인수받는 과정에서 무슨 전모가 드러날 꺼림칙한 일이라도 숨겨져 있었을까.

    물론 안철수 대표 본인에게 뭔가 '구린 구석'이 있어서 반대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이 귓가에 속삭인 명분은 달리 있었을 것이다. '호남당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총선 과정에서 수도권 원외(院外)의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는 등의 명분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안철수 대표도 당한 것이다.

    믿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의혹이 양산되는 상황에 안철수 대표는 인지부조화 상태일 수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게 하는 등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당의 진상조사단에 의한 자체 감사는 엄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특정인이 어떠한 직책을 맡고 있을 경우 객관적인 진상조사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면 박지원 원내대표가 총대를 메고 그 사람이 자리를 내놓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개 회의의 모두발언으로 내놓는 대외적인 수사와는 달리, 당내를 향해 내는 목소리에는 정말로 당을 살릴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 직후인 2013년 2월, 광주광역시에서 비난 세례에 직면했던 적이 있다.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왜 당신이 친노(親盧)와 야합해서 호남을 문재인에게 들어바치고 대선 패배를 겪게 했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박지원 원내대표 자신도 이날의 충격이 컸던 듯 "허벌나게 치욕적 비난 받았다" "민주당을 살(리려고 했던 것)"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지금 '김수민 게이트'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 당을 살려내지 못하면, 2017년 대선 이후 다시금 광주에서 '치욕적 비난'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호남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고, 이번 4·13 총선에서 호남 표심을 들어 국민의당으로 향하게 했다. 이 당을 살려야 '왜 당신이 우리보고 국민의당을 찍으라 했느냐'는 비난을 면할 수 있다.

    의혹에 연루돼 있는 사람들이 박지원 원내대표와 친분 있는 사람들이라 괴로울 수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내각에 있었던 사람도 있고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박지원 원내대표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안철수 대표에게 달리 직언할 사람도 없지 않은가. 자신의 뒤를 이어 DJ 청와대에서 공보수석을 했던 박준영 의원에게도 '일단 탈당'을 권유했던 그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의기로 당을 살리기 위해 나서야 한다.

    엄정한 진상조사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조속히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정말로 객관적인 진상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검찰 수사에도 대항할 수 있고 호남과 핵심 지지층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라면 이 점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