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에티오피아 현지서 전자결재..."부작용, 국회 차원 진지한 고민 있어야"
  •  

  • ▲ 황교안 국무총리. ⓒ뉴데일리 DB
    ▲ 황교안 국무총리. ⓒ뉴데일리 DB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왕적(帝王的) 국회를 건설하려던 이들의 1차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제 입맛대로 정부를 쥐락펴락하려는 국회 권력 비대화(肥大化) 구상이 27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가로막혔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정부 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오늘 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황교안 총리는 재의 요구 이유와 관련해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국회의 국정 통제권한이 보다 실효적으로 행사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즉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란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상시 청문회법을 콕 집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법부가 행정부에 대해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서 권력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교안 총리는 "청문회 개최 여부도 국정조사와는 달리 상임위나 소위 의결만으로도 가능해 자칫 헌법상 국정조사 제도가 유명무실화될 우려마저 있다"고 설명했다.

    위헌 소지 외에도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따르면 행정부의 모든 업무가 언제든지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고, 상시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청문회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방대한 자료 제출, 증인 출석 등 많은 부담을 안게 돼 결국 행정부의 업무 마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친노(親盧) 패권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 협박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우려한 듯 "이렇게 (재의 요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입법부와 결코 대립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교안 총리는 "국회의 내부 운영 상황으로 행정부가 의견을 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이 행정부의 국정 운영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정상적인 감시, 견제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돼 불가피하게 정부의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 정의화 국회의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 ⓒ뉴데일리 DB
    ▲ 정의화 국회의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 ⓒ뉴데일리 DB


      
    이른바 '정의화법(法)'이라고 불리는 상시 청문회법을 두고, 그간 여당은 행정부를 마비시킬 수 있는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해왔다.

    야당은 일하는 국회라는 미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정쟁(政爭)하는 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았다.

    "모든 현안마다 청문회가 열리면 행정부가 거의 마비될 것이다."

    "수시로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려나온다면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을 하겠나."

    "검찰이 수사 중인 현안에 대해서도 청문회가 열리면 혼선을 초래하고 상당한 압력도 될 수 있다."

    청와대도 이러한 부작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과도한 권한 행사, 상시 청문회 개최에 따른 행정부의 대국민 서비스 질 저하, 기업과 단체를 넘어 민간인에 대한 무분별한 증인 채택 등의 문제점이 있고 대선을 앞두고 상시 청문회가 정쟁의 장이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의요구권자인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임에도 재의요구 절차를 강행한 것은, 19대 국회 폐원 전 법안을 돌려보내 자동폐기시킴으로써 상시 청문회법을 둘러싼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국정의 주도권을 놓고 야당과 씨름을 벌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일단 피한 뒤, 20대 국회에서 다시 민의(民意)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야권으로부터 억지성 압박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내린 셈이다.

    재의요구안 처리가 사실상 희박하다는 정무적 판단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되면 법률로 확정된다. 그러나 재의요구안이 이날 의결됨에 따라 상시 청문회법을 19대 국회에서 재의결에 부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19대 국회는 이미 의사일정을 모두 마쳤으며 29일 공식 폐원한다. 본회의 소집을 위해선 최소한 3일 전에 소집공고를 내야 하는데, 폐원까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상 자동폐기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20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이 재발의되더라도 야당 의석이 총 200석을 넘지 못하는 탓에 통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무소속 의원들의 표를 모두 끌어모은다 해도 178석에 불과하다.

    야당 국회의장이 나오더라도 직권상정을 강행할 수 없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6일 새누리당 의원 19명이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의원의 법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며 낸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 심판 청구 사건에서 "의원들의 심의·의결권이 침해되지 않았고, 권한쟁의를 청구할 요건(要件)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거부권 행사가 31일 혹은 내달 7일 이루어질 것이란 대체적인 예상을 깨고 27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처리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대통령궁에 도착해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대통령궁에 도착해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보류 거부(Pocket veto)' 선택지가 아닌 거부권(veto)를 택한 것을 두고는, 보류에 따른 법리해석 논란을 질질 끌 필요없이 현안을 정면돌파하겠다는 특유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두 눈 뜨고 친노(親盧) 패권세력에게 정부를 내줘야 할 판이다. 이러한 참사를 거부권 행사로 틀어막은 판단이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누리당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거부권은 (대통령의) 당연하고 고유한 권한 행사로, 국회는 헌법에 따라 행사된 정부의 재의요구에 따른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과 행정부 업무 마비 등 부작용 논란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임시 국무회의에서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됨에 따라 전자결재를 통해 안건을 재가했다.

    박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국빈방문을 수행 중인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어제 오전 황교안 국무총리로부터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 등을 포함한 130건의 안건을 심의할 국무회의 개최의 건을 보고 받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26일 황 총리로부터 국무회의 개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2시쯤 상시 청문회법 재의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박 대통령은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10박12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3개국(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과 프랑스를 순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