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사이에 무성의한 관성적 '보여주기 정치' 난무… 국민분열만 심화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17일 광주공원에서 5·18 민주대행진이 시작되기에 앞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17일 광주공원에서 5·18 민주대행진이 시작되기에 앞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민통합을 꽃피우자'는 취지가 무색했던 제36주년 5·18 기념식이었다. 약 2주 전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 휩싸였던 5·18 은 결국 고성이 오가고 누구를 쫓아내는 등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국민통합을 꽃피우기는 커녕 국민분열상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해마다 균열만 깊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굳이 정부 기념식으로 거행해야 하는지 회의론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호남에 '하나의 당(黨)'만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올해에는 '호남 민심'을 두고 2개의 정당이 경합을 벌이면서, 야권에서는 어느 정당이 이 건을 잘 챙기는지, 누가 정부·여당을 상대로 더 거센 공세를 펼치는지 경쟁 양상까지 벌어졌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호남 정치가 경쟁 구도가 되면서 순기능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부작용이 발생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양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놓고 호남에 뜨거운 구애 경쟁을 벌인 것과는 달리, 소수 목소리 높이는 운동권이 아닌 기층의 '호남 민심'은 싸늘했다. 아니, 소수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중에서조차 야당에 격렬한 항의를 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5월만 되면 야권 정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거운 어조로 "해마다 오월이면…"이라고 말문을 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왜 제창이 되지 못하는지, 왜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못하는지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나서 "5·18이 불과 2주 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오월 영령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데드라인까지 알아서 설정한다.

    5·18은 음력으로 쇠지도 않으니 해마다 5월의 18일째 되는 날일 수밖에 없다. 5월초에 문제를 제기하면 필연적으로 시간은 2주 밖에 남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결의안을 발의하고 법을 개정하자고 하는가 하면 무슨 규탄이 잇따르는 등 온갖 '보여주기식 정치'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가 사라져간다.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주승용 전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8일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위치한 고 윤상원 씨 분묘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주승용 전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8일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위치한 고 윤상원 씨 분묘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마치 5월에만 국회가 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평소에 공청회도 열고, 법안소위와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폭넓게 민의를 수렴해 심도 있는 공론의 장을 열었으면 될텐데, '벼락치기 공부'하는 수험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상시적으로 민의를 수렴하라고 비싼 세비(歲費)를 들여가며 대의대표를 두는 것이고, 그런 만큼 정치권과 국회는 평소에 진작 민의를 수렴했어야 할 일인데, 무슨 '떴다방 장사'처럼 5월만 되면 정치 공세의 이슈로 삼기에 열을 올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다른 건을 가지고 여야가 서로, 아니면 자기 당 내부에서 머리 터져라 싸우다가 5월만 되면 방송사 ENG 앞에 근엄하게 앉아 "해마다 오월이면…"이라며 오월 영령을 찾고 광주 정신을 부르짖는다.

    '도돌이표'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을 이들이 소환하는 꼴을 볼 양이면, 도대체 국민들의 기억력을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이러는가 싶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학생운동권에서 3월에 등투(등록금 투쟁), 4월에 4·19 마라톤, 5월에는 메이데이(노동절) 하는 식으로 무성의하게 관성적으로 해마다 정해져 있는 일정에 따라 '투쟁'하는 것을 '캘린더식 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정치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도 어느덧 야권의 '캘린더식 사업'이 돼가는 느낌이다.

    5·18이 국민통합이 아닌 국민분열의 장이 되고 '오월 광주의 정신'이 짓밟히게 된 것은 그 필연적 결과다. 야권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입만 열면 정부·여당을 비판하며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부르짖기에 앞서 '국정의 일부분을 주체적으로 담당하는 파트너'다운 모습부터 먼저 보이라.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대의 수렴의 장으로서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하고 정확히 1년 후 2017년 이 무렵에, 때마침 대선도 눈앞으로 다가온 대목이다 싶어 또다시 마이크 앞에서 "해마다 오월이면…"이라고 읊조리며 오월 영령을 소환한다면, 그 때는 정말로 광주 정신이 야권의 관성과 무성의, 게으름을 용납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