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현장 이탈..20시간 연락 두절..시종일관 변명만 늘어놔"'정황 증거'만으로 음주 혐의가 사실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

  • 교통사고를 낸 뒤 차량을 버리고 21시간 가량 잠적하는 소동을 빚은 개그맨 이창명(46)이 결국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입건돼 형사 처벌을 눈앞에 두게 됐다.

    당초 이창명은 기자들 앞에서 "원래 술을 못 마신다"며 음주 자체를 부인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음주운전 의혹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정황 증거들이 포착되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던 이창명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창명은 지난달 20일 오후 11시 18분경 자신의 차량(포르쉐)를 몰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삼거리 교차로에서 보행신호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뒤 차량을 그대로 방치한 채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창명은 자신이 저지른 사고임에도 불구, 견인조치 등 뒷수습 일체를 매니저에게 맡긴 뒤 현장에서 사라지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저는 모르는 차량입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우선 현장에 남아 있는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본 후 과태료 고지서 등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량 운전자인 이창명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이창명씨죠? 여기 영등포경찰인데요. 지금 여의도 성모병원 삼거리에서 XXXXX 차량이 보행신호기를 들이받고 정차해 있는데, 이 차량 운전자시죠?

    아닌데요. 저는 모르는 차량입니다.


    경찰이 이창명과 처음으로 통화한 시각은 4월 20일 오후 11시 49분. 사고가 발생한지 20여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당시 사고 지점으로부터 20m 떨어진 성모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었던 이창명은 바로 인근 병원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천연덕스럽게 "알지도 못하는 차량"이라는 거짓말까지 둘러댔다.

    "후배가 운전한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이튿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전 12시 5분경 이창명에게 전화를 건 경찰은 '정말로 당신이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게 아니냐'는 질문을 재차 던졌다.

    이에 이창명은 "후배가 운전을 한 것 같다"는 또 다른 거짓말로 경찰을 기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창명의 거짓말 행진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1일 오후 8시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자진 출두한 현장에서 음주운전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원래 술을 전혀 못한다"며 음주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나선 것.

    특히 이창명은 기자들에게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병원을 직접 갈 수 있었겠느냐"며 "(음주 여부에 대한)자료가 병원에 다 있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는 달랐다. 사고 당일 이창명의 행적을 조사하던 경찰은 20일 오후 6시 30분경 이창명이 5명의 지인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식당 계산서에는 이창명 일행이 중국 소주(41도) 6병, 화요 6병, 생맥주 500㎖ 9잔을 마신 것으로 나와 있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4시간 뒤 이창명이 직접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걸어 대리기사를 호출한 사실이 드러난 것.

    경찰에 따르면 이창명은 이날 10시 57분경 자신의 휴대폰으로 직접 대리기사를 불렀다가, 해당 장소로 보낼 기사가 없다는 대답을 듣고, 11시 9분경 요청을 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직후 곧장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조사 결과, 사고 직후 병원에 들렀다 곧장 대전으로 내려갔다는 이창명의 주장도 거짓이었다.

    이창명은 20일 오후 취재진에게 "사고 직후 가슴 부분의 고통이 심해 인근 성모병원에서 CT 촬영을 했다"면서 "때마침 대전에서 급한 약속이 잡혀 매니저에게 '뒷수습'을 부탁한 뒤 바로 내려갔던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투자를 하겠다는 연락이 와 급히 내려갔던 겁니다. 오늘 오전까지 연락을 못받았던 것은 밤 늦게까지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이렇게 일이 커졌는지도 몰랐습니다. 대전에서 점심을 먹고 눈을 붙였는데, 나중에 후배가 얘기해줘서 알았습니다. 휴대폰을 충전하고 오후 2시경 경찰에 직접 전화를 건 뒤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이창명과 도통 연락이 닿지 않고, 소재지조차 파악이 안된다"며 수사 진척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임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사고 당일 이창명은 대전이 아닌,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 투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명은 이곳에서 잠을 잔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대전으로 내려갔다. 사업상 중요한 약속이 잡혀 경찰 조사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무척이나 여유로운 행보를 보였던 것.

    이창명은 경찰 진술 조사에서 사고 직후 연락이 두절됐던 이유에 대해 "대전으로 급히 내려가는 통해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돼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라며 "고의로 경찰 전화를 회피한 게 아니"라는 해명을 했었다.

    그러나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삭제된 데이터 복구) 조사에선 이창명의 휴대폰이 줄곧 꺼져 있다가 중간에 잠시 켜졌다가 다시 꺼진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배터리가 방전돼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해명과는 또 다른 사실이 밝혀진 것.

    "그날 전, 다른 방에 있었습니다"

    20일 오후 여의도 모 식당에서 술을 마신 일행과는 다른 방에 있었다는 이창명의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창명은 경찰 진술 조사에서 "자신은 원래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라며 "당시에도 다른 방에서 술 대신 참치나 연어 등 다른 메뉴를 먹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한 식당 종업원은 "이날 이창명과 5명의 지인들이 모두 한 방에 있었고 안주와 술을 함께 주문했었다"고 밝혀 이창명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창명은 지난 2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제안한 경찰에게 "공황장애와 과호흡증 때문에 이런 조사를 받기 힘들다"며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경찰은 "이대로 (법원에)가면 경찰 조사에 불응한 것 자체가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있다"며 이창명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현재까지도 이창명씨와 술자리 동석자들이 (이창명의)음주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만큼은 우리도 물러설 수 없다"며 "음주 후에 나타나는 여러 정황 증거를 이미 확보했고, 위드마크 공식에 의해서도 이창명씨가 사고 당일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경찰은 당시 이창명이 중국 소주 1병과 맥주 1잔을 마셨다고 보고, 위드마크 공식으로 추산된 혈중 알코올 농도(0.16%)를 근거로 이창명에게 음주운전과 사고 후 미조치 등의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전문가는 3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경찰 조사 결과 이창명의 음주를 의심해 볼 만한 다양한 정황 증거들이 포착됐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으로 나왔기 때문에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음주 수치는 그야말로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약점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이창명의 행적이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나,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 증거'만으로 이창명의 음주 혐의가 사실로 받아들여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소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