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외국인 근로자와 퀵 기사 등 지원·생활임금 보장…‘권리’만 강조
  •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가 27일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 계획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말로는 “사회적 소외계층과 약자들을 보호하고, 일할 맛 나는 도시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서울시가 이날 발표한 ‘노동존중특별시 2016’ 계획을 살펴보면, ‘노동권리보호관제’를 비롯해 7가지의 조치를 담고 있다. 대략 이렇다.

    첫 번째는 서울시가 위촉한 25명의 변호사, 15명의 노무사가 ‘서울시 노동권리보호관’이라는 직책을 맡아 “노동자가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월급 250만 원 이하의 시민 가운데 임금체불, 부당해고, 산업재해 등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겠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배처럼 업체와 개인 간의 계약 관계로 ‘사업자’로 분류되거나 세금신고 등이 불투명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다. 5명 미만을 고용하는 영세 사업체에는 직접 찾아가서 ‘노동자 권익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노동권익센터’에서 활동하는 ‘시민 명예 노동 옴부즈만’ 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소요되는 연간 예산은 14억 2,700만 원.

    서울시는 “노동권리보호관을 2018년에는 1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계획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은 바로 PC방과 편의점 알바들을 위한 ‘찾아가는 마을 노무사’ 제도와 ‘권리 지킴이’ 제도. ‘마을 노무사’는 올해 중 50명을 선발해 문제가 많은 구청 별로 10명을 배치하고, 2018년에는 1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5월 1일부터 (사)한국편의점산업협회, 포털 사이트와 함께 강남, 신촌 등의 편의점을 돌면서, 아르바이트 하는 이들과 시민들에게 ‘노동권리수첩’ 1만 부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열린 서울 노동아카데미’를 열어 올해 안으로 3만 명의 서울 시민들에게 ‘노동자의 권리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 대리운전기사들이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에 마련된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 대리운전기사들이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에 마련된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여기까지는 참으면서 볼 만 하다. 하지만 대리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을 위한 쉼터를 기존의 1곳에서 3곳으로 늘리고, ‘직장맘 지원센터’도 대폭 확충하며, 7곳의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에다 전문 통역인력과 노무사를 배치할 계획이라는 대목에서는 웃음만 나온다.

    서울시는 특히 ‘외국인 근로자 지원’을 위해 올해에만 27억 7,200만 원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리기사와 퀵서비스 기사를 위한 쉼터 운영에는 2억 원을 쓸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2016년 1월 제정한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조례’를 기초로, 6월에는 공공기관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공표하고, 2017년에는 ‘감정노동자’를 위한 ‘종합지원센터’도 설치,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언더도그마(약자가 곧 선이라는 주의)’에 빠졌다고 볼 수 있는 정책도 있다.

    오는 7월부터 280여 곳의 서울시 민간위탁운영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 1,480명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실제 사회적 약자로 고생하는 청소, 경비 근로자를 위해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시급 8,209원으로 임금을 현실화하는 것도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7,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서울의료원 근로자들의 근무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한다는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인력을 고용한다는 것이 단순한 ‘산수 계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2년 5월부터 추진해온 청소, 경비 등 비정규직 근로자 7,296명에 대한 정규직화가 2016년 말 완료된다”면서 “2020년까지는 각 구청의 653명 또한 정규직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들은 '공무원'이 된다는 뜻일까. 공무원이 될 경우 여기에 따르는 혜택과 재원은 어떻게 처리한다는 걸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서울시는 “또한 야근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린다”면서 “서울신용보증재단, 서울의료원에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올해부터 시범적용하고, 2018년까지 서울시의 19개 투자출연기관으로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전체 근로자가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준수하면 약 13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 같은 주장은 ‘노동의 양’만을 계산한 것일 뿐 ‘노동의 질’과 의사결정 시스템 개선을 통한 효율성 제고 등은 계산에 넣지 않아, 현실성이 결여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서울의료원의 경우 금융과 의료 전문가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시의 계획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는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서울의료원이 지금까지는 ‘전문성’ 없이 일을 처리해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정책은 더 가관이다. 명분은 “노사민정협의회 활성화 등으로 상생·협력의 노사관계 구축”이라고 하는데, 핵심은 ‘근로자 이사제’, 즉 ‘노동이사제’의 추진이다.

  • 서울시는 지하철 양 공사 통합 추진 때, 근로자이사제를 시도했지만 내부 이견으로 통합 자체가 무산되면서 실패했다. ⓒ뉴시스
    ▲ 서울시는 지하철 양 공사 통합 추진 때, 근로자이사제를 시도했지만 내부 이견으로 통합 자체가 무산되면서 실패했다. ⓒ뉴시스



    서울시 측은 “유럽 18개국에서 시행 중인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고, 민간 위탁하고 있는 ‘노동권익센터’를 2018년까지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독립시켜, 재단법인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4곳에 있는 ‘노동복지센터’도 그 수를 늘리고, 각 구별로도 ‘노동전담팀’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측은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우선 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시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 제도를 정립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자율과 책임 경영 원칙에 따라 2016년 10월 노사 합의가 이뤄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에 우선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열심히 일한 노동자가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서울시 만의 차별화된 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사람 우선의 노동조건 보장을 위해 생활임금, 정규직화 등 서울시 선도 사업의 민간 확산에 주력하겠다”면서 “민관, 노사와 함께 서울의 노동을 바꿔, 함께 잘 사는 사회, 공정한 삶의 가치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반적인 직장 생활’ 경험도, 개인 사업 경험도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서울시가 이번에 내놓은 ‘노동존중특별시’는 진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겉모습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에 살면서 가장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는 20대와 30대 미취업 남성, 그 가운데서도 아르바이트로 견디면서 취직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취업을 위한 징검다리'이지 '아르바이트로 평생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노동존중특별시’ 비전에는 이들의 미래를 배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악용해 ‘최저 임금 경쟁’을 벌이는 사회적 현상을 없애야 함에도 서울시는 외국인 근로자 지원에 무려 27억 7,200만 원을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이 내놓은 ‘노동존중특별시’ 정책이 그대로 이뤄진다면, 그의 정책이 조준하는 영세자영업자, 소기업들의 서울 탈출 러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1,000만 명 선이 무너진 서울의 인구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땅값 폭락, 도심 공동화와 슬럼화, 지자체 재정절벽 위기 등의 모든 책임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이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부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