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 큰 건물만 ‘내진설계’…단독·연립, 재건축 아파트 ‘위험’
  • ▲ 지난 17일(현지시간) 에콰도르에서는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 지금까지 5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美ABC뉴스 화면캡쳐
    ▲ 지난 17일(현지시간) 에콰도르에서는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 지금까지 5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美ABC뉴스 화면캡쳐

    지난 4월 14일과 4월 16일, 日규슈 지역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 현을 덮친 지진은 한국 남동부 해안에서도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이튿날인 17일(현지시간) 이번에는 중남미 에콰도르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20일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500명을 넘겼다. 20일에는 필리핀에서 또 지진이 일어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진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해 오던 한국 사회 또한 ‘환태평양 조산대’, 일명 ‘불의 고리’라 불리는 지역에서 4월 초순부터 일어나는 지진들을 보며 긴장하고 있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안정된 지각 위에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와 관련 주장이 지난 5년 사이에 숱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은 日구마모토 지진과 에콰도르 지진 이후 한반도에서의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보도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건들지 않는 주제도 있다. 바로 한국의 지진대응능력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지진 대응 능력은 ‘제로(0)’ 수준이다.

    내진설계 대상: 대형건물, 대형병원, 관공서, 인프라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일어난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로 한국 내에서도 지진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회의원들 또한 정부의 지진 대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렇다면 국회, 정부, 학계 등에서 거론된 한국의 지진 대응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수도권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면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유는 한국의 건축법 상 내진설계 적용 대상이 대형 건물 위주로 되어 있어서다.

    한국 건축법에서 내진설계 적용을 법으로 정한 것은 1988년. 당시 정부는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 이상의 건물, 바닥면적 1만 ㎡ 이상인 판매 시설, 5,000㎡ 이상인 관람집회시설, 1,000㎡ 이상인 종합병원, 발전소, 공공업무시설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적용하도록 명시했다. 이때 내진설계 기준은 규모 6.0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500년 마다 한 번 있는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5년, 정부는 1,000년 마다 한 번 있는 지진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적용토록 했다. 현행 ‘내진설계 기준’은 2009년 법률 개정에 따른 것으로, 2,400년 마다 한 번 일어나는 지진, 즉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진설계’를 의무적용 해야 하는 건축물도 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의 건물로 대폭 확대했다.

    이 설명만 보면 ‘내진설계 기준’이 상당히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모든 건물이 지진에 견딜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여전히 ‘빈틈투성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토목구조기술사회 등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정부 주요청사, 교량, 도시철도와 철도, 도시가스 시설, 댐과 수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변전소 등 발전시설 등에 대해서는 내진설계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보강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웬만한 관공서, 가스 공급시설, 철도, 도로, 교량, 발전시설에는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 규모 6~8 정도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빈틈은 다른 곳이었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 그 가운데서도 국내 건축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등이 문제다.

    관공서나 대형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대형 오피스 빌딩은 대부분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이어서 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준공허가’를 받기 힘들다. 하지만 개인들이 짓는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오래된 건물의 경우에는 설계 및 건축비용을 이유로 내진설계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곳이 거의 다다.

    2011년 ‘日도호쿠 대지진’ 이후 드러난 현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내진설계’ 실태를 다시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11년 3월 당시 소방방재청(現국민안전처)이 국회에 보고한 데 따르면, 한국에 있는 전체 건축물 680만여 개 가운데 ‘내진설계 적용대상’은 약 100만 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16만 개뿐이었다.

    이중에서도 초중고교는 규모 5.5~.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이 13%에 불과했다. 전국 1만 8,329개 학교 중 2,417개 학교만 중급 규모의 지진에 견딘다는 뜻이었다.

    정부가 직접 건설한 교량이나 터널, 도로, 철도의 경우에는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이 많지만, 지자체들이 건설한 지역의 교량은 36%, 터널은 53%만 내진설계를 적용했다.

  • ▲ 한국시설안전공단에는 건축법에 따른 내진설계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나와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홈페이지 캡쳐
    ▲ 한국시설안전공단에는 건축법에 따른 내진설계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나와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홈페이지 캡쳐

    정부 부처나 국회 시설은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일정 수준의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 12월 완공한 세종로 정부청사는 규모 5~6 정도의 지진을 견딜 수 있고, 1982년 완공된 과천정부청사는 규모 4~5, 1997년 12월 완공된 대전정부청사는 규모 5~6, 2012년 완공된 세종정부청사는 규모 6~7의 지진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국회는 1975년 완공된 의사당 본관은 지진에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즉 국회 본회의 중 지진이 일어나면 국회의원 모두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의원회관은 규모 6~6.5, 최근 새로 완공한 제2의원회관은 규모 6~7의 지진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10월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도 있다. 이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 가운데 9만 5,866동이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이지만, 이 중 3만 5,520동에만 내진설계를 적용했다고 한다. 나머지 6만여 동의 아파트는 대부분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즉 재건축 수익을 노리고 강남 등의 ‘낡은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지진 한 번에 떼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 또한 만들어진지 오래된 1~4호선의 경우 전체 노선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구간이 3.6%에 불과하다고 한다.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구간 가운데 고가, 교량, 지하터널 구간도 53.2km나 된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성동구 일대의 고가 등도 해당된다고.

    경남, 인천, 경북 등은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 공동주택의 90% 이상에 내진설계가 적용된 상태다. 지방의 지하철은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노선 모두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통해 ‘내진설계’ 적용의 부실함을 지적했지만, 여기서도 빠진 부분이 앞서 언급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들이다.

    한국 수도권에서 지진 일어나면? 에콰도르는 ‘천국’


    ‘표’에 목숨을 거는 국회의원들은 주로 대형 오피스 빌딩과 지하철 등 인프라 시설, 대형 공동주택(아파트), 주상복합주택 등의 ‘내진설계’ 자료 위주로 공개하고 있다. 서민 주거지인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의 ‘내진설계’ 적용률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 ▲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표' 때문인지 아파트나 대형 건축물 내진설계에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 대학생 기자단 블로그 캡쳐
    ▲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표' 때문인지 아파트나 대형 건축물 내진설계에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 대학생 기자단 블로그 캡쳐

    때문에 2005년 4월 이낙연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공개한 자료만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국 635만 6,572개 건축물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9만 5,809개, 비율로는 1.5%였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전해인 2004년 3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 단독주택 403만 8,680개 중 960개, 공장 18만 2,554개 가운데 1,706개, 할인점이나 백화점, 마트와 같은 유통판매시설 1만 1,704개 가운데 678개만이 ‘내진설계’를 적용했다고 한다. 업무시설은 2만 20개 가운데 9,348개에만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었다고 한다.

    한참 지난 2012년 자료도 있기는 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이야말로 지진 취약지역이었다. 2011년 5월 기준으로, 서울 시내 건축물 65만 9,030개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4만 6,367개, 7% 내외였다. 물론 무허가 건물은 뺀 수치다.

    즉, 만약 수도권에서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면, 집에서,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공장에서 죽거나 다치게 된다는 뜻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 가운데 절반은 생존할 수 있을 듯하다.

    일부에서는 이런 한국 사회의 ‘내진설계 기준’과 적용비율을 보면서, “만약 한국, 특히 수도권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사망자 수백만 명, 부상자 1,000만 명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며 우려한다.

    우려는 충분히 합리적이어 보인다. 지진 빈도 증가와 함께 한반도 지각도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결과, 과거 화산폭발과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역사기록들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日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반도에서도, 주로 충청도 해안지역, 경북 해안지역에서 규모 2~4의 지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 태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상청의 경우 “2000년 이후 지진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면서 지진 강도가 세게 보이고 빈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해명이나 내놓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에서 ‘듣기 좋은 거짓말’보다는 국민들 스스로 지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1924년부터 '내진설계'를 의무적으로 적용토록 한 일본처럼은 아니라 해도 현재의 내진설계 적용기준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안전 책임진다는 ‘국민안전처’, 세월호만 국민인가?


    지진과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해상사고 이후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같은 해 말 ‘국민안전처’라는 조직을 새로 창설했다. ‘국민안전처’는 기존의 해양경찰과 소방방재청 등을 흡수, 국가적 재난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국민안전처’는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문제에 과연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을까. 4월 20일 ‘국민안전처’는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과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에는 전문 인력도 없고 경험도 없어 대응이 부실했지만, 이번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지자체에 배포하고, 담당 인력을 지정해 매년 교육하는 한편, 재난 발생 시 해당 지자체에서 ‘재난대책본부’를 구성해 운영하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오,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등 해외의 사례를 보면, 그건 ‘국민안전처’의 착각에 불과해 보인다. 미국의 경우 그렇게나 자랑하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거의 재구성되는 치욕을 당했고, 일본은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 직후 그 잘난 ‘매뉴얼’ 대로 대응하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즉 재난 대응은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과 신속대응의 문제라는 것이다.

  • ▲ 2014 '안전한국훈련' 홍보 동영상. 과연 훈련만 하면 지진 피해가 줄어들까. ⓒ관련 영상 유튜브 캡쳐
    ▲ 2014 '안전한국훈련' 홍보 동영상. 과연 훈련만 하면 지진 피해가 줄어들까. ⓒ관련 영상 유튜브 캡쳐

    끝으로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지난 16일 ‘국민안전처’ 등 정부부처에서는 ‘제2회 국민안전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세월호 당시 희생된 '사람들'도 추모했다고 한다.

    질문은 이것이다. 국민안전처 장관 이하 실국장급 ‘높으신 나으리들’께서는 혹시 ‘남윤철’ ‘박지영’ ‘양대홍’ ‘정차웅’ ‘최혜정’이 누군지는 아는가.

    만에 하나, 이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단원고 학생들 이름은 줄줄 외우고 있다면, 2002년 ‘효순이·미선이’는 기억하면서, ‘윤영하’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박동혁’은 기억하지 못하던 ‘청와대 운동권 세력’과 다를 바 없다. 

    ‘국민안전처’가 ‘세월호 안전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 보도자료에다 부처 자랑 따위나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진정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찾아내 고쳐야 할 것 아닌가. ‘국민안전처’의 존재 의미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