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대사관, 텔아비브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이란 핵합의 파기할 것”
  •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美워싱턴 D.C. 버라이즌 센터에서 열린 AIPAC 총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라이트 사이드 브로드캐스팅 유튜브 채널 캡쳐
    ▲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美워싱턴 D.C. 버라이즌 센터에서 열린 AIPAC 총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라이트 사이드 브로드캐스팅 유튜브 채널 캡쳐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美 워싱턴 D.C에 있는 버라이존 센터에서는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 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연설하러 온 美대선 경선 후보들은 그동안의 독설들을 모두 접고 유대인과 이스라엘 편을 드느라 서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들에 대한 의견 분열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美‘워싱턴포스트’, 英 ‘인디펜던트’ 등은 이날 AIPAC 총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힐러리 클린턴, 테드 크루즈 등의 연설 내용과 AIPAC 총회에 참석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딸 ‘이반카 쿠셔’가 곧 낳을 손녀딸이 유대인 혈통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 최고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반카 트럼프’로 잘 알려진 트럼프의 딸은 2009년 ‘제라드 쿠시너’라는 유대계 재벌과 결혼했다. ‘제라드 쿠시너’는 ‘쿠시너 부동산’과 신문사 ‘뉴욕 옵저버’의 오너인 ‘찰스 쿠시너’의 아들이다. 트럼프의 딸은 결혼과 함께 유대교로 개종했고, 결혼식도 유대교 방식대로 올렸다.

  • 지난 2월 맨체스터 유세 중 연설하는 이반카 쿠시너(이반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의 딸로 모델, 사업가, 저자 등으로 활동했다. 트럼프의 인기 상승에도 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지난 2월 맨체스터 유세 중 연설하는 이반카 쿠시너(이반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의 딸로 모델, 사업가, 저자 등으로 활동했다. 트럼프의 인기 상승에도 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英‘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는 AIPAC에서 “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이라거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이란 핵합의는 재앙 수준”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 합의를 ‘무효화(Dismantle)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親이스라엘 발언들이 이어지자, AIPAC 총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AIPAC 총회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현대 정통파 시나고그의 랍비 ‘슈멜 허츠펠트’가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저 자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며 “저 자는 사악하다. 저 자의 말은 인종주의와 편견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언론들이 AIPAC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한 연설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가난한 빚쟁이 나라 미국을 다시 위대한 국가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해외 개입을 줄여야 한다”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중립’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매년 수 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에게 들으라는 듯 “동맹국에 대한 군사 및 자금 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트럼프가 멕시코계 불법체류자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미국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점 또한 AIPAC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30% 가까이가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편인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민들의 눈에는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 또는 무슬림 근본주의자나 중세시대 가톨릭 성직자와 같은 ‘종교적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러나 트럼프에 반발하는 유대인만 있는 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유대인들도 많았다며 페이스북 등 SNS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일부 SNS 이용자들은 트럼프를 “사악하다”고 비판하는 유대인을 오히려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 도널드 트럼프의 AIPAC 연설 도중 "저자는 사악하다"고 외치다 끌려나가는 랍비 슈멜 허츠펠트(흰 천을 두른 사람)의 모습. ⓒ美워싱턴 포스트 보도화면 캡쳐
    ▲ 도널드 트럼프의 AIPAC 연설 도중 "저자는 사악하다"고 외치다 끌려나가는 랍비 슈멜 허츠펠트(흰 천을 두른 사람)의 모습. ⓒ美워싱턴 포스트 보도화면 캡쳐

    미국과 영국 언론들에 따르면, AIPAC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흥행에 성공한 셈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前국무장관도 그 뒤를 따랐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세 때마다 이스라엘 안보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新고립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나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버몬트州 상원의원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날 오전, 트럼프에 앞서 AIPAC에서 연설할 때에도 트럼프와 샌더스 모두를 겨냥해 “상황에 따라 팔레스타인 편을 들다 이스라엘 편을 드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면서 “이스라엘 안보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 언론에 따르면, AIPAC 총회 연설 또한 트럼프와 힐러리 간의 대결 구도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州 상원의원,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폴 라이언 美하원의장 등이 AIPAC에서 연설을 했지만, 이들 두 사람과 같은 뜨거운 반응은 얻지 못했다고 한다.

  • AIPAC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前국무장관. ⓒ'독일의 소리(DW)' 유튜브 채널 캡쳐
    ▲ AIPAC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前국무장관. ⓒ'독일의 소리(DW)' 유튜브 채널 캡쳐

    한편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는 본인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AIPAC의 연설 초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선거 유세’였다.

    버니 샌더스는 1941년 9월 8일 뉴욕 브루클린의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2016년 美대선 경선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밝히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정부를 비난하는 소리를 자주 해 되려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버니 샌더스는 美민주당 경선 유세 과정에서도 힐러리와 달리 “내가 대통령이 되면, 팔레스타인과도, 이스라엘과도 친구가 될 것”이라며, 미국의 親이스라엘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 美워싱턴州 시애틀 유세 당시 버니 샌더스. 그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다. ⓒ버니 샌더스 2016 유튜브 채널 캡쳐
    ▲ 美워싱턴州 시애틀 유세 당시 버니 샌더스. 그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다. ⓒ버니 샌더스 2016 유튜브 채널 캡쳐

    버니 샌더스를 제외한 공화·민주 양당 대선 경선후보들을 모두 불러 모은 AIPAC은 1951년 ‘이사야 케넌’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美정부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다. 당시 이름은 ‘미국 시오니스트 공공정책 협회’였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이라고 한다. 세간에는 “미국 최강의 로비단체”로도 알려져 있다.

    美대선 레이스에서 AIPAC 총회 연설은 유력 후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버락 오바마 現대통령 또한 AIPAC 총회 연설에서 ‘이스라엘지지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거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