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병식 하는 북한 여군들. 북한 여군들은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상상도 못할 군 생활을 겪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열병식 하는 북한 여군들. 북한 여군들은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상상도 못할 군 생활을 겪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군 시절의 추억, 전 인민군 상사가 말하는 '정치학습'

    120여만 병력가운데 40%를 차지하는 북한여군들은 남성들과 달리 ‘자원입대’형태로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는 곳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킨다는 허구한 나날들이 너무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구타도, 상급반항도, 무단외출과 탈영도 다반사다. 병영(막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군율과 질서에 매어있는 군인들 속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먼저 북한 여군들의 일과(내무반)생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여군들은 동절기와 하절기로 나누인 일과생활을 하고 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5.40분 기상, 20분간 아침운동, 40분간 침구정돈 및 부대주변청소, 이후 아침식사, 식사 후에는 정치상학(정치학습), 군사상학(군사훈련)시간을 보내며 점심식사 후, 무기청소 및 조준연습 1시간, 이후 다시 시작되는 군사상학, 저녁식사, 분대별 ‘10대준수사항 총화’(훈련총화) 및 TV관람, 저녁점검과 취침 등으로 이루어진다.

    동절기에는 기상시간이 한 시간 늦게 이루어지며 여군들은 남군들보다는 여가생활시간을 조금 더 쓸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다. 이를 테면 남성군인들은 아침운동시간이 30분인데 반해 여군들은 20분간만 운동에 참가하고 침구정돈을 빌미로 막사에 들어가는 식이다.

    또한 부대마다, 혹은 지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고참이나 분대장들이 누구누구가 생리중이라고 지휘관들에게 알리면 훈련이나 작업에서 해당 대원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기화로 남보다 좀 더 휴식을 취하거나 작업 등에서 자주 누락되는 경우 군무생활 낙오자로 찍히기가 십상이다. 때로 남성군인들로부터, 혹은 동료인 여성군인들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누군 생리를 안 하냐고?! 왜 너만 자주 빠지는 가고?!... 그래서 북한여군들 속엔 ‘생리를 해도 안 아프게 생리를 하는 여군들이 장땡이다’는 말이 있다. 그냥 참고 또 참고...아파도 아픈 척 하지 않는 게 군복무를 잘 하는 사람이고, 입당도 빨리 할 수 있는 길이니 말이다.

    그렇게 참을성 있는 군인이 되라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혁명전사가 되라고 매일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인민군 정치상학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의 기본전투단위인 중대엔, 군사지휘관인 중대장과 정치지휘관인 정치지도원이 있다.

    중대장이 군사를 책임졌다면 정치지도원은 중대군인들의 정치생활과 학습을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김일성, 김정일, 현재 김정은이 하달하고 있는 훈련명령도 그냥 ‘0000년 군사훈련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0000년 전투정치훈련에 관한 명령’이 되곤 한다.

    군사훈련만이 아니라 정치훈련을 받듯이 각인시킨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북한의 모든 중대(혹은 독립소대)군인들은 동·하계 훈련의 전 과정을 통해 정치학습을 받게 된다. 이 정치(상학)학습은 격일로 진행되는바 하루건너 한번, 한번에 2시간씩 진행되며 정치지도원이 직접 교육자로 나서고 있다.

    하루건너 한번에 2시간씩이니까 따지고 보면 매일 한 시간씩 정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매주 토요일은 이름 하여 ‘정치일’이다. 강연과 학습에 이어 주 노동당(청년동맹)생활총화가 진행된다. 어찌 보면 북한군 생활 전반이 저들이 말하는 ‘당성단련의 용광로’인 셈이다.

    이 ‘당성단련의 용광로’속에서 군인들은 첫째,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육을 받게 된다. 우리 수령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며 수령만 믿고 따르면 혁명에서 승리한다는 식이다. 둘째로는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에 대해 반복, 또 반복해 듣는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며 썩고 병든 남조선 사회에 비해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는 식이다. 외부소식이 철저히 차단된 북한, 더욱이 병영생활을 하면서 주입식교육에 몰두해 있는 병사들에겐 제법 그럴듯한 소리로 들리고, 결국엔 ‘남조선인민들의 해방을 위해 조국을 통일해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곤 한다. 세 번째로는 미제는 우리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수, 남조선 괴뢰군은 미제의 총알받이며 허수아비...등의 교육이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이 말짱 헛것이고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10년 동안 오로지 그러한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세상은 실지로 북한을 중심으로, ‘장군님의 뜻’에 따라 돌아가는 듯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교육과정은 사람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마저 병들게 한다.

    생각해 보시라. 매일처럼 진행되는 정치학습은 복습과 예습, 과제를 동반함으로 잠을 설치며 공부, 또 공부해야 한다. 정치학습 교제뿐 아니라 신년사를 비롯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새로운 지시가 나올 때 마다 필기하고 암기하고, 문답식 학습경연이란 것을 통해 발표하고 총화 받고 평가받는 것이 정치학습이다.

    이러한 정치학습에 빠지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지각, 조퇴하는 경우 정치지도원은 해당 군인의 평정서에 ‘사상적으로 불결하다’는 딱지를 붙인다. 이러한 ‘딱지’는 평생 따라다닐 뿐 아니라 입당이나, 표창휴가, 승진이나 여타의 평가사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외에도 군인들의 정신무장을 위한답시고 조국과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빨치산 대원들과 전쟁영웅들의 회상실기, 덕성실기 등의 자료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교육하고 또 교육한다. 대한민국 군인들도 정신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북한과는 정말 비교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또 한 가지, 북한군 군인들의 청치학습을 말함에 있어서 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정치학습을 진행하는 ‘교양실’(장소)이 너무 춥다는 것이다. 북한군엔 어느 중대(독립소대)를 막론하고 정치상학 ‘교양실’이란 것이 있는데 사용용도는 오로지 정치학습과 생활총화, 군인궐기모임과 같은 정치적 일정과만 연계되어 있다.

    이 ‘교양실’에는 역시 어느 중대를 막론하고 김일성, 김정일 혁명력사 도록이 비취 되어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너비 70에 높이 1.20㎝의 정교한 액자 50개에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가 미국선박 ‘셔먼호’를 격침시켰다는 이야기부터 김일성의 어린 시절 이야기, 김정일이 당과 국가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어떻게 부강발전 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진으로 쭈욱~전시시켜 놓은 게 '도록'이다.

    배급도 못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선전물들은 국가가 직접 제작해, 북한군의 말단 중대에까지 일일이 공급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도록은 북한군 모든 군인들의 암기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 현직 대통령의 생일도 알지 못하는데 반해 북한군 군인들과 젊은이들이 김정은의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는 물론 김일성의 작은아버지와 삼촌들의 족보를 쭈욱~내리 엮을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이, 혁명력사 도록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둔다. 책상이며 의자도 나름 최고급이다.

    중대 막사엔 제대로 된 책상하나 없어 부서지고 찌그러진 책상을 수리해 쓰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교양실’에 만큼은 광택이 번들거리는 책상과 의자가 늘 정리되어 있다. 도록 판은 물론이고, 창문도 늘 깨끗이 닦아 놓아야 한다. 하지만 춥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북방의 혹한 속에서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정치지도원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야 한다.

    때로 그 아까운 나무를 ‘교양실’ 아궁이에 집어넣기도 한다만, 이는 추위에 떠는 군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록 판이 얼지 말고 습기로 인해 오손되지 말라는 의미다. 그래서 군인들이 실내에서 하는 정치학습보다 차라리 땀 흘리며 뛰어다녀야 하는 야외훈련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불요불굴? 항일의 여성영웅?

    이러한 ‘교양실’에서 여군들이 제일 먼저 따라 배우고 본받아야할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다. 북한은 이 김정숙을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항일의 여성영웅이라 칭송하며 모든 여성들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불요불굴(不撓不屈), 즉 구부러지지도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이란다.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어 나가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런 사람이 다름 아닌 김정숙이며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하는 항일의 여성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런 김정숙의 고향이 나와 같은 회령이었다. 가난한 소작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독립의 꿈을 키웠으며 자라서는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에 입대, 김일성의 가장 충직한 혁명 전사였더라는 이야기다. 더하여 일제와 싸우던 빨치산 시절 혹한기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김일성의 속옷을 가슴에 품고 말리었다고 했다.

    자신의 길었던 머리채를 잘라 김일성의 신발깔창을 만들어주었다는 일화도 소개해 주었다. 또 작식대원(취사원) 시절엔 일제와의 전투가 한창이던 속에서도 빨치산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펄펄 끓는 죽 가마를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달렸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그럴 듯 했다가 해를 거듭하며 자꾸 듣다보니 도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엮어 군인들을 세뇌시킨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하지만 혁명력사 학습시간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디다 감히 토를 단단 말인가. 나도 남들처럼 열심히 김정숙 관련 내용을 암기했고 생활총화 때나 군인모임 때나 줄 곳 인용하곤 했었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 동지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속옷을 가슴에 품어 말리었고 전우들을 위해 펄펄 끓는 죽 가마를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달렸는데 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전사라고 말로만 떠들면서 실지 행동에서는 그렇지 못한..

    아비가 아들에게 바친 헌시, 그리고 ‘어머니’ 시에 대한 일화

    90년대 초반에 전군에 하달된 인민군 총정치국 지시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지으신 송시, ‘광명성 찬가’에 대한 학습과 실효투쟁을 철저히 진행 할 것”

    근무성원도 당직병 한명만 제외하고 모두 ‘교양실’에 모이라는 정치지도원의 지시가 떨어졌고 중대 군인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교양실’에서 정치지도원은 위대한 서사시마냥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바쳤다는 헌시를 읊어 나갔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있고/ 소백산 푸른 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 돌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 다 우러르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뜻인 즉 백두산의 정기와 소백수(백두산의 개천)의 푸른 기상을 안고 태어난 김정은(광명성)이 어느덧 생일 쉰 돌을 맞고 있으며 그는, 문무충효가 뛰어나 모든 사람이 우러르고, 만민이 칭송한다는 내용으로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몸소 지어 바쳤다는 ‘헌시’라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북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 한동안 충격에 빠져버린 듯 했다. 어떻게 애비가 돼 가지고 자식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하는 듯 한 헌시를 지어 바친단 말인가. 또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를 북한주민 모두에게 암기시키고 실효 모임까지 하도록 한단 말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북한주민들의 정서상, 아비가 아들을 칭송하는 시 따위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고 정상적인 행동이 아닌 것처럼 비쳐지고 있었다.

    혹시 아들 김정일이 다 늙은 아비에게 시라도 지어 바치라는 비정상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나 십은 위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정치국 지시에 따른, 정치학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헌시 암기와 낭독, 실효모임이었음으로 누구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었고, 지금까지 나도 눈감고 줄줄 암기할 정도로 ‘뼈 속 깊이’ 새겨 넣었었던 바다. 그리고 그 학습효과에 힘입어 김정일은 자연히 ‘광명성’이 되어 버렸다. 그랬던 김정일이 갑자기 ‘어머니’가 되어 버린 사건도 있었다.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북한주민 모두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지어는 굶어죽기 시작하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편지로 혹은 인편을 통해 고향소식을 들은 군인들이 마음속으로 동요를 일으켰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령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상적 각오야 누구에겐들 없으랴 만은,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에는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위한 사상교육은 더욱 강화되는 판국이었다. 나라가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도 쪽잠에 좨기밥(주먹밥)을 먹어가면서 인민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교육의 핵심었다.

    그러던 어느날, 만성적인 배고픔에 시달리던 군인들은 허리끈을 한 번 더 조여 매고 있을 때, 김일성과 김정일이 극찬했다는 시와 노래를 무조건 암기하라는 명령이 또 떨어졌다.

    전쟁 때 적의 화구를 막았다는 리수복 영웅이 지었다는 시(나는 해방된 조국의 청년이다)와 수령님의 안녕을 바라는 내용이 담긴 노래(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외 열 개나 되는 가요와 시였다. 그 가운덴 지금은 북한주민 누구나 졸졸 외우고 있는 김철 시인의 ‘어머니’란 시도 들어있었다. (계속)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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