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정보당국 "北, 증폭핵분열탄 실험이라 해도 위력 보면 실패"
  • 1951년 美네바다주 사막에서 실시한 핵폭탄 실험. 이 같은 지상 핵실험은 1970년대부터 자취를 감췄다. ⓒ美정부 아카이브 사이트 캡쳐
    ▲ 1951년 美네바다주 사막에서 실시한 핵폭탄 실험. 이 같은 지상 핵실험은 1970년대부터 자취를 감췄다. ⓒ美정부 아카이브 사이트 캡쳐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놓고 정부가 보이는 반응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수소폭탄이 아니다”라고 못 박으려는 것이다.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는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어 시간이 흐른 뒤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 관계 부처는 “지진의 규모가 리히터 5.1로 폭발력이 6kt(킬로톤, TNT 1,000톤의 폭발력을 지칭)에 불과했다”면서 “수소폭탄이 아니다”라고 단정 지었다.

    이어 일부 전문가들이 ‘증폭 핵분열탄’일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국정원과 국방부 등은 “그 또한 폭발 위력으로 볼 때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이때 국정원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논리 근거는 “북한의 4차 핵실험 폭발력이 6kt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수소폭탄은 핵실험 폭발력이 Mt(메가톤, TNT 100만 톤 폭발력) 단위이고, ‘증폭 핵분열탄’이라 하더라도 그 위력이 일반적인 핵분열 폭탄의 서너 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국정원 측은 지난 6일부터 7일 사이 언론들에 “이번 4차 핵실험은 2015년 12월 15일 김정은이 직접 명령을 내린 지 22일 만에 이뤄지는 등 준비기간이 매우 짧았다”면서 “3차 핵실험 때와 같은 수준의 무기를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방부도 “북한 4차 핵실험에 관한 상세 평가는 현재 진행 중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북한이 수소폭탄을 만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수소폭탄 실험’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보는 시각에서 놓친 부분들이 여럿 있다. 바로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관련 기술에 대한 것이다.

  • 현재 美네바다주의 핵실험장. 구멍은 지하핵실험의 흔적이다. 미국은 1997년 이후 '미임계 핵실험'만 하고 있다. ⓒ美에너지부 사이트 캡쳐
    ▲ 현재 美네바다주의 핵실험장. 구멍은 지하핵실험의 흔적이다. 미국은 1997년 이후 '미임계 핵실험'만 하고 있다. ⓒ美에너지부 사이트 캡쳐

    핵폭탄에는 핵분열 폭탄과 언론에서 ‘증폭 핵분열탄’으로 보도된 ‘강화 핵분열 폭탄’, 그리고 ‘열핵무기’로도 불리는 수소폭탄이 있다. 낙진 강화용(Salted Bomb)인 코발트 폭탄이나 생명만 살상하는 중성자탄은 일반적인 핵무기가 아니어서 제외한다.

    소위 ‘원자폭탄’으로 많이 불리는 핵분열 폭탄을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을 주로 사용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맨해튼 작전’을 통해 만들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리틀보이’와 ‘팻맨’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1950년 1월 31일 해리 S.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수소폭탄 개발을 추진한다. 에드워드 텔러 박사와 스타니슬라브 울람 박사는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는 이론을 만들어 냈고, 1952년 4월 미국은 ‘아이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남태평양 애니웨톡 환초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이 수소폭탄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보유하게 될 때까지 핵무기 개발 기술도 계속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적은 핵물질을 사용해 보다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강화 핵분열 폭탄(증폭핵분열폭탄)’이다.

    ‘강화 핵분열 폭탄’은 폭탄 안에 핵분열 폭탄과 소량의 핵융합 물질을 넣어, 기존의 핵분열 폭발력을 2~5배 증대한 것으로, 핵물질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보다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고, 핵무기의 소형화에도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원자폭탄→강화 핵분열 폭탄→수소폭탄’이라는 개발 단계가 정착됐다.

    이 과정까지만 고려하면,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실패 여부를 떠나 ‘강화 핵분열 폭탄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빠진 부분이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냉전 질서가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핵무기 자체는 물론이고 핵무기 개발에 관한 기술과 관련 물질들이 무차별 유출되었다는 점, IT 기술의 발달로 ‘무실험 핵무기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슈퍼컴퓨터가 ‘필수요소’가 아닐 수도 있게 됐다는 점 등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상황들을 고려하면, 더 이상 ‘진짜 핵무기를 사용한 핵실험’은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은 2010년 9월 15일 네바다 사막 지하 300m에서 ‘미임계 핵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이때는 지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국 과학자들이 "북한 핵실험은 '미임계 핵실험'이 아니다"라고 결론 짓는 이유다.

    북한과 미사일 개발에 협력한 파키스탄의 경우 1998년 5월 30일 지하 핵실험 당시 발생한 지진 규모로 추정한 폭발력은 4~6kt에 불과했고, 인도가 1974년 5월 18일 지하 핵실험을 했을 때 미국 과학자들이 추정한 폭발력이 8kt에 불과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해외의 다양한 사례는 고려하지 않고, 북한 내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지진파 규모 등으로만 북한 핵무기 개발 단계를 단정지으려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이 민간 군사연구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