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우파의 탄생 

  • 강유화 (1991년생)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일베(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줄임말)’ 집단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일베의 탄생을 불편해 했다. 특히 “진보”라 불리는 사회 집단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사실 진보라는 호칭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하나이지, 한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진보라는 단어를 좌파가 선점해린 탓에 진보는 그네들의 공식 명칭으로
    잘못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이 글에선 올바른 표현을 사용하여 ‘자칭진보’ 혹은 ‘좌파’라고 쓰려한다.

     좌파진영의 눈엣가시가 된 일베는 젊은 우파의 탄생 신호였다.
    일베가 좌파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부 회원들이 보인 비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좌파의 절대적 지지층이던 젊은 층의 이탈 때문이다. 

    여태껏 좌파가 청년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좌파만의 '마이너리티' 의식 덕분이었다.
    경쟁사회에 대한 비판, 주류가 독점하는 문화자본에 대한 반항 등 주류를 향한 좌파의 딴지가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자칭 진보’ 인사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으로 채색된
    ‘386세대의 데모 신화’가 젊은 층을 매혹했다.

      좌파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분명 청년 세대의 순수한 정의감과
    주류에 대한 비판을 대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정의와 정치를 말하는 대신,
    그저 권력을 지키고 키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시위에서 발견된 ‘자칭진보’의 정치철학은 하나였다.
    '이명박 OUT'. 구호 뒤로는 어떤 것도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뿐이었다.
    더 이상 소외된 이들을 향한 진정성,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좌파가 그토록 증오한다는 소위 “주류사회”와 닮아 있었다.
    이제 좌파세력은 뜨거운 데모현장에 대한 향수를 가진 386세대의 동문회,
    그들 세대를 동경하는 정치 힙스터의 모임이 됐다. 
     
     힙스터는 유행 등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문화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미국 속어다.
    특히 진보적 정치 성향을 보이며 주류세대가 터부시 하는 가치에 관심을 두었다.
    초기 힙스터는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힙스터”는 긍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단지 애플을 쓰거나, 독특한 옷을 입거나, 무조건 보수에 반대하거나 하는 등의
    일정한 공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주류와 다르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비주류를 쫓으며
    지적 우월감을 채우는 사람들이 힙스터라 불린다. 

    한국의 좌파도 현재의 힙스터에 가깝다.
    노동자를 사랑할 것, 동성애를 지지할 것, 비정규직을 옹호할 것, 정부를 비난 할 것 등등
    몇 가지 정치 공식만을 ‘세련된 것’, ‘우월 한 것’으로 여기며
    자신들을 마이너리티리그의 의식 있는 비주류로 포장한다.
    지금의 좌파세력은 권력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이너리티’ 라고 외칠 뿐이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며 우리 사회의 ‘진보’라는 가치를 퇴색시킨다.

      결국 젊은이가 ‘보수’라고 말하면 ‘개념 없다’라고 돌팔매질 당하는
    좌파독재 세상에서 일베가 총대를 멨다.
     선거철마다 패배요인을 투표율이 저조한 20대에게 돌리며
    권력싸움의 패배를 젊은 층의 탓으로 돌리기 바쁜 이들이 자칭 진보였다.
    그러면서도 ‘젊은 층이라면 무조건 진보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진보다’라고 말한다.  

    ‘진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자칭 진보라 부르는 세력에 젊은이가 동의할만한 철학과 신념이 남아 있는가?
     ‘젊은이들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시키려던
    좌파의 꼼수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청년 우파는 자칭 진보세력에게 그들이 이 시대의 진짜 ‘마이너리티’인지 묻는다.
    진짜 ‘마이너리티 리그’에 있는 자들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묻는다.
    진보를 외치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좌파에게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 보수를 지지한다고 하면 의식 없는 젊은이가 되는 불편한 진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언더도그마 현상’이 있다.
    강자는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기고,
    약자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강자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말한다.

    하지만 권력 세계에서 권력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이
    강자에 의해 짓밟힌 도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1인자가 되지 못한 것이 마이너리티의 패배를 의미하진 않는다. 

    좌파에게는 실제로 권력을 빼앗긴 결정적 이유가 있다.
     그것은 언더도그마 현상을 이용한 좌파의 술책이다.
    일베는 어찌 보면 좌파철학이 무조건적으로 신임을 받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철학검증을 요구하는 유일무이한 집단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좌파에게 딴지거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베같은 집단이 아니라면 말이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의 소수를 이용하는 모습이 아니다.
    진짜 진보라면 권력싸움이 아닌 그토록 위한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세상이 주류들만의 사회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비주류와 청년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부여하는 모습을 젊은이들은 보고 싶어한다. 

    만약 좌파의 행태가 젊은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그저 “힙스터적 좌파”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좌파가 자신들이 주류와 다르다는 것만 보여주기 위해
    단순히 마이너리티 의식을 이용한 반항적 모습만 고수한다면
    변질된 힙스터와 다를 것이 없다. 

      청년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그러나 놓쳐서는 안되는 가치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것들을 조명하고 싶어한다.
    정의, 사랑, 행복, 공평, 양심, 희생, 헌신 등
    추상적이지만 꼭 필요한 가치들을 지키고 싶다.
    그런 순수한 청년들에게 주류와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자부심만 느끼게 해주고
    진보에 한 표 던지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청년들 스스로 정치적 신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다르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라면,
    그래서 ‘청년은 보수적이면 안 된다’는 사회의 인식을 만들고
    좌파의 정치 신념을 내재화하는 것이라면,
     나는 우리 사회의 진보에 반대한다.
    젊은이들은 진보를 열망하기 이전에 무엇이 진보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젊은 우파가 탄생한 이유가 아닐까? 

    청년 우파는 좌파가 비난하는 소위 “우파 수구”의 자식들이 아니다.
    오히려 ‘젊은 보수=개념 없음’의 공식이 지배하는 우리사회에서
    자유를 외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나는 여당에 찬성합니다’, ‘좌파는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강요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진짜 진보인 것이다.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것도 자유라고 하는 세상에
    ‘우파 만세’라고 외치지 못할게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젊은이로써 이제는
    우리사회의 좌파 독재에 이별을 고한다.
    좌파 독재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