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단체를 키우는 대한민국 
     

  • 강유화 (1991년생)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다에시(IS의 공식 명칭)의 프랑스 테러는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일부 언론들은 한국 또한 테러 대상국에 포함되었으며 안전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아직 우리는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멀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 정말 안전한 것인가?

    다음 숫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17, 93, 6, 46.

    북한의 테러로 희생당한 우리국민들의 숫자다.

    1983 아웅산 테러 희생자, 1987 대한항공기 테러 한국인 희생자.

    2002년의 연평해전 희생자, 2010 천안함 폭침 희생자.

    사실 숫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질 수도 있다.

    위에서는 북괴가 저지른 수많은 테러 가운데 일부만을 인용했을 뿐이다.

    IS가 아닌 북한정권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다를 뿐,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테러 대상국에서 제외된 적이 없다.

    국민의 안녕을 위협하는 테러 조직은 다에시(IS)와 북한만이 아니었다.

    지금 한국은 내부의 테러 조직과 싸워야 하는 처지이다.

    2013년, 한 국회의원이 북한에 충성을 맹세하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전복하겠다며 내란을 준비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이 나라의 심장부에 기생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석기 조직은 민중 민주주의를 외쳤다.

    공산주의의 변형적 연장선인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민중(노동자, 빈민, 농부 등)만을 위한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만의 독재를 주장했다.

    그들의 테러 준비는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북한의 전쟁 선포 시 평택 유류저장고 폭파, 혜화 전화국 파괴, 전기·통신·철도 차단 방법, 살상을 위한 무기 개조방법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 내란 음모 가담자 중 남한 청년은 무려 여섯이나 되었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청년들은 사상전과 여론전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조직원들에 비하면 너무도 온건한 계획이 부끄러웠는지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신들은 전쟁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반성에서 섬뜩한 전쟁 의지를 보았다.

    과연 우리는 이들을 테러 조직이 아닌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어쩌다 한국은 테러단체와의 동침을 선택했을까?

    첫째로 침묵이다.

    김일성 일가의 절대 독재는 죄 없는 북한주민들을 배고픔과 추위와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동족의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인권 규탄 발언이 도발이라며 침묵할 것을 요구했다.

    천안함 테러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매장됐고, 연평도 포격으로 자국민의 삶의 터전이 망가졌다.

    그러나 북한의 테러조직을 향해 분명한 대응을 외쳤던 목소리를 크지 않았다.

    못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이든 안한 것이든 대한민국의 침묵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침묵은 결국 우리들의 조국을 전복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은 이석기와 일당들의 통합진보당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테러계획을 진행했다.

    국민을 위협하는 테러조직을 우리의 손으로 키운 것이다.

    마틴 루터킹은 외쳤다.

    “결국 우리는 적들의 말이 아니라 친구들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침묵은 결국 동조다.

    이석기 조직이 적극적으로 테러를 준비했다면 침묵을 지킨 이들은 테러집단을 인정하고 돕겠다는 암묵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한 다수에게도 책임이 있다.

    둘째로 좌편향된 역사 교육이다.

    역사 교육은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주어야 한다. 하지만 공교육이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테러조직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섰다.

    좌편향 교육자들은 한국이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만을 집중적으로 교과서에 실었다.

    좌편향 교과서에 실린 역사는 소위 “민주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서술됐다.

    그들이 가르친 민주화라는 것이 독재에 대한 투쟁의 기록만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그리고 여전히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정의감에 피가 들끓는 학생들에게 조국은 독재가 난무하고 권력을 위해 국민을 억압하는 나라, 부끄럽고 비난받아 마땅한,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독재의 그늘에 있는 나라를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역사 교육에서 배운 시민들의 폭력혁명. 순수한 학생들의 눈에는 독재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폭력은 낭만 그 자체로 보였다.

    우리 교육의 현 주소가 이러니,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청년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것이 놀랍지 않다. 물론 아직까지 대한민국을 뒤집겠다고 나선 그들은 “적극적인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점차 그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랜 시간의 침묵은 이 땅에 서서히 내란과 폭력의 전주곡을 울렸다.

    민중 총궐기, 광화문 일대에 모인 사람들 손에는 횃불과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외쳤다. ‘모이자, 서울로! 가자, 청와대로! 뒤집자,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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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단은 남한의 민중총궐기 포스터, 하단은 북한의 정치 선전. 느낌을 비교해보면?
    (출처 : google)

     

    박근혜 정권을 박살내겠다고 했다.

    '헬조선'을 박살내고 뒤집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고 말했다.

    그들 스스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곳에서 테러의 흔적을 보았다.

    서울의 중심가에서 외친 “민중”이란 이름과 이석기 조직이 그토록 열망한 민중 민주주의의
    “민중”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함께 모여 울부짖고, 화를 내던 그들의 눈에 대한민국은 부르주아계급인 정권과 재벌 그리고 영원히 고통 받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농민, 빈민 간의 계급 전쟁의 장이었다.

    거리에선 약자를 방패삼아 나라를 비난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청년, 청소년은 왜곡으로 얼룩진 우리의 역사를 배운다.

    자신의 조국을 비난하는 방법을 배울 곳은 많아도 조국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곳이 없어졌다.

    국민을 위협하는 테러조직을 키운 것도 모자라 테러조직의 동조자를 키우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 역사 앞엔 전 세계를 위협하는 대(大)테러 조직 북한이 있고, 대한민국의 발전 역사를 오로지 폭력적 시위로만 기억할 다음 세대의 모습이 있다.

    이대로라면 “테러조직을 키운 한국”이라는 기사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대한민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조용히 다른 세계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은 미국도, 유럽도, 아프리카도 아닌 오직 북한테러 집단과 우리 자신뿐이라는 것을.

    전 세계가 칭찬을 마지않는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다.

    이제는 침묵을 깨야 한다.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테러단체를 키우는 한국이 아니라, 나라 사랑하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