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뜻 받들어 299석 현원 유지 정하고 빨리 선거구획정위로 넘겨라
  • ▲ 선거구 협상 막판에 다시 의원 정수 증원 카드가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어서 국민의 우려와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국회 깃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선거구 협상 막판에 다시 의원 정수 증원 카드가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어서 국민의 우려와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국회 깃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여야 양당이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통해 선거구 획정 기준을 이번 주 안에는 마련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회동을 가진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은 "국회가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을 이미 어긴 만큼 최대한 빨리 선거구 획정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에는 새누리당 원유철·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양당 정책위의장·원내수석을 포함하는 3+3 회동이 새누리당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3+3 회동을 통해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재가동을 위한 해법이 모색될 전망이다.

    20일까지 정개특위에서 국회의원 전체 정수와 지역구·비례대표 의원의 각 정수, 그리고 선거구 경계 조정의 기준 등을 마련해주면, 지난달 13일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법정기한까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됐다"는 국회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가사(假死) 상태에 있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기준에 맞춰 선거구의 경계를 정함으로써 드디어 내년 4·13 총선에 적용될 국회의원 선거구표가 나오게 된다.

    흡사 산고(産苦) 끝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것과 같은 양상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다. 여야 정치권이 '벼락치기 선거구 획정기준 마련'을 앞두고 또 무슨 희한한 담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여야 정치권의 선거구 획정기준 마련은 '벼락치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이미 법정 시한이 도과했기 때문이다. 시험 날짜가 지났는데 시험 공부를 하는 꼴이니, 벼락치기조차 때를 놓친 셈이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는 생각해보면 전적으로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는 문재인 대표의 기이한 고집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종래 3대1에서 2대1로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국회의원 지역구 인구 하한선은 10만5000명에서 14만 명으로 갑자기 뛰어오르게 됐다. 이 때문에 하한선 인근에 있던 많은 농어촌 선거구가 졸지에 통폐합당할 위기에 처했다.

    300만 농민이 흩어져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의 실질적 대의대표성이 크게 위협받게 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국민 여론도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구 의석을 늘려서 통폐합 위기에 빠진 농어촌 선거구를 구제하고, 남은 의석을 비례대표로 쓰든 축소하든 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한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처럼 받들어야 한다.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이 전날 국회에서 '국회의원 정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고 "계파정치의 온상이자 줄세우기인 비례대표제를 폐지해 의원 수를 250명 정도로 줄이는 게 맞다"고 한 것이나,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 것은 민심에 순응하는 행동이다.

    반면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처럼 "비례대표는 한 석도 줄일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은 민심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순천자는 오래도록 번성하고 역천자는 반드시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고 했는데, 문재인 대표가 정치적 위기에 처한 것도 사필귀정이다.

    지역구 의석을 피치 못하게 늘려야 할 사유가 있는데도 비례대표를 줄일 수 없다고 하면서 마냥 시간만 끌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상대의 입에서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의원 정수라도 늘리자는 말이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상대방이 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했다"고 뒤집어씌우기라도 하려는 참인가.

    농어촌 선거구를 살리기 위해 지역구 의석은 늘려야 하겠고, 자신이 전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비례대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한 석도 줄일 수 없다고 하면서, 협상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가 '깜짝 카드'로 은근슬쩍 의원 정수 증원을 꺼내들 생각은 버려야 한다.

    사실 '의원 정수 현행 유지'라고 하면 정수는 300명이 아닌 299명이 되는 것이 맞다.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 때문에 특별히 19대 국회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의석 수를 300석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그 해 2월 말에 합의한 공직선거법의 부칙 제3조에서 '2012년 4월 11일에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제21조 1항에도 불구하고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새로이 설치되는 것을 고려하여 국회의 의원 정수는 300인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예외 사유가 해소된 점을 감안하면 의원 정수는 299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은근슬쩍 임시로 늘리는 척 했던 1석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도 국민들로서는 울화통이 터지는 일인데, 여기서 의원을 단 1명이라도 더 늘리려는 것은 국민이 용납치 않을 일이다.

    국회의원 정수나 빨리 299명으로 확정짓고 농어촌 선거구를 살리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이렇게 해서 농어촌 선거구를 모두 살리려면 지역구는 몇 석을 늘려야 하는지, 그 결과 남은 의석 몇 석이 비례대표가 되는지만 머리를 맞대 선거구획정위로 넘기면 될 여야 정치권이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온갖 쓸데없는 안건들을 테이블에 올려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선거구의 경계는 분명 독립 기구인 선거구획정위에서 정하기로 했는데, 당리당략과 당내 적대 계파 견제에만 눈이 멀어 생활권이 전혀 다른 무안·신안과 강진·영암을 합친다는 둥 문경·예천과 영주를 합친다는 둥 터무니 없는 밑그림들을 그리고 있으니 영호남에서 민란이라도 일어나야 정신을 차릴 작정인가.

    국회는 독립 기구인 선거구획정위가 마음껏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악법 중의 악법이며 독소조항 중의 독소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5조 1항의 자치구·시·군 분할 금지 조항이나 풀어주고, 구체적인 선거구 경계 획정은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신경쓸 것 없이 획정위에 넘기면 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자꾸 딴마음만 먹다가 마침내 시한에 임박해 '의원 정수 증원' 카드를 꺼내들 작정이라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자기 이름 걸고 '○○○법'으로 불릴 각오로 하라. '오세훈법' '김경란법'처럼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법안은 ○○○가 주장했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드러낼 생각으로 할 패기는 있어야 할 것이다.

    국민은 과연 누구 입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말이 나왔는지 지켜보고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