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ISIS,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정부군 공격해 다양한 대공 미사일 탈취
  • ▲ 테러조직 ISIS가 SNS와 온라인에 공개한 러시아 여객기 추락 영상. 하지만 이것이 추락한 여객기 영상이라는 증거는 없다. ⓒ라이브리크 영상 캡쳐
    ▲ 테러조직 ISIS가 SNS와 온라인에 공개한 러시아 여객기 추락 영상. 하지만 이것이 추락한 여객기 영상이라는 증거는 없다. ⓒ라이브리크 영상 캡쳐


    지난 10월 31일 오전(현지시간) 이집트 휴양도시 샤름 알 셰이크를 출발해 러시아로 돌아가던 ‘코갈림 아비아’ 소속 A-321 여객기가 시나이 반도 북동부 지역에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224명 전원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여객기가 기체 결함 등으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테러조직 ISIS 연계 조직이 SNS에 “우리가 러시아 십자군을 모두 죽였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에는 미국 언론들이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 “적외선 첩보위성이 포착한 영상을 보면 기체 꼬리 부분에서 열이 감지된 뒤 추락했다”고 주장, 여객기 내부에서의 폭발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러시아 여객기 추락이 ISIS에 의한 격추 테러인지 아니면 기체 결함인지, 아니면 여객기 내부에서의 테러나 폭발 때문인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이집트 정부는 물론 다른 나라 정부도 여객기 추락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주장은 테러조직 ISIS에 의한 격추. 이집트와 미국은 “당시 여객기의 고도로 보면, ISIS가 가진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S)로는 격추할 수 없다”고 반박했지만, ‘코갈림 아시아’ 측은 “기체결함은 없었다”며 테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이집트 정부와 러시아 사고 조사위원회가 수거한 사고 여객기의 블랙박스. 이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가 나오면 여객기 추락 원인이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집트 정부와 러시아 사고 조사위원회가 수거한 사고 여객기의 블랙박스. 이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가 나오면 여객기 추락 원인이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러시아 여객기가 과연 ISIS의 테러로 추락했는지 아닌지를 일차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ISIS가 보유하고 있는 대공 미사일의 종류를 살펴보는 것이다.

    테러조직 ISIS는 활동한지는 12년이나 됐지만, 그 세력을 급격히 확장한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 2년 사이에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알 카에다 연계조직들을 흡수하면서 지금처럼 커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쪼그라들던 알 카에다는 2011년 봄,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불어 닥친 ‘재스민 혁명’ 이후 다시 그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말리에 본거지를 두고 나이지리아 일대까지 세력을 뻗힌 안사르 알 딘,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 일대에서 활동하며 민간인을 무차별 납치, 학살하는 보코하람, 북아프리카 지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선 ‘알 카에다 이슬람 마그렙 지부(AQIM)’, 사우디아라비아와 GCC 국가들의 왕정 타도를 명분으로 내세운 ‘알 카에다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 시리아 일대에서 활동하는 알 누스라 전선, 이집트 체제 전복을 꿈꾸는 시나이 반도의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알 카에다 이슬람 마그렙 지부(AQIM)’의 행태를 눈여겨봐야 한다. AQIM은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쫓겨난 뒤 리비아 정부군을 습격, 대량의 무기를 획득했다. 그 가운데는 소련제 SA-7(9K32 스텔라) 5,000여 기(최대 1만여 기로 추정)도 포함돼 있었다.

    AQIM은 자신들이 탈취한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을 알 카에다 네트워크를 통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대의 다른 알 카에다 연계 조직에 뿌렸다.

    알 카에다 연계 조직들은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로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정부군 헬기 등 항공기, 드론 등을 공격했다.

  • ▲ 테러조직 ISIS가 자신들이 보유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 속에는 중국제 FN-6, 소련제 SA-16, SA-24 등이 보인다. ⓒISIS 선전영상 캡쳐
    ▲ 테러조직 ISIS가 자신들이 보유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 속에는 중국제 FN-6, 소련제 SA-16, SA-24 등이 보인다. ⓒISIS 선전영상 캡쳐


    2011년 4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2013년 알 카에다 연계조직인 알 누스라 전선 조직원 일부가 시리아 독재정권 타도를 내건 자유시리아군(FSA)을 공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리고 2014년 6월 테러조직 ISIS가 이라크에서 등장, 파죽지세로 정부군을 격파하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또 다른 후폭풍을 가져온다.

    테러조직 ISIS가 등장하기 전까지 알 카에다 연계조직이 가진 휴대용 대공 미사일은 SA-7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추정됐다.

    하지만 2014년 8월 ISIS가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를 점령하면서 양국 정부군의 무기고를 탈취한 뒤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시리아 정부군이 갖고 있던 SA-16(9K38 이글라)과 SA-24(9K-338 이글라-S), 중국제 FN-6을 손에 넣었고, 이라크 정부군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FIM-92 스팅어까지 얻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소련제 자주 대공포인 ZSU-23 쉴카, AZP S-60도 손에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말부터 2015년 봄까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알 카에다 연계 조직 대부분이 ISIS의 ‘자칭 지도자’ 아부 부카르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알 카에다에서 ISIS로 갈아탄 것이다. 이번에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한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ISIS가 확보한 다양한 무기들이 충성을 맹세한 조직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실제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가 ISIS에 충성 맹세를 한 뒤부터 시나이 반도에서는 정부군 헬기를 향한 휴대용 대공 미사일 공격이 빈번해졌다. ISIS는 이집트 군의 헬기를 휴대용 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는 영상을 인터넷과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 ▲ 열병식에 나온 불가리아군의 SA-8 지대공 미사일. ISIS는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이 미사일을 탈취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열병식에 나온 불가리아군의 SA-8 지대공 미사일. ISIS는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이 미사일을 탈취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여기까지만 보면 지난 10월 31일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도 ISIS에 의해 격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가 밝힌 데 따르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ISIS가 보유한 휴대용 대공 미사일들은 사정거리가 3~6km 내외다. 미국제 FIM-92 스팅어 미사일의 경우에도 사정거리는 4.8km에 불과하다. 따라서 당시 9km 이상의 하늘을 날던 러시아 여객기를 격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이집트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SA-7과 SA-16, SA-24의 공개된 성능을 봐도 그 사정거리가 매우 짧은 편이다. ISIS가 지상군에게 화력지원을 하는 A-10이나 SU-25 공격기, 헬기를 향해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쐈다는 보도는 많지만 공습에 나선 미국 등 서방연합군과 러시아 전투기, 아랍 동맹 전투기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별로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 ▲ 테러조직 ISIS가 이라크 군으로부터 SA-6 대공미사일을 탈취했다고 자랑삼아 올린 사진.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테러조직 ISIS가 이라크 군으로부터 SA-6 대공미사일을 탈취했다고 자랑삼아 올린 사진.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물론 ISIS가 보유한 대공 미사일 가운데는 지상 15km 상공의 비행기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기는 하다. 바로 이라크 정부군으로부터 탈취한 소련제 SA-6 컵(2K12)와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탈취한 SA-8 오사(9K33)이 대표적이다.

    SA-6는 대형 트레일러로 움직이며, 사정거리가 20km, 최대 요격고도가 15km에 이른다. SA-8은 차륜형 장갑차 위에 장착한 형태로, 사정거리는 15km, 최대 요격도고는 12km다. 이런 미사일들은 느리게 비행하는 여객기를 충분히 요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한 곳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동쪽. 반면 ISIS가 SA-6와 SA-8을 탈취한 곳은 각각 리비아와 시리아라는 점이다.

  • ▲ 이집트 시나이 반도 주변 지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가 시나이 반도다. ⓒ구글 지도 캡쳐
    ▲ 이집트 시나이 반도 주변 지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가 시나이 반도다. ⓒ구글 지도 캡쳐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경의 경비가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대형 트럭만한 지대공 미사일을 이스라엘,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몰래 들여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소형 화물선으로 밀수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밀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번 러시아 여객기 폭발 사고가 ISIS의 대공 미사일 공격 가능성보다는 기체결함 또는 기내 폭발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주장도 이 때문에 나온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의 블랙박스 분석 결과일 것이다. 블랙박스의 항행기록에 여객기 추락 당시 고도가 6,000m 안팎이었다면, 테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