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미국 “추락 당시 외부 충격 흔적 없었다” 러 항공사 “기체는 완벽한 상태”
  • 지난 10월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동부에 추락한 러시아 '코갈림 아비아' 항공 여객기의 잔해.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보도화면 캡쳐.
    ▲ 지난 10월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동부에 추락한 러시아 '코갈림 아비아' 항공 여객기의 잔해.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보도화면 캡쳐.


    지난 10월 31일 오전, 승객과 승무원 224명을 태우고 이집트 휴양도시 샤름 알 셰이크를 출발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러시아 항공사는 ‘외부충격’, 이집트 정부는 ‘기체결함’, 서방 국가는 ‘내부 폭발’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지난 2일(현지시간), 추락한 여객기를 운영하는 러시아 ‘코갈림 아비아 항공’의 알렉산더 스미르노프 이사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가진 기자 회견 내용을 일제히 전했다.

    기자회견에서 스미르노프 이사는 “어떤 기체 결함도 여객기가 하늘에서 분해되도록 만들 수 없다”며 “여객기가 운항 중 공중분해 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외부적인 요소에 의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스미르노프 이사는 “사고 당시 승무원들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고 때문에 추락 상황을 지상 관제소에 보고하려는 시도도 못했다”면서 “분명히 기체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때문에 계속 비행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스미르노프 이사는 이집트 정부 등 일각에서 주장하는 ‘기체결함’ 가능성에 대해 “조사 결과가 밝혀질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사고 당시 여객기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상태였다”고 주장, 이 같은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다.

    스미르노프 이사의 이 같은 주장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여객기 추락 이후 시나이 반도 일대에서 활동하는 ISIS 조직이 SNS 계정에 올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반면 추락한 여객기 잔해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한 이집트 당국은 “외부 충격으로 여객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나이 반도 일대에서 활동하는 ISIS 연계 조직의 ‘러시아 여객기 격추’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까지 나섰다. 엘시시 대통령은 英BBC와 인터뷰를 갖고 “사고 원인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히면서도, 테러조직에 의한 여객기 격추 가능성에 대해서는 “테러조직이 이집트 국가안보와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일부 외신들은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한 이집트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외부에서의 충격은 없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3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언론들이 美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를 하면서, 혼란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NBC, CBS 등 美주요 언론들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적외선 영상 첩보위성들이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한 지점에서 폭발을 감지했다”고 보도했다.

    美언론들은 “美정보기관의 분석가들은 (러시아 여객기 폭발이) 연료탱크든 폭탄이든 간에 기체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당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러시아 여객기가 격추를 당했다면 적외선 영상 첩보위성이 이를 파악, 추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러시아, 이집트, 미국 등의 시각이 다르게 나오면서 러시아 여객기의 추락 원인은 점점 미스터리가 돼 가고 있다.

    여기다 지난 2일, 이집트 정부가 “사고 직전 러시아 여객기가 무선통신 장비가 고장이 나서 인근 비행장에 비상착륙하겠다고 알려왔다”던 당초의 발표를 “사실과 다르다”고 뒤집으면서 사건은 이집트 정부와 러시아 ‘코갈림 아비아 항공’ 간의 진실게임 양상도 보이고 있다.

    현지에서 사고 조사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친러 국가였던 이집트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매우 많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테러 조직 ISIS와의 전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국 또한 “여객기에 대한 지대공 미사일 테러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주장을 조금씩 펴고 있다. 테러조직 ISIS가 보유한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의 행방을 추적하던 美정부의 ‘비밀공작’이 실패한 뒤 일어난 ‘참사’로 여겨지는 것을 우려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를 둘러싸고, 관련 국가와 서방 진영은 그 불똥이 자국에 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