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시절 추진한 ‘자주국방’ 기조 탓에 기술이전 집착…2007년 사브 제안 무시
  • ▲ 남아공 공군의 사브 JAS-39 그리핀NG. 그리핀NG는 F-35 다음으로 많은 나라가 차기 전투기로 선택한 기종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남아공 공군의 사브 JAS-39 그리핀NG. 그리핀NG는 F-35 다음으로 많은 나라가 차기 전투기로 선택한 기종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한국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으로 F-35 스텔스 전투기를 선택, 美정부는 생각도 않는 기술이전을 바래왔다. 상대방의 상황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자주국방’을 추진한 결과 2024년까지 완료한다던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

    한국 정부와는 전혀 다른 선택으로 ‘차기 전투기 사업’을 추진 중인 나라가 있다. 바로 세계 2위의 항공기 시장 브라질이다.

    19일(현지시간) 브라질 정부는 차기 전투기(F-X2)로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의 ‘JAS-39E 그리펜NG’ 전투기 구매방침을 확인했다. 

    브라질 현지 언론들은 현재 스웨덴을 방문 중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그리펜NG 전투기 36대 구매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은 2014년 8월 스웨덴 사브와 그리펜NG 전투기 36대를 54억 달러(한화 약 6조 원)에 구매하기로 계약했다. 전투기 인도 시기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다.

    브라질 정부는 사브와의 협의를 통해 15대의 그리펜NG을 자국 내에서 조립생산하기로 합의했다. 기술이전 또한 약속받았다. 브라질 정부는 또한 그리펜NG를 모두 만든 뒤에는 중남미 국가에 수출도 할 수 있다는 약속까지 얻어냈다.

    1년이 넘게 지난 현재 그리펜NG 36대의 가격은 스웨덴 크로나의 가치 하락으로 45억 달러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브라질 정부는 여기다 2015년 8월, 스웨덴의 수출진흥기구인 SEK로부터 금융지원까지 받기로 해 그 부담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야당의 탄핵 움직임, 정부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으로부터의 전투기 도입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려는 것은 그 이상 좋은 조건을 찾기 어려워서다.

    브라질은 2013년 12월 사브의 그리펜NG 전투기를 선택했다. 프랑스 다소의 라팔, 미국 보잉의 FA-18 슈퍼 호넷이 경쟁기종이었지만, 사브가 제시한 조건을 넘지 못했다.

    사브는 그리펜NG 전투기를 구매할 경우 브라질 항공기 업체 ‘엠브라에르’와 공동으로 생산 공장을 만들고, 주요 기술을 이전해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닷소 측도 뒤늦게 “브라질이 라팔을 선택하면 100% 기술이전을 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가격과 유지보수 비용, 범용성 등에서 그리펜NG의 우수성을 넘지 못했다.

  • ▲ 스웨덴 사브가 브라질 정부에 제안한 JAS-39 그리핀NG의 공동생산 계획. ⓒ브라질 매체 보도화면 캡쳐
    ▲ 스웨덴 사브가 브라질 정부에 제안한 JAS-39 그리핀NG의 공동생산 계획. ⓒ브라질 매체 보도화면 캡쳐


    한국에서는 사브를 ‘망한 자동차 회사’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실은 유럽 주요 국가들이 채택한 지대공 미사일, 레이더 등도 만들어내는 대형 군수업체다. 사브가 만든 그리펜NG는 브라질 외에도 스위스, 체코, 헝가리, 남아공 등이 사용 중인 베스트셀러 전투기다. 핀란드,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도 도입을 검토 중일 정도로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작은 크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일부 전문가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소형 다목적 전투기로 만들어진 개념에 매우 충실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공중조기경보기와는 물론 전투기끼리도 데이터 링크가 가능해, 완벽한 팀워크만 갖춘다면 여러 대의 전투기가 한 대의 전투기처럼 싸울 수 있다는 점, 활주로가 아닌 일반 도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고, 정비에는 트럭 두 대 정도의 장비만 있으면 된다는 점 또한 큰 장점으로 꼽힌다.

    사브 측은 이런 그리펜NG를 한국 정부에도 제안한 바 있다. 그것도 2007년에 말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자주국방’을 추진하면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F-X)과 차기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의 조건으로 ‘핵심기술 이전’을 내걸었다. 이때 사브 측은 그리펜NG를 선택한다면, 일부 생산라인을 한국에다 설치하고 항공전자장비 등 주요 기술들을 이전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 ▲ 사브 JAS-39 그리핀NG의 데이터 링크 개념도. ⓒ사브 홈페이지 캡쳐
    ▲ 사브 JAS-39 그리핀NG의 데이터 링크 개념도. ⓒ사브 홈페이지 캡쳐


    이때 한국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차기 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분리, 차기 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위해 사브 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라인’ 관계자들은 ‘자주국방을 위한 기술이전’에만 집착해 사브 측의 제안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반면 몇 년 뒤 사브 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브라질은 주요 기술이전과 함께 전투기 수출의 길도 열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