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들, 자유진술 통해 비례 줄이고 지역구 늘려 지역대표성 유지할 것을 호소
  • ▲ 선거구획정위원회가 9일 오전 전남도의회 초의실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 공청회를 열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선거구획정위원회가 9일 오전 전남도의회 초의실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 공청회를 열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여기 나와 계시는 이런 분들이 우리 전남 민심을 대표하시는 분들인지 너무 의심스럽습니다."

    방청석 자유진술 시간에 터져나온 문제 제기에 방청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맞습니다" "맞소"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장내가 소란해졌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9일 오전 전남 무안군 전라남도의회 초의실에서 연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지역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지역구 증원과 비례대표 축소를 바라는 지역 민심이 이와 동떨어진 패널 구성에 마침내 폭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뉴시스 구길용 기자·순천대 행정학과 길종백 교수·목포경실련 김창모 간사·정의당 전남도당 박명기 사무처장·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대운 대표·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윤성석 교수가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선거구획정위에서는 한표환 소위원장을 비롯, 가상준·조성대·차정인 위원이 자리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진술인(패널)들은 원내3당인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과 시민사회단체·학계·지역언론계 등의 추천으로 구성됐는데, 군소정당과 시민단체의 추천으로 들어온 진술인은 지역 민심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의원 정수 증원·비례대표 확대·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중앙 정치권의 논리 그대로 반복했다. 지역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굳이 지방에서 공청회를 개최한 이유가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길종백 교수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지역대표성을 지켜야 한다는 게 가장 큰 화두 같더라"면서도 "반드시 국회의원을 통해서 지역을 대표할 게 아니라, (비례대표를 늘리고) 농어민을 대표할 수 있는 인사가 들어간다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이고,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초자치단체의 임의적 분할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지역이 분할돼 다른 지역구와 붙게 되면, 분할된 지역의 이익이나 대표성이 아주 약화될 수 있어 인위적으로 분할하는 것은 없앴으면 좋겠다"고,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과 지역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자치구·시·군 분할 예외 범위 확대'에도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김창모 목포경실련 간사도 "비례대표가 줄어서는 안 되며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며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은) 농어민 출신은 비례대표로 많이 공천을 하면 보완이 된다"고 거들었다.

  •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출석한 윤성석 전남대 교수가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원을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취해야 할 길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출석한 윤성석 전남대 교수가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원을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취해야 할 길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정의당 전남도당의 박명기 사무처장은 "헌재 판결의 취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농촌대표성을 유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농어민의 요구는 계급적인 이해가 강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통해 반영되는 게 훨씬 유용하고, 농민·어민 분들도 이런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민심을 반영한다기보다는 되레 민심을 가르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대운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도 "새정치연합 전남·전북·제주도당에서 특별히 농촌을 보호해달라는 성명서를 낸 것은 국민을 설득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라며 "비례대표를 늘려서 국회를 어떻게 정상적으로 가동할 것인지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성석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만 "우리나라는 단원제 국회이기 때문에 인구대표성 뿐만 아니라 지역대표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인구만 지나치게 강조해버리면 의회의 역사적 성격을 해칠 수 있다"고 맞섰다.

    윤성석 교수는 "어렸을 때는 3000만 인구 중 전남이 500만 명이었는데, 인구대탈출이 벌어지고 있어 전남의 각 지자체들이 인구를 유입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며 "그런데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지역구를 통폐합하고 없애버리는 것은 이러한 지역 발전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광주에서 KTX (서대전역 경유) 문제가 생기니까 국회의원 8명이 달려들어서 해결해버렸다"며 "우리 전남 담양에서 대나무 축제 한 번 하려고 하면, 함평·영광·장성까지 관할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뛰어다녀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이 지역구의 면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자치구·시·군 분할을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각 진술인의 발언이 끝난 뒤 질의응답에 앞서서 조성대 위원이 의견을 종합할 때 "여섯 분 중에 네 분 정도가 의원 정수 확대를 권고했고, 비례대표를 확대해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제시한 분도 세 분"이라며 "지역구 의석 수를 확대하자는 분은 두 분인 것 같고, 한 분은 4개를 초과하는 군(郡)은 묶지 말고 농어촌 특별선거구로 하자고 했다"고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방청석에서 듣고 있는 방청인들이 격분했다. 한표환 소위원장이 방청석의 자유 진술을 요청하자, 여기저기서 다투어 손이 올라갈 정도였다.

  •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김승식 한국농업경영인 전남연합회장은 진술인들이 전남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표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면적과 지역대표성도 고려해 선거구 획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김승식 한국농업경영인 전남연합회장은 진술인들이 전남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표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면적과 지역대표성도 고려해 선거구 획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김승식 한국농업경영인 전남연합회장은 "전남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해서 어렵게 스스로 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해서 의견을 수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앉아 있는 나마저도 민망하다"며 "여기 앉아 있는 이런 (진술인) 분들이 전남을 대표하는 분들인지 우리 전남대 교수 빼고는 너무 의심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청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맞다"고 호응하고 나서 장내는 일순 소란해졌다.

    김승식 회장은 "현실적으로 의원 수 늘리는 것은 국민 여론상 어렵고, 현재 정원으로 하면서도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하는데 그러면 농어민들에게는 국회의원까지 다 빼앗아버리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전남인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말씀들을 할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우리 전남 대표라는 분들이 면적을 고려하자는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고 숫자놀음들만…"이라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북받친듯 차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유감이다. 아주 유감이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김승식 회장이 말을 마치자 좌중에서는 박수갈채와 함께 "옳소" "잘했다"는 호응이 쏟아졌다.

    이민철 무안지역균형발전위원장은 "서울시의 면적은 605㎢인 반면 전남 무안·신안은 1만4000여㎢로 22배 차이가 난다"며 "국회의원 수는 서울이 48명, 무안·신안은 1명이고 이 1명마저 위태롭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민철 위원장은 "특히 무안은 도청이 이전해 오면서 6만2000여 명이던 인구가 몇 년 안 돼 8만1900여 명으로 2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며 "도청소재지라는 위상도 있고 시(市) 승격이 추진되는 마당에 당장 눈앞의 인구만 보고 선거구를 없애거나 합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먼 훗날에는 전남 전체가 하나의 선거구로 통폐합될 판"이라며 "서울에서 천 리가 멀다 않고 의견 수렴하기 위해 찾아주신 한표환 위원장과 위원들이 서울에서 꼭 (농촌 선거구 유지를) 건의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이민철 무안지역균형발전위원장은 전남 무안·신안의 면적이 서울시 전체의 22배에 달하고, 특히 무안은 도청소재지로서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농촌 선거구가 꼭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호소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선거구획정위가 9일 주최한 전남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이민철 무안지역균형발전위원장은 전남 무안·신안의 면적이 서울시 전체의 22배에 달하고, 특히 무안은 도청소재지로서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농촌 선거구가 꼭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호소했다. ⓒ무안(전남)=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공청회에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새벽부터 전남 고흥에서 왔다는 박기홍 씨는 "우리 고흥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상천 대표가 오랫동안 있었던 곳"이라며 "고흥이 16개 면이고 보성이 12개 면인데, 고흥 어느 면에 가서 (국회의원이) 무슨 행사에 참석하고 있으면, 보성에서는 '왜 (보성에는) 안 오느냐'고 말 나오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 씨는 "국회의원이 이장은 아니지만, 아직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선거구 구석구석까지 방문하지 못하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며 "지금도 4개 군(郡)을 관리하려면 지역구 관리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데, 청렴하고 투명한 정치를 하려면 여건부터 조성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이날 공청회에서 일부 진술인들이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것이 전남의 여론인 양 주장한 것을 향해서도 "도민들은 비례대표가 계파 수장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선발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며 "소수당은 지역에서 선출될 가능성이 적다보니, 원내 의석을 늘리려고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전남도당의 김현호 사무처장도 "의견을 말하지 않고 듣고만 가려고 했는데, 듣고 있다보니 현장에서 듣는 소리와 (패널들의 진술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이대로 전남도민의 의견으로 언론에 나갈까봐 겁이 난다"며 "여기 나오신 (패널) 분들은 전남도민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있었나"라고 물었다.

    김현호 사무처장은 "전남도민 90%는 비례대표를 늘린다고 하면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는데, (패널은) 두 분 빼고는 전부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하고, 이게 우리 전남도민의 의견처럼 되는 것을 보니 실망스럽다"며 "도민들은 비례대표는 (계파 수장의) 친위부대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도민들 사이에서는 지역구 의원 말고는 하소연할 사람이 없는데, (한 국회의원 선거구가) 군(郡)이 5개가 된다고 하고, 어디는 없어진다고 하니 민심이 흉흉하다"며 "오늘 공청회는 전남도민의 전체적인 의견 수렴인가, 아니면 한두 군데 사회단체 회원 몇 분의 의견을 듣는 자리인가"라고 돌직구를 꽂았다.

    이에 한표환 소위원장은 "전남도민 전체의 의견을 듣기 위함인데 한 분 한 분을 다 들을 수야 없으니, 도민 분들을 대표할 수 있게 여러 단체와 학자 분들을…"이라며 말을 흐렸다. 선거구획정위원들도 진술인들의 구성과 방청석의 분위기가 물과 기름처럼 유리됐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표환 소위원장으로부터 추가적인 시간을 부여받아 새정치연합 전남도당이 수렴한 도민의 의견을 진술해줄 것을 요청받은 김현호 사무처장은 "지역의 현안 사업과 국책 사업 관련해 의견을 들어주고 반영해줄 사람은 지역구 의원밖에 없다"며 "여론을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도민들의 의견은 전남의 지역구를 늘리지는 못할 망정 줄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