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숨의 또 다른 이름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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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물숨>의 저자 고희영은 해녀들의 바다와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고희영은 SBS〈그것이 알고 싶다>,〈뉴스추적〉의 작가로, KBS〈수요기획〉,〈KBS 스페셜〉 등의 PD로 활동하며 100 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고 작가는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한평생 바다와 함께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6년을 담아냈다.

    <물숨>은 해녀들의 은밀하고, 외로운 바닷속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발견하게 된 나와 인간의 슬픈 욕망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제주도의 동쪽 끝에 자리한 우도(牛島). 태풍의 길목, 화산토의 지질로 해마다 흉년과 기근이 반복돼 온 그 섬의 여인들은 생계를 위해 바다를 뛰어들었던 그녀들의 이름은 해녀다.

    해녀는 과거 절대가난의 상징이었다. 농사지을 땅 한평이라도 있으면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해녀는 가난을 의미하기도 했다.

    해녀들들의 노동의 대가는 이승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아이들 연필과 공책이 됐다.

    이 책에서 발견한 해녀 사회에 특이한 점이 있다. 바다에 계급이 있다는 것인데, 상군 중군 하군 똥군이다.

    해녀들이 자신의 속한 무리의 질서를 엄수하고, 그 질서의 지배를 받는다. 상군은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수심 15m 이상의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를 말한다.  그 이외의 계급은 그보다 낮은 물에서 물질(작업)을 한다. 과거에는 계급이 엄격했다고 한다.

    해녀들이 쓰는 용어들이 있다. '숨비소리'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물숨'이다.  단어의 어감이 주는 아름다운 느낌과는 다르게, 슬픈 뜻이 담겨있다.

    작가는 '숨비소리'를 휘파람 소리같다고 표현했다. '숨비소리'는 그녀들의 통곡소리와 비슷하다. 해녀들이 1~2분간 숨을 꾹 참으며 잠수한 뒤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다.

    책 제목이기도 한 '물숨'은 해녀들이 쓰는 용어로, '물속에서의 호흡'을 말한다.

    첫 물질을 시작하는 애기해녀들을 향한 선배들의 첫 가르침은 전복을 따는 기술이 아닌 '물숨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즉 바다에선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섬 여인들은 숨을 참고, 자신의 욕심을 자르고, 욕망을 다스리며 바닷속에서 평생을 늙어간다.

    해녀들은 욕심을 부리다가 죽음을 겪는것을 '물숨 먹는다'고 말한다. 물숨은 곧 죽음이다.  '물숨'을 또 다른 말로 해석하자면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숨'의 길이는 정해져 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보다 빨리, 더 많이 가지려고 자신이 지닌 숨의 길이를 넘어 서고 싶은 욕망에 시달려 '물숨'을 먹게되는 것이다.


    작가와 해녀의 인터뷰 中

    # 강덕희

    강덕희씨는 어머니 故 고창선 씨가 돌아가시고 며칠 뒤 다시 그 바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바다 없이 살지 못했듯이 바다를 떠나선 못살 것 같은 생각이 드나요?

    그래. 싫어하면서 그 바다를 버리지 못할 것 같애. 살아가는 게. 나도 물질을 별로 좋아 안 하거든. 바닷가 가는 것도 싫어해. 그런데도 내 직업이고 내 살아야 될 삶이고 하니깐 어쩔 수 없는 거. 자연히 그리고 가게 되고, 나도 물을 좋아라 안 한다. 별로야(웃음). 안 하면 안 한대로 살 것 같은 데 또 안 하지 못하는 게 물질인 것 같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목숨이야 나 아닌 달느 해녀들도 다 맡기고 하는 거니까... 몰라, 내가 여기 안 살고 몸이 아프면 안 하겠지 하지만 내 몸이 성할 때는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물질 같애. 평생 해야지. 우리 어머니 나이까지 내가 살아질지 몰라도 꼭 할 것 같애. 그때까지도. 내가 힘닿는 데까지도.

    내 동료와 어머니의 무덤이 되기도 한 그 곳에 해녀들은 다시 들어간다. 바다에 가지 않으면 병이 난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든 해녀들은 몸살이 날 정도다. 우도의 경우 1년에 딱 한 달 금채기간이 있는데, 이 한 달 동안 해녀들은 속이 탄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해녀들도 바다로 간다. 바다에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난단다. 그것을 해녀병이라고 했다.

     

    # 차여숙

    우리가 바다에서 태어나고 바다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직업을 택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겨울에도 그렇게 추워도 우리는 추운줄 몰라. 신나. 바라에 가게 되면, 집에서는 스트레스 막 쌓여도 바다에 한 번 갔다 오면 그 스트레스가 다 풀어져. 그러니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해녀병이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숨이 막혀서 답답할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좋으시냐는 물음에 바다에 들어가면 숨은 막히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만 잡생각이 없어진다. 바다에 가면. 자기 할 것만 가서 하면 되니깐.

    전복이 보이면 전복을 따고, 소라가 보이면 소라를 잡고 아무 생각 없이 오만 잡생각이 없어지거든. 속상했던 마음도 풀어버리고 괴로웠던 마음도 눈 녹듯 녹아 버려. 그곳에서도 집에서처럼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면 할 수 있나. 못하지

     

    기자 한줄평 : ★ ★ ★ 우리의 치열한 현대 경쟁사회와 해녀의 경쟁사회는 다르다. 현대인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물숨을 먹여야 욕망을 이룰 수 있지만, 순전히 자신의 욕망으로 극한에 내몰린 해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물숨을 먹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