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 외교관의 도전>

한 외교관이 들려주는 37년의 생생한 외교 이야기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외교에 달려 있다"

오현지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5.07.23 11:33:29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외교에 달려 있다."

권순대 전 인도대사는 평소 '자서전을 써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자서전이란 그때그때의 사실을 정확히 기록해놓지 않으면 기억력에 의존해 작성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내용이 잘못 기술되거나 자화자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해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1년 전에 일어난 한 국제사건 때문이었다.

지난 2013년 12월 12일, 미 국무부 수사관이 뉴욕 주재 인도 부총영사를 전격체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인도 영사관이 부총영사의 가정부에 대한 비자 발급 요청 서류에 '급료'를 실제 지불한 것보다 많은 액수(뉴욕 최저 임금 수준)로 작성했다는 혐의였다.

이 문제는 결국 미국과 인도 간 외교 마찰로 비화됐다. 인도 외교부는 중대 범죄도 아닌데 여성 외교관을 공개적으로 체포해 모욕을 준 것은 '비엔나 협정'위반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도정부는 주(駐)인도 미국 대사관 주변에 설치된 경비용 차단벽을 제거하고 영사의 특권을 제한하는 보복성 조치에 나섰다. 그 뿐만 아니라 델리에서 반미 시위가 일어나고 성조기가 불태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인도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인도 국민들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스위스 정부가 우리 대사관 앞 공원 부지를 독일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한 대기 장소로 허용해 우리 대사관의 품위와 안전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수개월 동안 대사관 정문에 바리케이트가 쳐지고 심지어 간이 화장실이 설치됐으며 대사관 입구가 제3국 노동자들로 북적거려 마치 시장 바닥같이 변했다.

게다가 대사관 출입 차량과 방문객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데에도 스위스 정부는 모르는 척했다.

우리 대사관이 정식으로 항의하자 스위스 정부는 잘못된 조치를 철회하기는 커녕 대사관 직원 차량에 대한 과속 단속 등 냉전시대에나 볼 수 있던 보복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한 가지 해결 방도를 알게되었다. 바로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었다.

 

권 전 대사는  이 협약 제22조 2항에서 주재국 정부가 공관의 품위와 안녕의 손상을 방지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스위스 정부를 압박했다. 만약 이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스위스에 대해 보복 조치까지 고려할 참이었다. 결국 스위스 정부는 더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권 전 대사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7년에 외교부에 입부한 후 2004년에 퇴직하기까지 37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외무고시 1기를 합격하고 프랑스, 코트디부아르, 벨기에, 영국, EU 대표부, 파키스탄, 미얀마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케냐와 스위스, 인도에서 대사를 지냈다. 부산대와 창원대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과 인도의 수교 30년』이 있다.

권 전 대사는 이 책을 통해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에서 겪은 대한민국 외교의 현실을 보여준다.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에서 찾아낸 우리 외교의 생생한 역사를 담아냈다.

그는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외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이 벌어진 역사에서 터득한 교훈을 발판으로 외교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교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광활합니다. 우선 동북아에서 중추적 외교 역할이 요구되고 있기도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답게 각종 국제기구에도 한국 외교관들이 더 많이 진출해달라는 기대도 있어요. 중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제기구 진출에 한국이 그야말로 호기를 맞이한 것이라고 봅니다."

# 책 속으로

권 전 대사는 프랑스 대사관 근무 시절 외교부를 발칵 뒤집은 이수영 주프랑스 대사의 자살 사건과 ,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아들을 말라리아로 잃게 되는 이야기를 토대로, 재외공관 근무의 열악한 상황들을 책속에 생생하게 풀어냈다.

【"1973년 7월 외국 출장에서 돌아온 강영규 대사를 공항에서 마중하고 집에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아빠"하고 뛰어 나와 내 품에 안 길 네 살 난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 외교부에서는 풍토병으로 외교관 가족이 현지에서 희생된 사례가 빈번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내 아들이었다. 외교관이란 직업이 군인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맞서 싸워야 했다."  (아비장에서 말라리아로 아들을 잃다 - 70쪽)】

중립국 감독위소속 체코 병사의 판문점 탈출 등에서 경험한 우리나라 주권의 실종 사태와 SOFA 운영 업무를 담당했을 때 미국 측 카운터파트의 무례한 태도의 에피소드는 독자들에게 외교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일화중 하나다.

특히 외교관에 뜻이 있거나 외교관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실용서처럼 꼭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문화외교국이 한가한 부서인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다. 문화 외교는 역동적이다. … 예술인들이 수시로 문화외교국 문을 두드렸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문화외교국이 외교안보연구원으로 이전 - 223쪽)】

이 파트는 본부 국장을 지낼 때 선진국 외교부처럼 외교문서 공개를 이끌어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또 진부한 정부의 홍보 대신 본격적으로 문화외교를 펼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어 권 전 대사가 인도 대사로 근무하면서 한‧인도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경제계를 중심으로 친선협회를 조직했던 경제 외교의 현황을 보여주는 대목이 흥미롭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도의 역할이 보여진다.

우리나라 건국 전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 인정과 6‧25 당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연방의 특성상 연방정부만이 아닌 지방정부와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도 볼 수 있고, 얼마 전 방한해 화제를 모았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후 변화된 인도 정치도 한 눈에 파악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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