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김문수·오세훈, 대권후보 3人의 정치 행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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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춘추 전국시대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나가는 3년차이며, 총선이 불과 9개월, 대선은 2년이 남았다.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이 슬슬 용트림을 시작하는 때다.

    여야 모두 사무총장 인선을 시작으로 내년 총선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메르스 정국과 대통령 거부권으로 촉발된 정국의 짙은 파문이 시계(視界)를 흐리지만, 잠룡들의 대권 시계(時計)는 이미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런 혼란은 대권 잠룡들에게는 호재다. 혼란은 자신의 정치력을 과시할 수 좋은 기회로 다가오기도 한다.

    뚜렷한 대권 후보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여당(새누리당) 내부의 움직임은 더욱 치열하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다. 10년간 정권을 지켜온 집권 여당의 숙명이다.

    여당 내 경선을 승리한다 해도, 야당의 '정권 교체론'이란 거센 저항에 직면해야 한다. 여전히 유력 대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압도하는 현재 권력,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도 놓칠 수 없다. 똘똘 뭉치는 야권에 대항해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여권 내부 결속에 신경써야 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집권 여당의 특성상 아직 독보적인 대권 후보로 치고 나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다. 새누리당은 아직도 이회창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은 엎드려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대권 주자로 치고 나가기 보다 친이·친박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전방위적인 세력 규합을 이뤄내는 주자가 여당 대선 후보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 ▲ 왼쪽부터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무성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 뉴데일리 DB
    ▲ 왼쪽부터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무성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 뉴데일리 DB

    난세(亂世)의 간웅이냐, 치세(治世)의 영웅이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인생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공무원연금법과 연계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통과를 이끈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고, 친박계는 벌떼처럼 일어나 여기에 동참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과를 이끌어 낸 김무성 대표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워졌다. 유승민을 버려 박 대통령의 뜻을 따르느냐, 아니면 유승민을 지키면서 청와대를 향해 반기를 드느냐를 끝내 선택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두 가지 경우의 수 모두 김무성 대표에게는 악수(惡手)다.

    대통령 탈당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유승민을 지키려다가는 자칫 당이 깨지는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 아직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이름을 지우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내세우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이길 자신이 없다.

    친박·비박으로 당이 깨지면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라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당 대표로서 총선 패배는 재기하기 힘든 타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유승민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은 수(手)다.

    당장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 부산 영도구는 헌재의 선거구재획정 기준에 따라 부산 서구와 선거구 통합이 예상되는 곳이다. 부산 서구 지역구 의원은 현재 해수부 장관인 유기준 의원이다. 친박 핵심 의원 중 하나다.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대구 동구을)를 버린다고 해도 대구의 민심은 이미 박 대통령을 향해 있다. 여기에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항복 선언을 해 자칫 공천 주도권까지 내놓는다면 자신의 지역구마저 유기준 의원에게 뺏길 가능성도 있다.

    비박계 한 재선 의원은 "김무성 대표의 요즘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을 향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표현할수도, 반기를 들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나라 황제를 모시며 치세(治世)에는 충직한 신하로 영웅이 될 것이며, 난세(亂世)라면 간웅이 될 것이라고 외쳤던 삼국지 조조의 고민이 겹쳐보이는 대목이다.


  • ▲ 눈 덮인 청와대 ⓒ 뉴데일리 DB
    ▲ 눈 덮인 청와대 ⓒ 뉴데일리 DB


    사람은 좋은데 사람이 없어..가자 촉(대구)으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1996년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당시 DJ 최측근 박지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꺽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야권 성향이 짙은 부천에서 내리 3선을 한 김문수 전 지사는 2006년에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도전, 여기서 다시 재선까지 이뤄내며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김문수 지사는 '결국은 지방'이란 경기도지사의 한계를 느끼고 당을 뛰쳐나간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겪었던 딜레마를 똑같이 겪어야 했다.

    같은 시기, 함께 재선을 이룬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비교 속에 제기된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김문수 지사에게는 늘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파문으로 오세훈 시장이 물러난 이후에도 김문수 지사의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 오세훈이란 라이벌이 사라졌음에도 그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이 당시 제기된 지적이 '김문수는 사람은 좋은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실상 유일한 친이계 대권 후보였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독주에 힘없이 무너진 이유도 '김문수 세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란 게 중론이었다.

    실제로 김문수 지사는 19대 총선에 불출마 했음에도 자신의 지역구(부천 소사)를 이어 받은 차명진 전 의원의 선거운동을 거의 돕지 않았다. 비서실장 격인 차 전 의원에 대한 외면이 이 정도였으니, 그 외의 측근들은 사실상 '전멸'됐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김 전 지사 한 측근은 "김 지사의 워낙 보수적인 성격탓"이라고 했다. 이 측근은 "(김 지사는)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할 때부터 부패나 물밑으로 이뤄지는 정치에 대해서는 심한 알러지 반응이 있었다"며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측근들을 잘 챙기지 않아 주변의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문수 지사가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도, 경기 부천에 20년 넘게 거주한 2억원을 갓 넘는 아파트 한채가 거의 유일한 재산이라는 사실은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얘기다.

    그런 김문수 지사가 이번에 대구 수성갑에 출마 선언을 했다. 20년간 경기도에서 승부를 보려했던 김 지사가 자신의 고향(경북 영천)인 TK로 돌아간 것이다. 대구 수성갑의 현역인 이한구 의원은 2004년 김 지사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낼때 이 곳에 공천을 받은 인연이 있다.

    김 지사의 대구행은 그동안 모으지 못했던 자기 세력을 규합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포스트 박근혜 시대에서 TK(대구경북) 맹주 자리를 노리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김 지사가 대구행을 결정하는데는 대구지역 몇몇 현역 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터닝 포인트라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텃밭인 TK에서 친이·비박으로 통하는 김문수가 과연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원내 유일한 김문수계로 꼽히는 김용태 의원의 작심 비판이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김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문수 지사의 대구행 선택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여러차례 만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김 지사는 박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 등 최근 일련에 사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로 여러차례 입도마에 오른 김 지사가 정치적으로 다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친이계 한 중진 의원은 "김문수의 대구행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라며 "대권 후보로서 커리어는 가장 앞서지만, 지지 세력이 부족한 김문수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나라 황실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세력이 부족해 중앙정부에서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고, 황실 종친인 형주의 유표와 촉의 유장의 땅을 가로채야 했던 유비의 고뇌가 엿보인다.

  • ▲ 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 뉴데일리 DB
    ▲ 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 뉴데일리 DB

    옥새 쥐었다 나락으로, 적벽대전 꿈꾼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 이후 5년간 정치권에서 사라졌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내년 총선이 마지막 기회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대권에 근접했던 오세훈 전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직을 던지면서 박원순, 안철수라는 야권 대선후보를 만든 원죄(原罪)가 있다. 코이카 자문단 등 오랜 해외 체류로 국내 '오세훈 세력'이 많이 와해된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때문에 오 전 시장은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복귀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제후들의 동탁 토벌에서 황제의 옥쇄를 얻지만, 결국 이를 시기한 제후들에게 죽임을 당한 손견과 그 이후 강남(江南)에 웅크려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때를 기다린 손책·손권도 그랬다.

    오세훈 전 시장은 지난 4.29 재보선에서 오신환 후보를 27년만의 관악을 여당 국회의원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면서 일단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5년만의 정계 복귀는 만만치 않다. 수도 서울을 비운 동안 여당 후발 주자들이 탄탄히 지역구를 다져놨다.

    오세훈 시장의 최대 지지기반인 서울 강남3구는 이미 김무성 대표가 "쉬운 지역은 안된다"는 말로 못을 박았다.

    당장 정치 1번지 종로가 거론됐지만, 종로에서만 60년을 넘게 거주한 정몽준 전 대표가 버티고 있다. 이 지역에서만 내리 3선을 한 박진 전 의원도 공천을 노리고 있다. 현재 종로 지역구 의원인 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대표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다.

    서울시청이 있는 서울 중구도 공천이 부담스러운 곳이다. 당협위원장으로 결정된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갖은 고초 끝에 깃발을 꽂은 곳이다.

    정몽준 전 대표가 있던 서울 동작을도 이미 나경원 의원이 선점했다.

    안철수 의원의 노원병도 유력하게 검토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대권 주자인 안철수와의 정면승부에 대한 부담이 작지 않은데다, 친노 패권주의로 몸살을 앓는 새정치민주연합 상황을 고려하면 굳이 비노계의 핵심인 안철수와 맞붙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오세훈 비례대표설도 나온다. 친이계 한 재선의원은 "결국 오세훈 전 시장이 노리는 것은 전국구(비례대표)일 것"이라며 "전국적 이미지가 약한 오세훈 전 시장이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받아 전국 유세에 중심을 서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어찌됐든 오세훈 시장의 성공적인 정계 복귀에는 강한 임팩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훈이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선거에 참여해 승리를 일궈내야 한다는 얘기다.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의 백만대군을 격퇴한 적벽대전만큼의 대승(大勝)이 오세훈 전 시장에게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