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적 기본윤리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개탄할 만한 상황신경숙 '보편적 생각'임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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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신경숙이 표절 논란에 대해  "표절 지적이 맞다"며 자숙하겠다고 한 가운데, 문인들의 따가운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문학평론가인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소설가 신경숙의 1996년작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 대한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앞서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 작가의 1999년작 '딸기밭' 표절 논란과 관련해서도 "작가적 기본윤리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개탄할 만한 상황에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시인 이응준이 표절이라고 문제삼은 부분. 4개 문장이 거의 비슷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부분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신경숙의 '전설' 부분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중략)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안승준 '살아있는 것이오' 부분
     
    "귀하. 저는 이제 고인이 된 안승준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주소록에서 발견된 많지 않은 수의 친지 명단 가운데 귀하가 포함되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저는 귀하가 저의 아들과 꽤 가까운셨던 한 분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이미 듣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신경숙 '딸기밭' 부분

    "귀하. 저는 이제 고인이 된 유의 어미니입니다. 유의 수첩에서 발견된 친구들의 주소록에서 귀하의 이름과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주소가 상단에 적혀 있었던 걸로 보아 저의 딸과 꽤 가까우셨던 사람이었다고 짐작해봅니다."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부분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부분

    "누군가 마음을 털어 놓는 일은 가끼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신경숙은 지난 22일 경기도의 한 수도원에서 경향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출판사와 상의해서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제기한 문학인들을 비롯해 내 주변의 모든 분들, 무엇보다 내 소설을 읽었던 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모든 게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내 탓입니다.


    신경숙은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보게되니 표절이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경숙은 해당 소설에 대해서는 "어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온다.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은 때가 있다"며 '보편적 생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경숙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면서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단편 '전설'은 1994년 처음 발표됐으며 1996년 창비에서 펴낸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2005년 <감자를 먹는 사람들>로 제목을 바꿔 재출간)에 수록됐다.

    이 소설에 대해 작가 이응준이 지난 16일 '우국'과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지자 신경숙은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학 교수 A씨는 "우리 사회는 표절을 포함한 정신적 영역의 침해에 대해 너그러운 풍토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번 신경숙 사건도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제3의 기관에 맡겨야 객관성을 얻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들로 구성된 문학상 심사위원회에서 표절이 아니라거나 출판사의 편집위원 등 동업자끼리 서로 면죄부를 주는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정문순은 15년 전에 계간 '문예중앙'에서 표절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신경숙은 "그때도 내가 읽지도 않은 작품('우국')을 갖고 표절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글을 그때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는 너무나 여러 가지 것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때라서 정말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며 "그 글을 읽어보니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사실상 잘못을 어느정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