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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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출간된다고 해서 완성된 게 아닙니다. 누군가 '알마'에 대해서 궁금해 해야지 완성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작가 안보윤은 신간 『알마의 숲』 작품 속에 있는 '알고  보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같이 말했다.

    안보윤의 『알마의 숲』은 한 소년이 자살시도 후 도착하게 된 어느 몽환적인 공간에서 겪은 이야기다. 이 책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 빠르게 변하는 세상속에서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 소설로, 잠시 앉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안보윤은 인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2009년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로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우선멈춤』『모르는 척』『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키스와 바나나』등이 있다.

    안보윤은 소설을 통해 현대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과연 그들에게 희망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소설을 써내 호평을 받은 작가.

    『알마의 숲』은 시적인 묘사와 더불어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독자들을 '소설 속 세계'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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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p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물속에서처럼 먹먹하게 퍼졌다. 소년은 밤새 녹색 늪에서 발버둥치다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났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높은 보통 날이었다. 희부연 하늘이 베란다 창을 뒤덮고 있어 거실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밤의 감각에 비해 소년의 낮 시간은 미지근하고 불분명했다. 여자와 남자는 이미 출근한  뒤였다. 소년은 식탁 위에 놓인, 호두와 아몬드를 갈아 넣은 검은 콩 두유를 반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마지막 모금에서는 소금맛이 났다.


    ■14 p

    관자놀이와 이마에 불거진 혈관이 끓어올랐다. 눈알이 뜨겁고 코가 찼다. 소년의 발이 굳은 땅을  퍽퍽 걷어찼으나 그뿐이었다.

    버둥대는 소년 옆으로 눈 조각이 한없이 느리게 날렸다. 소년은 이명  대신 침묵이, 하늘과 나뭇가지 대신 암흑이 들어차는 걸 선연히 느꼈다. 무거운 추가 매달린 것처 럼 땅으로 끌려내려가던 몸이 어느 선에 이르자 부유하듯 나부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경추와 경동맥을 짓눌렀다…

    ■줄거리 및 정보

    한 소년이 삶을 끝내기로 작정하고 숲 안으로 들어간다. 소년이 원하는 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유명 청소년 심리상담사인 엄마를 진부하고 무책임한 「알고 보니의 세계」의 세계로 끌어내리려 하는 것. 까치발을 해야 닿을 만한 위치의 큰 나뭇가지 앞에 소년은 서 있다. 머리 좋고 신체 건강한 아이가  왜, 무슨 이유로 외진 숲 속에서 자살하려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단지 잘난 척해온 대로 나를  다 안다고 떠들었던 대로 이해해보라지 라며 소년은 고리 안으로 머리를 밀어넣는다.

    외진 숲속. 통나무 집 안에서 소년이 눈을 뜬다. 한 소녀가 옆에 앉아 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뒤에 처음 보는 풍경. 둥근 사각형 머리, 턱 선에 맞춰 일자로 자른 새까만 머리카락, 동글지만 딱 딱해 보이는 어깨. 소녀 알마. 알마는 소년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설명한다. 이 숲, 이 집과 같 이 살고 있는 삼촌과 이층에 기거하고 있는 올빼미에 대해. 여기는 어디고 무엇이며 왜 이런 숲에 서 눈을 떠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늪도 아니고 틈도 아닌 그들은 그걸 '문'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자살을 시도했고 눈을 감았고 그  문을 통해 이 숲으로 들어왔다. 당분간은 돌아갈 수 없다. 소년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그 '문' 이 열려야 한다. 그 문이 열릴 때까지 여기, 알마의 숲에 머무를 수밖에. 그 문이 언제 열리고 닫 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년은 따지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고리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던 게 아니었나. 엄마가 불안과 고통에, 죄책감에 추격당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고 좋았다, 소년은.

     

    아래는『알마의 숲』의 작가 안보윤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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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니의 세계」가 흥미로웠습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알고 보니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요?

    ▲안보윤 :

    제가 생각하는 「알고 보니의 세계」는 다사다난한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났던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로 부터 시작됐습니다. 사건,사고들을 보며 사람들은 '알고보니 별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되는 것이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알고 보니의 세계」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사람들이 직물적으로 현상을 보는 것과 빨리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넘어 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어리석다고 생각이 됩니다.

    많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되풀이 됩니다. 우리는 그 정보를 연결해서 근원을 궁금해 해야하는데,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그 사건들은 아직도 개별로 도막도막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이랬어, 저랬어' 하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것은 어리석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알고 보니의 세계」라고 명명하고 그것에 대해서 서술을 했던 것입니다.

    - 책의 시작은 소년이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는 내용으로 전개가 됩니다. 이때 소년은 목을 매달기전에 소리만 들리는 라디오에 패널로 등장하는데요. 목을 매달아 자살할 때, 목소리만 라디오를 들리게 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안보윤 :

    제가 라디오를 소설에 하나의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목소리의 울림이 있어서 입니다. 또 청각을 자극하는 새소리 를 등장 시킨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또 눈 내리는 설정으로 한 것도 백색으로 시야를 가리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곳에서 울림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소년은 굳이 자신이 죽으면서 까지 청소년 심리상담가인 엄마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합니다.

    ▲안보윤 :

    사실 이 소년이 원하는건 죽음 자체가 아닙니다. 소년 스스로가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소년은 소통하는 법이나, 이야기 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죠. 어떤것을 이야기 하려다보면 항상 엄마 는 소년에게 '다 알아' '널 이해' 하고 있다고 말해버립니다.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지. 그리고 그 소년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우니 나를 봐달라건데, 그것을 어떻게 소통해야 할 지 몰라서 극단적으로 소년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 책 속의 '알마'라는 소녀의 이름은 어디에서 따온건지 궁금합니다.

    ▲안보윤 :

    미국에서는 알마가 일반적으로 귀여운 이름입니다. 스페인어로는 영혼이라는 뜻이 있어요. 영혼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귀여운 여자 아이인 동시에 서글픈 영혼을 가진 아이일 수 있죠.

    소설 속 몽환적인 장소가 이승세계의 어느 한 공간라고 볼 수 있고, 삶과 죽음 사이의 중간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면 해서 이중적인 이름을 넣어서 알마라고 정했습니다.
     
    - 알고보니의 세계 파트를 읽다보면, 여기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극중 심리상담가의 말을 인용한거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한것 같기도하고,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안보윤 :

    소설 속에서 한 사람의 의 목소리를 길게 낸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을  뺄까도 고민이 많았어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려면 이 부분이 빠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넣은 것은 다른 이야기들과 떨어져 있어서 가독성을 헤치더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넣어야지 생각했어요.

    - "묻지마 범죄, 사이코패스, 무동기살인 같은게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를 보 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이 떠올라요. 안보윤 작가는 이런 사건에 대해서 어떻 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안보윤 :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저도 느낍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겠다'. 라고 아쉬워 하는 생각하기에는 이런 일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이 일어났어요.  그러면  그런 일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알고보니 어떤 이유로 그런일을 했더라,  알고보니 그런 편지를 썼더라' 등 안타까운 사건들에 대해서 '알고보니' 라는 수식을 붙여줍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알고보니' 이름하에 자연스럽게 받아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 또 있었어'?  '전에도 있었다' 이렇게 너무 쉽게 생각하고 금방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잖아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 는 충분히 했어. 이제 감정을 그만 분노해. 이렇게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 '알마는 눈물을 흘리면 죽는다'라는 설정이 특이합니다.

    [본문] 부재와 길들여진 한 소녀와 소년이 말하는 현실 너머의 세계, 이 병이 내게서 빼앗아간 건  인간의 영역이었다. 나로 하여금 짐승의 영역에서 살도록, 이기심과 본능외에는 필요치 않은 황폐 한 영역에서 살도록 했던 것이다. 비겁하다. 비겁하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눈밭을 뛰었다. 그럼에 도 나는, 살고 싶었던것이다.

    이 본문을 보면, '본능'에서 막힙니다. 본능에는 이기심만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안보윤 :

    눈물을 흘리면 죽는것 보다는 충분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예전에 해외토픽 기사를 본적 있어요. '7살 아이가 눈물을 많이 흘리면 교란물질로 인해 죽게된다'  이 글을 보고, 그때는 신기하다고만 생각 했어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문득 그 아이는 박탈 당하는 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 했어요.

    7살 그 아이와 알마는 충분히 울어야 하는 순간 울지 못하는거죠. 알마는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울고 슬퍼하고 그 일에 대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다음 생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이나 슬픔을 외면합니다.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러면 '그 아이는 감정을 어떻게 가르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그럼 '그 아이는 감 정적일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하지'?에 대해서도요.

    아까 말한 예비군 총기 사건은 너무나 아픈일입니다. 알마는 슬퍼하지 않기위해서 정보를 끊어야 하고 제 한된 감정만 느끼면서 살아야합니다. 알마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알마가 '나는 이 순간이 소중해서 열심히 살고 싶은데, 열심히 살고 싶은 것을 허락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 감정이 생겨나니깐, 자라나는 감정들 을 자꾸 잘라내는 것이죠. 감정이나 생각들을 느끼다 말고 파악하다가 마는겁니다. 거기서 말하는  본능은 1차적으로 주어지는 본능 정도로 생각했고, 그렇게 해석을 하시면 '나는 인간답게 살고 싶 었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올빼미의 등장도 흥미로워요. 올빼미는 '죽음' '공포' 등 상징적인 의미들이 있습니다. 안작가님은 어떤 눈으로 올빼미를 생각해서 소설에 넣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보윤 :

    이 소설 속 올빼미는 어리석은 면도 있는 재능없는 소설가로 그렸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아서, 철저 하게 짜여진 시간에 움직이는 삶을 살다가 결국 그로인해 상처를 받는 인물입니다. 예를 들면 어떠한 일을 '시간표 대로 나뉘어서 열심히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피곤한 캐릭터인데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없으니, 계속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물이지요. 자신의 열망이  있는데, 그것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 느낌. 악순환 속에 있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저를 투영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보윤 :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책으로 출간된다고 해서 완성된게 아닙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알마'에 대해서 궁금해야지 완성 되는게 '책'입니다.

    요즘 한국문학의 위기라고들 합니다. 무수한 책들은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무수한 기다림은 쓸쓸한 기다림이죠. 제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