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시심당] 평론가와 시인의 이색적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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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소녀시대의 소녀가 아닌 진짜 소녀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들을 보면 어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 보기도 하고, 한없이 순수하기도 합니다. 소녀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들이 드러난 시들이 많습니다"
     
    시인 박은정의 시집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의 평론을 맡은 장은석의 말이다.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 이날 사회에는 김민정 시인이 맡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박은정은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연주자로 가망이 없었다"는 말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부터 시를 쓸 생각은 없었어요. 막연히 예술을 하고 싶은 생각만 있었지만 제 전공이었던 피아노는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극인의 길을 잠시 걸었지만 이것도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30대 초반에 문득, 사는 게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떤 일에 몰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꿈, 무대 공포증으로 접어"

    박은정(40)은 2011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했다.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어 시를 쓰게 됐는 박은정은 지난 3월 독특한 시적 리듬과 소녀들의 강렬한 에너지를 담아낸 54편의 시를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문학동네)라는 시집으로 묶어냈다.

    박은정의 시에 등장하는 주체는 소녀가 많다. 소녀가 주는 이미지에 박은정은 그녀의 색을 덧입혀 신선한 '시 세계'로 끌고 나간다. 시 속의 주체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 주체는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 소녀를 연상시킨다.

    다음은 사회를 맡은 김민정과 박은정-장은석의 일문일답

  •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김민정(사회자) : 박은정 시인의 데뷔가 2011년입니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데뷔를 하셨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하시다가 시를 쓰게 된 건가요?

    ▲박은정 : 처음부터 시를 쓸 생각은 없었어요. 막연히 예술을 하고 싶은 생각만 있었지만 제 전공이었던 피아노는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연극인의 길을 잠시 걸었지만 이것도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30대 초반에 문득, 사는게 너무 허무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떤 일에 몰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하니, 시를 써볼까 생각해서 골방에 들어가서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시를 쓰다보니,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어서 시를 합평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꾸준히 습작을 해오다가 조금 늦은 나이인 37살에 투고 하고 등단을 했어요.

    ▲김민정 : 시인께서는 본인이 시를 쓸 때 피아노의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드나요?

    ▲박은정 : 네, 주변에서 제 시를 읽으면 리듬이 느껴진다고 말씀해주셔서 알기도 했고, 시와 피아노의 리듬을 생각해보니 어느정도 시 속에 리듬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민정 : 장은석 평론가께서는 꾸준히 문학쪽에 계셨지요?

    ▲장은석 :  네 문학쪽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자연스럽게 갔고, 그동안 글을 계속 썼기 때문에 꾸준히 문학쪽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김민정 : 평론을 처음부터 쓰려고 하셨던 건가요?

    ▲장은석 : '난 평론만 써야겠다' 이렇게 시작한 건 아닙니다. 시, 소설, 희곡 등 여러가지 글을 썼습니다. 제 스승이신 오탁번 시인께 글을 보여드리면 '너는 평론이 맞는거 같은데' 이렇게 한마디를 해주셨어요. 그때는 왜 이런말을 하나 싶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 제가 실제로 평론을 하게 되었네요.

    ▲김민정 : 왜 평론가들은 해설을 어렵게 쓸까요?

    ▲장은석 평론가 : 문학 비평을 하기위해서 문학 용어들이 많이 쓰이는데, 철학용어들이 날것으로 노출될 때,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 뜻을 모르고 쓰는 경우도 많아요. 개인적으로 최대한 날것으로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김민정 : 시를 대할 때 평론가와 시인이 보는 관점이 다르잖아요? 어떤 과정으로 해설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석 : 네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저는 일반 문예지에서 냉철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시인에게 전화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애초에 해설을 거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는 문예지 평론 쓰듯 작가를 만나보지 않고 글만 접해서 해설을 쓰는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과 섞이면서 어떤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나가는게 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충분히 원고를 읽어보고 제가 비판적인 의견을 갖게 되면 정중히 거절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글을 계속 쓰게 되는것은 지면으로만 접하던 사람들에게 전화가 와서 이런 지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되는 순간의 그 기분 때문에 글을 계속 쓰게 됩니다.

    ▲김민정 : 평론가중에서 시를 잘못 해석해서 이야기 한 경우도 많습니다. 제 시를 읽고 저를 매춘부로 몰고가는 평론가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자리에 은석씨를 부른 것은 해설이 소설같아서 모셨습니다. 시인과 그의 해설을 쓴 평론가를 함께 초청하는 것은 모험이었습니다.

    ▲박은정 : 평론가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솜털을 만져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마음을 다해서 읽었구나. 내 글을 보았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하나의 이불을 얻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너무 고마웠고, 제가 생각했던 시에서 느끼는 리듬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해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민정 사회자 : 시인을 만나는 일은 수월한 일인데 평론가를 만나는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독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쉽게 읽을 수 있고, 시집을 잘 읽을 수 있는 팁이나 요령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장은석 : 시집 뒤에 해설이 절대적인 답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좋을 것 같네요. 가령 모짜르트 음악을 듣는다고 할 때 잘 모르는 일반 사람이 모짜르트를 들었다고 해서 모짜르트를 잘듣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되겠지요.

    ▲김민정 :  (장은석) 본인에게 영향을 줬던 평론가가 있나요?

    ▲장은석 : 굉장히 많습니다. 이장욱 등 끝도 없이 많습니다. 또 이전 평론들이 틀에 갇혀서 써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이 자극을 주고 영향을 준 것도 있습니다.

    ▲김민정 : 말을 굉장히 잘 하십니다. 혹시 학교에서 문학 강의하시나요? 강의 할 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뭐라고 설명하나요?

    ▲장은석 : 다들 시를 처음에 대할때 '어렵다', '잘 안 읽힌다' 이런 말을 많이들 하십니다. 그럴 때 저는 우리가 시를 바라볼때 결국은 시도 행과 연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것도 하나의 글이고 결국은 몇개의 단어들이 이루어져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모인 거잖아요.

    그리고 또 한가지, 화면과 용지의 제한을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산문은 가깝게 붙어있다면, 시는 조금 멀리 있는 것이죠. 산문에서 만들어내기 어려운 리듬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시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음악이 그렇듯이요. 그 사이에 쉼표가 더 길고 간격이 더 깁니다. 그런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 시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변하고 있었다 모든 발자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난밤의 어둠이 잎사귀마다 번지고 이름 모를 것들의 울음이 짙어졌다 문득 캐수넛 한 알을 깨물며 떠난 사람의 웃음을 흉내내던, 낮고 낮은 밤들처럼우리는 버려진 고라니 새끼들이야 지붕 위로 도토리가 떨어지고 눈이 나쁜 새들이 창의 얼룩으로 남았다 더러워진 맨발로 어딘지도 모를 곳을 찾던 시절로, 지칠 때까지 달리다보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너의 손을 잡고 달리면 겁에 질린 아이처럼 숲은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게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낯선 밤에 크고 따뜻한 외투를 갖고 싶어 백양목 아래, 바람도 없이 네 얼굴은 자꾸 흔들리고 잠들지 못한 고아의 표정을 고아가 어루만지는 것처럼 우리는 조금 쓸쓸해졌다 그거 아니? 슬픔이 얼굴의 어느 쪽부터 스며드는지 사람이  사람을 모르는 것처럼 제 몸을 껴안으면 르완다 르완다, 등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기적처럼 흘러나왔다.

            -「루완다의 숲」/ 낭독 (박은정)


    ▲김민정  : '지칠때까지 달리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있을 것 같아',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이 좋습니다. 몸이 힘들다 보면 무기력한 착함에 빠져들 것 같아서 이 시구에 공감이 되네요. '잠들짐 못한 고아' 등 시인이 직유를 잘 쓰시는데.. 해설가님의 평론을 듣고 싶네요.

    ▲장은석 : 「육식소녀」「루완다의 숲」등을 보면 진짜 소녀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보면 어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 보기도 하고, 한없이 순수하기도 하는데, 소년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들이 드러난 시들이 많은습니다. 그 시들 중 한 편인 것 같아요.

    어머니와 아이가 나쁜 혈통의 유전적 동일성을 나눠 가지면서 소녀라는 말은 무한한 시간을 품게 됩니다. 이제 소녀는 생의 비극적이거나 빛나는 한 순간에 관한 이름이 아니라 내부에 감춰져 있지만 언제라도 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감각이 됩니다. 숨기는 자와 드러내는 자, 성녀와 창녀를 함께 품은 소녀의 감각은 이승과 저승, 내부와 외부, 빛나는 태양과 영혼이 움직이는 어둠을 향해 동시에 열려 있습니다. 이런 소녀는 정지한 상태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잠재된 관계를 머금은 계열체와도 같습니다.  (115쪽)

    소녀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어리둥절하다면 그들이 만드는 리듬에 귀를 기울이자, 여러 소녀들의 노래가 조금씩 잦아들다가 진동하고 깊은 침묵에 잠겼다가 다시 먼 곳으로 뻗는 과정에 몸을 맡기자. 심장이 들려주는 박동 소리가 심장의 실체는 아니지만 심장의 건재함을 증명하고 나아가 다른 장기들과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이런 리듬은 특정한 판타지에 매몰되어 규격화된 소녀의 이미지로부터 잃어버린 소녀의 감각을 우리 앞에 되살린다.  (121쪽)


    ▲김민정 : 요즘 이슈인 '잔혹동시' 어떻게 보셨나요?

    ▲박은정 : 저는 그 아이가 시인으로써 괜찮은 잠재능력을 가졌다고 생각이 들어요. 아이는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문학과 다른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김민정 : 저는 시를 쓸 때 즉발적으로 쏟아내는 편입니다. 시인은 희석을 많이 시켜서 시를 쓰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박은정 : 네 스타일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은 격하고 분노도 많이 하는 편인데, 시를 쓸때 생각하는 부분은 단어를 선택할 때 리듬적으로 너무 튀지 않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물러서서 직시하고 싶어요. 너무 가까이 들여다 보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장은석 : 시집의「육신소녀」를 보면 그렇게 희석 되어있지 않습니다. 여러 시편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배후로 계속 감싸고 도는 힘도 있어요. 잔혹동시는 그냥 내던진 시죠. 그 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멋진 시도 아니죠. 미적 자질들이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언어가 가진 힘도 없습니다. 또 미적 자질이 충분히 스며 있는 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시를 내놨을때 이런것도 시야? 이렇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안 찾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시인데, 외부에서  다 수거하라고 나선게 촌스럽다고 생각됩니다.

    ▲김민정 :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의 용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분노의 감정을 어린이가 쓴 것은 부모가 잘 키운것이지요. 우리 어른들도 어른이 뭔지 모르는데 우리가 어른으로 규정했잖아요. 이게 다 성장이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민정 : 서로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장은석 : 자주 보는 사이기 때문에 저는 특별히 궁금한 게 없습니다.

    ▲박은정 : 술자리에서 새벽까지 희희낙낙거립니다. 우리는 그때 서로서로 고백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는 시 이야기를 하고, 평론가는 연애 이야기를 합니다.(하하하) 서로 물어볼 것은 술자리에서 이미 물어봤는데, 하나 더 물어보자면 평론집 왜 안내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석 평론가: 평론집을 내기 싫은 것 아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읽겠어요? 종이를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자는 말도 안했기도 했고요. 제가 좀 조심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시인과 만나는 그 순간에 '당신만이 이런것을 읽었다', '당신이 이런 것을 알아봐줬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그 순간이 좋아서 글을 쓴다는 게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같이 스미는 순간이 좋습니다. 책을 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김민정 : 질문 있으신 분들 질문해주세요.

    ▲독자 : 시를 읽는것을 좋아하고 몇 편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시는 제한 되어 있어요. 스스로 너무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인께서는 소재를 찾으 실 때 어떻게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은정 : 저한테 시는 공부입니다. 책을 무조건 많이 읽고,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고 영화를 보면서 얻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영화는 평이 높은 거 수상한 것을 챙겨서 보는 편입니다. 제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할 때 꽂히는 단어가 있습니다. 안면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이걸로 시를 한 번 써볼까?  항상 촉수를 세우고 긴장을 합니다. 그 이미지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덧 입히는 작업을 합니다. 동화를 찾아보기도 해요.

    ▲김민정 : 저랑은 많이 다르네요. 저는 일단 영화를 보지를 않고, 오늘 저한테 꽂힌 단어를 가지고 쓰려고 해요.  '귀리가 뭐지?' 이렇게 시작을 해요.

    오이 당근 가지고도 시가 됩니다. 바퀴벌레를 알고 싶어서 맨날 잡았어요.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놨습니다. 저는 가까운데에서 찾아요. 소재는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국어사전에 있는 'ㄱ. ㄴ. ㄷ. ㄹ' 만으로도 시집을 내고 싶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지요.

  •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 ⓒ문학동네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 ⓒ문학동네
     

    ▲김민정 : 이 자리에 참석하신 손미희 시인은 질문 없으신가요?

    ▲손미희 : 시인하고 저하고 술먹다가 시집을 내기 직전까지 긴장하면서 썼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행복했습니다. 요즘도 작품을 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박은정 : 작품은 아직입니다. 첫 시집을 내면 우울증에 빠진다고 다른 작가분들이 그런 말을해줘서 마음이 놓이긴 합니다. 요즘 우울한 기분입니다. 다른 작품을 준비하는 것 보다는 지금은 평화를 찾고 싶습니다.

    ▲김민정 : 고양이를 키우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 안에서도 고양이가 나온다. 키워보니 어떤가요?

    ▲박은정 : 강아지를 처음에 키웠어요. 강아지는 살갑고, 항상 내 옆에 있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 같은 경우는 정적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한번씩 하는 감정표현들이 마음속에 쑥 들어옵니다. 고양이들은 예민해서  어쩌면 시 문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양이와 저는 서로를 관찰만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함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민정 : 시인들이 고양이를 많이 쓰는 이유가 뭘까요?

    ▲장은석 : 박은정 시집에도 등장하죠.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아양을 떨지 않고 거리를 둡니다. 고양이는 섬세하고.. 조용하고 침묵이 있습니다. 마치 시의 여백처럼요. 그래서 시인들이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요?

  •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 지난 12일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문학동네 시심당(詩心堂)>은 시인 박은정과 평론가 장은석이 함께 등장해 대화를 나누는 보기드문 북콘서트로 진행됐다.ⓒ문학동네


    내 고양이가 죽으면 어떤 무덤을 만들어줄까
    밤은 길고 낮은 멀리 있으니까

    죽은 자들의 무덤은 너무 좁고
    산 자들의 재앙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넓다

    매일 밤을 사라지지 않으려고 뼛속까지 버텼어

    언젠가는 화장터 앞 벤치에 앉아
    오래 하루를 보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을 잊으려
    이유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검은 사람들이 나를 지워줄 때까지

    단풍은 붉고 푸르고 흔들린다
    갈라진 심장을 가진 자는
    자꾸만 뒤를 본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유언으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죽은 자들은 견딜 수 있을까

    고양이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밤의 울음을 길게 운다

    망각이 자라는 자리에는
    풀 두어 포기

    밤새 팽이는 돌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른다

       -고양이의 무덤 시/ 낭송 (장은석)


    ▲장은석 : 시 '노르웨이의 검은 황소' 를 해설로 다루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하나의 맥락안에 포섭할 수 없는 지점 때문에 이 시를 다룰 수 없었습니다.

    ▲장은석 : 박은정 시인이 가지고 있는 위력중 하나가, 입으로 소리내어 읽다보면 우리의 이성으로는 인지 할 수 없는 분명한 위력을 가진 지점들이 있습니다.

    ▲김민정 : 끝으로 어떤 시인으로 살고 싶은가요?

    ▲박은정 : 시인으로써 어딘가에 몰두할 수 있고, 시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첫 시집이 나온 뒤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였습니다. '에너지도 지금 처럼 많이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끝까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김민정 : 장은석 평론가는 어떤 평론가로 살고 싶은가요?

    ▲장은석 : 아까 말했던 작가와의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글을 쓰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가 벌어지는 와중에 우리가 스미고 섞이면서 같이 리듬을 만들어 나가는 경험. 그런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것을 쓰는것이 저의 목적이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집은 남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시의 해설을 쓸 수 없어요. 그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는 것인데, 괜히 싫어하는 집에 가서 초를 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요. 일반평론이 아닌 시의 평론은 사랑하는 시만 써야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