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형 국가안보개념, 70년대식 정보기관 관리 혁파해 21세기형 정보기관 만들어야
  • ▲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 칼럼으로 네이버에서 검색한 결과. ⓒ네이버 뉴스홈 캡쳐
    ▲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 칼럼으로 네이버에서 검색한 결과. ⓒ네이버 뉴스홈 캡쳐

    차기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이병호 前안기부 2차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보도들이 나온다. 일부 언론은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몇 년 전에 기고한 칼럼에서 ‘용산사태’를 ‘폭동’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별 다른 비난이나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다.

    정치권, 특히 야권은 단단히 벼르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인 박지원은 지난 2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험난한 청문회'를 예고했다.

    “국정원 퇴임 뒤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보면 너무 편향돼 있다. 특히 대북관계에 대해 너무 경직돼 있지 않은가 한다. 어떻게 됐든 강한 청문회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민련 의원인 박지원은 이처럼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를 “강하게 다룰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대북문제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지원 의원이 ‘엄청난 정보력’을 보이기 시작한 때가 90년대 말부터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

    야권의 비판보다 더욱 염려되는 부분은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현재 국정원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국정원장 내정자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정치와 통일, 외교가 국가안보를 좌지우지해 온 상황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이끌었던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노무현 정권은 국가안보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여러 번 저질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및 한미연합사 해체, 차기 개발무기의 100% 국산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일부 장관이 관리토록 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NSC에 사무처를 두고,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만들어 상임 부의장으로 만든 뒤 노무현 정권은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대규모 발사시험, 같은 해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2007년 7월 샘물교회 아프간 선교단의 탈레반 납치, 같은 해 9월 원양어선 마부노 1, 2호 납치 등 국가안보 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 실질적으로 NSC를 관리하는 안보 수장이라는 것을 몰랐던 대다수 국민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탓’만 했다. 언론들 또한 통일부가 NSC의 실질적 수장이라는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

  • ▲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한 정동영 前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부의장. ⓒ채널A 쾌도난마 방송장면 캡쳐
    ▲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한 정동영 前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부의장. ⓒ채널A 쾌도난마 방송장면 캡쳐

    하지만 NSC를 가진 나라들 가운데 한국 통일부와 같은 부처가 실질적인 안보 수장을 맡은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아는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전후로 통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통일 전략 준비 및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에 대비하는 부처’라기보다는, ‘남북대화를 주도하고 북한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부처’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뒤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4월 중국인 유학생 폭동과 뒤를 이어 100일 넘게 일어난 광우병 폭동을 겪은 뒤에야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이때부터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에 대한 광범위한 정책기조 변경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측근들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0순위’로 두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 3월 27일 밤의 천안함 폭침, 같은 해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은 다음에야 청와대에 ‘국가위기관리실’을 만들고, 국제관계 경험이 풍부한 예비역 장성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후 국가안보에 위기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통일부가 ‘국가안보=통일’이라는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에 너무 집착한 탓에 국가안보 문제까지도 ‘통상(通商)’으로 착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통상부 출신 인사들이 국가안보를 휘두르는 듯한 모습들이 나타났고, 실제 해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 일부 정부부처와 함께 황당한 사업을 벌이는 일-이 문제는 국내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도 생겼다.

  • ▲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중국유학생 폭동과 광우병 폭동을 겪고도 안보 신경망 개편을 하지 않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은 뒤 일부 조직을 개편했다. ⓒ조선일보 인사이드 2010년 12월 22일자 캡쳐
    ▲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중국유학생 폭동과 광우병 폭동을 겪고도 안보 신경망 개편을 하지 않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은 뒤 일부 조직을 개편했다. ⓒ조선일보 인사이드 2010년 12월 22일자 캡쳐

    2012년 대선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전문가들의 기대와 예상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외교통상부를 외교부로 개편하고,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을 ‘국가안보실’로 개편하자 안보전문가들은 “이제 뭔가 되려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집권 3년차에 접어든 2015년 3월 현재 상황을 보면, 통일부 출신 인사와 외교부 출신 인사들이 국가안보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은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표적인 증거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부가 ‘남북대화’를 ‘최종목표’로 착각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대통령부터 외교부까지 ‘거시적 외교’ 보다는 ‘감성적 외교’를 펼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국가안보 개념-정보기관 관리는 70년대 방식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강조한 ‘국가안보’의 주제는 대부분 북한 또는 통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의 안보에서 통일은 일부분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진짜 국가안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 및 국민 보호’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가안보’의 책임은 어느 부처에서 져야 할까. 언론이나 일부 학자들은 청와대와 국방부 정도를 예로 든다. 하지만 한국 정도의 국가들에서 말하는 국가안보 담당기관은 대통령과 그 관계기관에서부터 군, 치안, 정보, 금융, 자원, 통상을 총괄한다. 그 중에서도 ‘신경망’으로 꼽히는 부처는 대통령 관계기관과 정보기관을 꼽는다.

    해외에서는 정보기관 또한 국내, 해외, 적성국 감시, 금융정보, 사이버, 테러 대응, 군 관련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한국이라면 국정원과 군 기무사, 금융정보분석원(FIU),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국민안전처나 외교부는 인력 구성으로 볼 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해외에서라면 정보기관으로 분류될만한 기관이지만 한국에서는 해당하지 않는 곳들도 있다. 바로 청와대 국가안보실, 금융정보분석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다.

    이 기관을 관리하는 주무부처 또는 책임자들은 ‘국가안보’를 협소한 의미, 즉 군사문제나 외교적 갈등으로 국한시키거나 해외에서 나오는 정보, 금융거래정보를 ‘비안보적 요소’로 착각해 관리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 ▲ 日JETRO 영국 사무소 안내데스크. 일본은 통산성 산하 JETRO를 통상 첩보수집 기관으로 활용한다. ⓒ日 영국 상공회의소 잡지 BCCJ 어큐멘 화면 캡쳐
    ▲ 日JETRO 영국 사무소 안내데스크. 일본은 통산성 산하 JETRO를 통상 첩보수집 기관으로 활용한다. ⓒ日 영국 상공회의소 잡지 BCCJ 어큐멘 화면 캡쳐

    이와는 달리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서 정보기관처럼 활동하는 곳으로는 경찰청, 검찰청이 있다. 경찰청은 일종의 방첩업무를 맡은 ‘보안수사대’와 함께 별도의 정보수집팀을 운영하고 있다. 검찰도 공안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와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부서를 별도로 운영한다.

    한국의 국가안보 신경망이 이처럼 해외 강대국과 다른 이유는 ‘한국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권력기관 간의 균형’에 따라 특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냉전 시절 김일성 집단의 끊임없는 도발과 침투에 대응하고 국내에 침투한 지하조직들을 찾아내기 위해 중앙정보부, 군 보안사, 내무부 치안본부(現경찰청)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이와 동시에 특정 기관이 권력실세로 군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호감시 임무도 맡겼다.

    또 다른 원칙도 적용했다. 냉전 시절 美CIA나 舊소련의 KGB가 하던 운용 방식으로 ‘분할관리(Divide & Control)’라는 원칙이다. ‘분할관리’란 철저한 비밀유지를 위해 정보기관 간에 정보교류를 최소화하고, 같은 조직 내에서도 다른 임무를 맡은 부서끼리는 정보공유를 하지 못하도록 한 원칙을 말한다.

    이런 한국 정보 신경망의 특성화와 관리원칙은 20세기 냉전 시절에는 잘 맞았다. 그러나 21세기 초 9.11 테러 이후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미국을 포함해 유럽 각국은 정보기관들을 일대 혁신했다. 


    신임 국정원장의 과제:
    21세기 한국형 정보기관 만들기


    9.11테러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테러와의 전쟁’, 그 과정에서 일어난 주요 강대국들의 정보기관 및 정보신경망 재편 과정은 이미 수많은 서적이나 자료들이 있으니 생략한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21세기 한국형 정보기관 만들기와 국가정보신경망 개편일 것이다.

    이때 중요한 고려사항은 ▲한국 국민의 자격 범위 ▲국가안보상 수호 범위 ▲국가생존을 위한 미래전략 수립 ▲활용 가능한 국가자원 및 범위 확대 ▲국가안보전략의 우선순위 설정 등이다.

    즉 재외국민은 몇 명이며, 한국으로 귀화하려는 교포나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신상점검은 어떻게 해야 하며, 국가안보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이며, 한국의 미래생존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는 누가 수집할 것이며, 국가 생존 및 발전을 위해 활용할 가용자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하고 어떻게 늘일 것인가 등에 대해 정보기관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 ▲ 美국가정보공동체(NIC)가 공동으로 펴낸 '2030 국제 트렌드'. 한국 정보기관들도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 ⓒ美NIC 2030 트렌드 리포트 표지 캡쳐
    ▲ 美국가정보공동체(NIC)가 공동으로 펴낸 '2030 국제 트렌드'. 한국 정보기관들도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 ⓒ美NIC 2030 트렌드 리포트 표지 캡쳐

    이런 고려사항을 통해 21세기형 한국 정보기관을 만들고, 청와대를 정점에 둔 정보신경망을 재구축하기 위해 또 선행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 국정원 관련법 개편, 요원 신분보장, 정치활동 금지 등이다. 그 중에서도 요원 신분보장과 정치활동 금지는 이미 20년 넘게 요구되어 온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인과 일부 요원들이 1970년대나 1980년대 정보기관의 ‘유령’을 쫓고 있어서다. 정보요원들이 ‘유령’을 쫓는 이유는 선거결과에 따라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경험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요원 신분보장과 정치활동 금지는 사실 한 가지 문제다(이는 국정원법이 가진 문제이기도 하다).

    할 일이 매우 많아 보이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정보기관 수장들이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로 주로 임명되었던 탓이다. 그 결과 20년 넘게 밀린 숙제를 신임 국정원장을 필두로 해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요원’ 출신 국정원장 내정자,
    박근혜 대통령 설득이 최대과제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의 경력 가운데 안보 전문가들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년 넘게 해외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특히 외교관들을 감독하던 정보요원 시절을 지냈다는 점은 국제적 감각이 탁월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해외에서 활동했던 시기, 한국 정보요원은 미국은 물론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안전하지 않았다. 냉전 시절이었다는 특수성뿐만 아니라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던 1980년대 중반 이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재직 시에는 美조지타운大에서 안보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주 언론 기고를 하고, 어린 후배들을 위해 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가르쳤다는 점은 그가 ‘국가 생존과 미래전략’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관심과 현실의 차이는 상당히 클 수 있다.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의 청문회가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낙마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는 이야기도 나온다. ‘가혹한 청문회’를 예고한 야권 정치인들의 엄포도 사실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 ▲ 2012년 대선 당일 '나라잃은 독립지사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지원 새민련 의원. ⓒ뉴데일리 DB
    ▲ 2012년 대선 당일 '나라잃은 독립지사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지원 새민련 의원. ⓒ뉴데일리 DB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청문회에 앞서 ‘야권 정보통’이라는 박지원 의원에게 “2000년 9월 워커힐 호텔 만찬 기억나느냐”라는 한 마디만 해도 격한 반응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실제 업무에서 많은 충격을 받으리라는 예상이 많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처음 업무를 시작하면 ‘야성’을 상실하고 사기가 떨어진 요원들의 모습, 크게 줄어든 가용자원, 과거와는 다른 위상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해외 요원 경험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국정원을 시작으로 국가 정보기관과 안보 신경망을 재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설득하는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3년 동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7년 넘게 박근혜 대통령을 주변에서 보좌하면서 과외를 맡았던 ‘외교-안보 전문가’ 가운데는 ‘통일지상주의자’, ‘친중사대주의자’들이 숨어 있다. 이들은 현 정부에서 상당한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국정원의 야성이 부활하고, 한국 정보기관이 21세기형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겪을 가장 큰 난관과 임무는 이런 ‘사람의 장막’을 헤집고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