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와 언론, 위험한 어감의 ‘스모그’ 대신 ‘연무’ ‘미세먼지’ 표현 15년째
  • ▲ 지난해 12월 서울 하늘을 덮은 중국발 스모그.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 지난해 12월 서울 하늘을 덮은 중국발 스모그.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기자

    지난 22일과 23일, 한반도 전역이 중국발 스모그로 뒤덮였다. 23일은 사상 최악이었다. 서울은 미세먼지 농도가 800㎍을 넘었고, 경기 남부, 인천, 충남, 전남 지역은 600㎍ 이상, 경남, 부산 지역까지도 300㎍ 이상의 농도를 보였다.

    이 정도 오염된 공기면 1시간만 외출해도 담배연기가 가득한 밀실에서 2~3시간 갇혀 있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외신의 표현처럼 ‘스모겟돈(스모그로 인한 아마겟돈)’이라 부를만 하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의 표현을 보면 그리 위험하지 않은 듯하다. 담배연기는 무슨 ‘화학무기’처럼 묘사하는 한국 언론들이 중국에서 날아오는 ‘스모그’를 보도할 때는 ‘미세먼지’ 또는 ‘황사’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단어대로 생각하면 몽골이나 고비 사막에서 날아오는 단순한 먼지, 가는 모래가 떠오른다. 과연 그럴까. 


    1952년 12월 4일 영국 런던 '스모그 아마겟돈'


    한국 언론이 ‘미세먼지’라고 보도하는 것의 정확한 표현은 ‘중국발 스모그’다.

    ‘스모그’란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이후 곳곳에 세워진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Smoke)이 아침이 되면 안개(Fog)처럼 뿌옇게 된다고 해서 만들어진 단어다. 1909년 가을 영국 글래스고, 애딘버러에서 ‘스모그’ 때문에 1,000여 명이 숨진 사건이 일어난 뒤 보편화됐다.

    기후 특성상 저기압대가 많아 강한 바람이 잘 불지 않는 영국에서는 스모그 때문에 수많은 인명을 잃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52년 12월 4일 ‘스모그 대참사(일명 스모겟돈)’다.

  • ▲ 1952년 12월 4일 스모그 대참사 당시 英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극장 앞. 당시 시계거리는 50m가 안 되었다고 한다. ⓒ헐튼 게티 관련 홈페이지 캡쳐
    ▲ 1952년 12월 4일 스모그 대참사 당시 英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극장 앞. 당시 시계거리는 50m가 안 되었다고 한다. ⓒ헐튼 게티 관련 홈페이지 캡쳐

    ‘스모그 대참사’가 일어난 날 아침에도 런던 시내에는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었다. 런던 주변의 공장과 주택가에서 때는 석탄 매연이 템즈 강에서 올라오는 안개와 더해져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스모그가 된 것이다.

    런던 시민들은 12월 초의 쌀쌀한 날씨를 이기기 위해 아침부터 또 석탄을 때기 시작했다. 공장들도 석탄을 땠다. 더욱 심해진 ‘매연 안개(Smog)’ 때문에 템즈 강에서는 배들끼리 부딪히는가 하면, 육지에서는 자동차와 전차의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런던 시민들은 그 ‘안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엿새 뒤 강풍이 불어와 런던 시내의 ‘스모그’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 사이 런던에서는 호흡기 질환으로 1만 2,000여 명이 사망했다. 첫 사흘 동안에만 4,000여 명의 노약자가 숨졌다. ‘스모그’ 때문에 만성 폐질환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8,000여 명이었다. ‘스모겟돈’이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설마 굴뚝연기가 사람 잡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에 사로잡혀 런던 시민들의 대량 사망 원인을 ‘독감’이라고 발표한 뒤 마스크 300만 개를 나눠주는 조치만 취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스모그에 시달려 왔던 영국 국민들은 정부의 대책이 미흡하다고 질타했다. 결국 1953년 5월 ‘비버 위원회’가 런던 스모그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석탄을 땔 때 나오는 매연이 신체로 들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비버 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놓고 영국 정치권은 3년 동안이나 아웅다웅한 끝에 ‘대기정화법’을 제정했다.

  • ▲ 19세기 말의 흔한 영국 도시 모습. 이 매연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英역사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캡쳐
    ▲ 19세기 말의 흔한 영국 도시 모습. 이 매연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英역사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캡쳐

    이와 비슷한 일은 이후 美 L.A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영국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사전에 매연을 방지하는 제도를 갖췄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1980년대 말까지 대도시 인근 공단 지역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매연과 악취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경개선에 나선 덕분에 현재는 공단 지역이 오히려 깨끗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런 우리나라에 왜 다시 ‘스모그’가 이는 걸까. 이유는 한반도 주변의 기후, 그리고 중국의 산업발전에 있다. 


    중금속, 발암물질 잔뜩 머금은 ‘중국발 스모그’


    한국 언론들은 10년 넘게 ‘중국발 스모그’를 ‘미세먼지’ 또는 ‘황사’로 둔갑시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스모그’와 ‘황사’는 엄연히 다르다.

    ‘황사’는 봄철 내몽골 지역과 고비 사막의 모래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우토(雨土)’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당시 전국의 우물이 말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모래먼지에는 마그네슘, 칼슘과 같은 알칼리성 물질도 섞여 와 토양을 중성으로 만들어 주고, 바다와 호수의 적조 현상을 없애주기도 했다.

    반면 한국 언론이 ‘미세먼지’라 부르는 ‘중국발 스모그’는 고비 사막이나 내몽골이 아니라 베이징, 허베이성, 허난성 등 중국의 주요 공업지대에서 발생한다.

    이 ‘중국발 스모그’에는 석탄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그 외 수은, 카드뮴, 크롬, 비소, 아연, 구리 등의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잔뜩 섞여 있는데, 이것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를 덮치는 것이다. 이런 독성물질과 ‘진짜 황사’가 신체에 해를 끼치는 수준은 천지차이다.

    황사는 모래먼지인 탓에 입자가 굵다. 따라서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대부분 코나 호흡기에서 걸러진다. ‘황사 마스크’만 써도 큰 문제가 없다. 반면 ‘중국발 스모그’는 입자 크기가 2.5㎍ 이하여서 마스크로는 못 막는다. 중국 대도시에서는 이런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공업용 특수 마스크나 방독면을 착용하고 외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중국발 스모그’ 속의 초미세먼지는 호흡기를 통해 신체로 들어와 폐에 달라붙거나 혈관으로 그대로 스며든다. 스모그 속 초미세먼지는 뇌를 보호하는 뇌막까지 스며들 수 있어 뇌혈관 속에서 혈전(피떡)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 의학계의 연구 결과다. 

  • ▲ 2014년 2월 美CNN은 스모그 때문에 중국에서 120만 명의 영유아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美CNN 당시 보도화면 캡쳐
    ▲ 2014년 2월 美CNN은 스모그 때문에 중국에서 120만 명의 영유아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美CNN 당시 보도화면 캡쳐

    의학계의 연구 결과는 세계보건기구(WHO)나 중국에서 실시한 환경 연구를 통해 근거가 뒷받침됐다.

    2013년 11월 중국에서 8살 여자아이가 폐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인들도 충격을 받았다. 이후 2014년부터 1년 동안 그린피스와 베이징대 등이 31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중국 내에서 ‘스모그’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25만 명이 넘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면 ‘아시아판 스모겟돈’이라 부를 만하다.

    또한 이 연구결과는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스모그 속에 있는 ‘미세먼지’가 담배연기 이상의 위험물질이라고 발표한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 ▲ 중국 베이징과 캐나다 주요 도시의 미세먼지 오염도를 비교한 캐나다 방송 보도화면. ⓒ캐나다 CTV뉴스 보도화면 캡쳐
    ▲ 중국 베이징과 캐나다 주요 도시의 미세먼지 오염도를 비교한 캐나다 방송 보도화면. ⓒ캐나다 CTV뉴스 보도화면 캡쳐

    이처럼 위험한 ‘중국발 스모그’가 매년 봄이면 한반도를 덮치는 데도 한국 언론과 정부는 ‘미세먼지’ 또는 ‘황사’, 아니면 ‘연무’라는 이상한 표현을 쓰며, 중국의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설 연휴 직후 ‘중국발 스모그’가 심해지는 이유


    중국 공산당은 스모그 때문에 매년 수십만 명이 사망해도 이를 숨기려 한다. 때문에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주재 美대사관은 자체적으로 중국 주요도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발표했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 대도시의 공기가 국제기준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PM 2.5(입자크기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 지수가 500㎍/㎥를 넘어 ‘측정불가’라는 평가를 받은 때도 많았다고 한다.

    2013년 10월 중국 동북부 지역 일대에서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한 뒤 주중 美대사관은 “직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공기청정기 5,000대를 구입했다고 한다.

  • ▲ 웨딩 촬영을 하는 중국인 커플. 한국에서 쓰는 '황사 마스크'와 차원이 다르다. ⓒ호주 뉴스닷컴 보도화면 캡쳐
    ▲ 웨딩 촬영을 하는 중국인 커플. 한국에서 쓰는 '황사 마스크'와 차원이 다르다. ⓒ호주 뉴스닷컴 보도화면 캡쳐

    당시 주중 美대사가 사임한다는 소식을 들은 뉴욕타임스는 “베이징 공기 때문에 관두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WHO 또한 “중국 대도시의 공기오염 수준이 심각하다”며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이때 베이징의 PM 2.5 지수는 800을 넘었고, 동북 3성 지역인 하얼빈은 1,000을 넘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중국 대도시, 특히 베이징과 허난성, 허베이성, 동북 3성 등의 공기오염이 심각한 이유를 중국의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와 민간 분야의 석탄 사용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난방 및 요리를 위해 석탄을 땐다. 하지만 난방 기구가 ‘보일러’가 아닌 탓에 에너지 효율도 낮고 매연 발생도 심각한 수준이다. 공장에서도 주 연료로 석탄을 땐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연간 1,600만 대나 팔리는 자동차, 1억 대가 넘는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매연 또한 엄청나다.

  • ▲ 춘절 이후 폭죽 잔해를 치우는 청소부들. ⓒ中관영 신화사 통신 보도화면 캡쳐
    ▲ 춘절 이후 폭죽 잔해를 치우는 청소부들. ⓒ中관영 신화사 통신 보도화면 캡쳐

    이런 매연은 겨울만 되면 심해진다. 난방 및 공장의 연료 소모가 가장 많아서다.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 2월 22일과 23일, 한반도 전역의 PM 10(입자크기 10㎍ 먼지) 지수가 평균 300㎍을 넘은 이유는 중국의 춘절(한국의 설날에 해당) 풍습 때문이다.

    중국은 춘절을 맞으면, 악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뜻에서 폭죽을 터뜨린다. 문제는 그 폭죽의 양. 2014년 춘절이 끝난 뒤 베이징 한 곳에서 수거한 폭죽 잔해가 1,400톤이 넘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석 달 치 월급을 폭죽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는 말도 돈다.

    공식 인구 13억 5,000만 명, 비공식 인구 17억 명 가운데 5분의 1만 폭죽을 터뜨린다고 해도 엄청난 양이다. 여기서 발생한 온갖 초미세먼지와 독성물질, 중금속이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날아간다. 춘절이 끝난 하루 이틀 뒤 한반도는 이 ‘폭죽 스모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韓정부-언론, 왜 ‘중국발 스모그’에 침묵할까?


    간단하게 살펴본 ‘중국발 스모그’의 위험성이 이 정도다. 그리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언론은 10년 넘게 ‘중국발 스모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않고 있다. 왜 그럴까.

  • ▲ 중국발 스모그가 한반도를 뒤덮은 위성사진. 그래도 韓정부와 언론은 침묵한다. ⓒ美NASA-애틀란틱 시티랩 화면 캡쳐
    ▲ 중국발 스모그가 한반도를 뒤덮은 위성사진. 그래도 韓정부와 언론은 침묵한다. ⓒ美NASA-애틀란틱 시티랩 화면 캡쳐

    2006년 봄, 한국인들이 처음 겪어보는, 최악의 ‘스모그’ 사태가 일어난 뒤 2009년 12월에는 서울의 PM 10 지수가 963㎍/㎥를 돌파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스모그’를 겪은 국민들이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게 된 뒤 “초미세먼지(PM 2.5) 지수도 측정해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PM 2.5 지수는 측정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언론들도 ‘중국발 스모그’를 ‘미세먼지’, ‘연무’ 등 이상한 표현을 써가며 문제의 핵심을 숨기고 있다. ‘황사’ 또는 ‘미세먼지’라는 제목의 기사들은 ‘중국발 스모그’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정부가 ‘중국발 스모그’에 대해 중국 공산당 정부에 항의했다는 소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황사 대책’이랍시고 수백만 달러의 묘목 비용을 지원해줬다는 기사는 볼 수 있다.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자칭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중국에게 돈을 줘야 하는 걸까.

  • ▲ 지난 22일 서울 시내의 공기. 이런 공기오염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에게 왜 우리 돈을 줘야 할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 22일 서울 시내의 공기. 이런 공기오염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에게 왜 우리 돈을 줘야 할까.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중국발 스모그’로 인한 한국의 피해규모는 연간 7조 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나온다. 실제 2002년 봄 극심한 황사로 학교 휴교령이 내리는 등의 소동을 겪은 뒤 한국 환경부 추산에 따르면 이해 ‘중국발 스모그’로 인한 피해 규모는 5조 5,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왜 한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에 ‘찍’ 소리 한 번 못할까? 한국 정치인, 미국과 일본 물어뜯는 데는 ‘올림픽 금메달 감’인 일부 언론인들은 왜 중국 공산당 앞에만 서면 고분고분 해질까. 

    오는 3월 초 역대 최악의 ‘황사(라고 쓰고 ’중국발 스모그‘라고 이해한다)’가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민들은 한국 정부와 언론들이 이번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보도하는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